당사자도 방송국도 관행에 안주…비정상 고용, 아무 제동 없어
회사 지휘 받으면 근로기준법 ‘노동자’ 판결 있어도 외면 당해

“일정한 소속이 없이 자유 계약으로 일하는 사람.” 프리랜서의 사전적 정의다. 현실에서는 또 다른 자유로움으로 통용되기도 한다. 바로 자신이 원할 때 출퇴근이 가능하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는 모습으로 연상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윤재(전 청주지역 ○○ 방송 프리랜서) 씨의 과로사를 계기로 살펴본 방송국의 프리랜서 현실은 사전적 정의는커녕 사회적 통념과도 맞지 않았다. 열악한 노동환경은 이윤재 씨의 과로에 의한 사망사건을 일으켰다. 2008년에는 SBS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막내작가가 60만원도 안되는 근로환경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1년에 광주 모 방송에선 햇빛이 드는 사무실을 요구했다가 작가 등 9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해고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무덤덤 했다. 이 씨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관행이란 이름을 빌어 무관심하게 넘어갔다.(편집자)
 

▲ 방송국 프리랜서 였던 고 이윤재 씨가 작업하던 편집기. 그는 연일 계속되는 밤샘작업으로 지병이 악화돼 2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과로에 의한 심장쇼크.

방송작가는 드라마작가와 구성작가로 나뉜다.  드라마작가는 극본을 써주는 작가를 말한다.  드라마를 제외한 모든 방송프로그램,  예능이나 시사, 음악, 다큐멘터리, 코미디, 시트콤, 라디오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며 그 대본을 쓰는 작가를 구성작가라고 지칭한다.

방송작가 대부분이 프리랜서로 고용된다. 방송국에서 직접 고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역 모 방송 작가 A 씨는 “우리는 방송국에 취직한 직원이 아니다. 4대 보험이나 퇴직금은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임금은 정해진 평균은 없다. 수 억원의 고료를 받는 작가도 있지만 월 100여만원 이하를 받는 작가도 있다.

이에 대해 A 씨는 “경력이 있기 때문에 160만원 정도를 받는다.  막내인 1년차 정도의 작가는 최저임금 정도를 받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고용에 대한 보장은 없다. 계약된 프로그램의 시작과 끝이 정해진 고용기간이다. 6개월 이상 수년간 지속되는 프로그램도 있고 1달 만에 사라지는 프로그램도 부지기수다.

다른 방송국의 작가로 일하고 있는 B씨는 “계약기간이 우리 고용기간이다. 이 계약이 끝나고 PD가 연락이 없으면 당연히 그만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B 씨는 출·퇴근은 자유로운 편이라고 밝혔다. 그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보통 5일 정도를 출근한다. 일이 있으면 주말에 일하는 경우도 있다”며 “정해진 출·퇴근시간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4대보험도 적용 안되고 정규직 직원과 임금 차이가 날 때 차별을 받는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하지만  “프리랜서이고 관행이기 때문에 다른 크게 문제를 느끼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방송사마다 만연한 비정규직

방송 관계자 C 씨는 “취재차량에는 A,B,C,D가 있다”고 말했다. 역기서 A는 취재기자, B는 카메라기자, C는 오디오맨, D는 운전노동자를 일컫는다.  여기서 A 와 B를 제외하곤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KBS와 MBC는 이러한 비정규직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자회사를 설립했다. 말만 자회사이지 지분을 100% 투여한 회사다. 이들 두 방송사는 이 자회사를 통해 운전, 청소, 조연출, 시설관리직군을 파견한다.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용역 발주한  『문화·예술·스포츠분야 비정규직 인권 상활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KBS의 경우 PD와 카메라맨 등 일부 직종만 정규직이고 외주PD(조연출), 작가 코디, 리포터 등은 프리랜서로 고용돼 있다. 미술은 아트비전 소속이고 조명과 오디오 장비는 외부업체 소속이었다.

입사 10개월 만에 과로사 했던 이윤재 군이 소속돼 있던 청주의 모 방송의 경우 10년 동안 정규직 PD를 한명도 채용하지 않았다. 이같은 사실은 유성엽의원(민주당)이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국감자료를 공개하면서 알려졌다.

하지만 대부분 방송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이같은 비정규직 고용에 대해 관행이라고 말했다. 지역의 방송 3사 노조 관계자들은 비정규직 고용과 프리랜서 고용에 대해 ‘오래된 관행’이라고 공통되게 말했다.

예고된 사고…대형사고 대책 전무

프리랜서는 작품별로 계약하고 고용계약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근무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고 수시로 변한다. 반면 프리랜서라는 명목으로 산재보험 등 4대 사회보장을 적용하는 곳은 거의 없다.

고 이윤재 군의 사례에서 보듯 촬영은 방송사 내부의 무대장치 뿐만 아니라 방송사 외부의 다양한 장소에서 이뤄진다. 일정에 따라 장소와 시간이 수시로 변한다. 출장 촬영의 경우 촬영이 끝날 때 까지 노동시간은 계속된다. 또한 심야 토론 방송과 같이 야간 촬영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촬영보조, 조명보조, 음향보조, 소품 보조등의 인력은 촬영이 종료될때 까지 촬영 현장에서 대기하며 보조업무를 수행한다.

편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촬영이 완료되면 편집은 방송 시간 전에 완료돼야 한다. 그러나 편집은 촬영 작업이 선행된 이후에 진행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편집 작업도 촬영 일정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촬영이 늦게 끝나거나 급박을 요하는 편집의 경우 편집 시간은 항상 촉박하다. 이럴 경우 밤샘 작업은 기본이다. 언제 든지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재계약 등 전권은 정규직인 담당 PD가 모든 칼자루를 쥐고 있다. 들쭉 날쭉한 근무시간과 밤샘 작업에도 프리랜서가 거부할 수 없는 수직적인 지휘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이윤재 씨의 경우 사망 사고였지만 사망 이외의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치료 비용은 개인이 감당하기 버겁다. 산재보험만 가입돼 있더라도 노동자가 보호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기지만 여전히 당사자들은 무관심했다.

다시 보는 이윤재씨 산재인정 판정 의미
회사에 출근해 업무지시 받으면 노동자…4대보험 의무가입 대상

이윤재 씨 유족이 산업재해를 인정해 달라며 신청한 행정소송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망인이 “프로그램 담당 연출자를 보조하고 프로그램을 편집하는 업무를 하였는데 업무 내용은 프로그램 담당연출자에 의하여 결정되어 그의 지시 및 감독을 받았던 점, 연출자 보조 업무는 그 성질상 당연히 근무 장소가 촬영현장이 될 수 밖에 없는 점, 프로그램 편집 업무도 해당 프로그램 작가 등과 협의하여 진행할 수 밖에 없는 점”을 판단 근거로 제시했다.

또  회사에서 제공하는 일체의 기기 및 물품을 이용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달리 망인이 업무를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기기 및 물품을 자신의 비용으로 구입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망인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김민 노무사는 “이번 판결은 방송국의 비정규직들이 방송국과 직접 근로계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아도  구체적인 사용종속관계를 살펴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며 프리랜서란 명복으로 4대보험을 가입하지 않는 것은 불법행위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김 노무사는 “이번 판결에 따라 프리랜서도 4대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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