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에서 시작한 ‘안녕’ 신드롬… 충북대·청주대 '응답'
제2의 촛불 될까 … 정권 노심초사 속 기성세대도 공감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 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분입니다. 만일 안녕하지 못한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지난 10일 고려대학생 주현우 씨가 게재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바람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도내에서는 지난 15일 충북대와 청주대에서 주현우 씨의 질문에 응답하는 10여건의 대자보가 게재됐다. 비단 대학생 뿐만 아니라 기성세대와 고등학생까지 주 씨의 질문에 대답했다. 페이스북에 게재된 ‘안녕들 하십니까’ 커뮤니티에는 17일 현재 25만명이 ‘좋아요’를 클릭했다.

▲ 충북대학교 도서관 앞 게시판 에 등장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한 학생이 진지하게 보고 있다.
▲ 15일 청주대학교에 등장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충북대학교 안전공학부 13학번 한 얼 씨는 고려대학교 주현우 씨의 질문에 ‘안녕하지 못하다’고 답변했다. 한 씨는 답변을 대자보로 작성해 충북대 도서관 게시판에 부착했다.

그는 답변에서 "안녕하지 못합니다. 많은 것을 알고도 모른체 하는 저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얼마전 1인 시위하는 선배를 보며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은, 마음을 먹어도 시험과 과제에 묻혀 실천하지 못한 저 자신이 부끄럽습니다“라며 ”이 때문에 안녕하지 못합니다“라고 답했다.

또 이러한 답변을 하는 이유에 대해 “못난 자식이 되지 않기 위해, 못난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해 나 자신에 떳떳해지기 위해" 라고 서술했다.

충북대에서 제일 먼저 답변을 한 수학과 2011학번 모 학생은 이렇게 답했다. 이 학생은 “현재를 살아가는 20대에게 안녕이라는 말조차 버겁습니다. 사회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바랍니다. 그것을 맞추기 위해 우리는 앞만 보고 달립니다. 앞만 보며 달린다 해서 옆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모르는 척 할 뿐입니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요”라며 안녕하지 못하다고 답했다.

청주대학교 2009학번 이보람 씨는 “고려대 어느 학우의 용기 있는 대자보가 잔잔히 고여 있던 마음에 파장을 일으켰다”며 “학교 생활 내내 등록금 집회가 있어도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참여할 거라는 안일한 생각에 등을 돌렸고 지난 대선 때 맛본 허망함에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들은 척 했다”고 밝혔다.

이들 학생들은 대자보를 통해 공통적으로 개인의 안녕만 생각하며 사회 부조리에 대해 눈감았던 사실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사회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다.

한 얼 씨는 “국가기관(국정원, 행안부, 사이버 사령부)의 대선개입이 있었다. 그들은 총칼이 아닌 인터넷을 사용했다. 대선 전 경찰은 '국정원녀 댓글 없다'라는 허위 발표를 했다”며 “하나도 없다는 댓글이 현재 트위터만 2000만건 이상임이 밝혀졌고 이것을 개인의 일탈이라 말한다”며 국정원 선거개입 사태를 거론했다.

또 “프랑스에 가서 완벽한 불어로 우리나라 공공기관을 외국 자본에 개방하겠다고 하며 기립박수를 받은 대통령이 있다”며 박근혜정부의 철도 민영화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언론은 이 모든 것을 감추고 정부의 개가 되어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는다”며 언론 현실에 대해서도 개탄했다.


반박 대자보 등장…일베충 논란도

고려대학생 주현우씨의 대자보 이후 청주대와 충북대에는 현재까지 10여건의 대자보가 부착됐다. 부착된 대자보를 살펴보는 학생들의 태도도 매우 진지했다.

충북대학교 경영학부 2011학번이라고 밝힌 이 모 학생은 “대학생이라면 사회에서 발생하는 일에 대해 살피고 참여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라며 공감의 뜻을 밝혔다. 청주교육대학교 김 모 학생은 “종강한 뒤라 우리학교에는 대자보가 없다. 약간 창피하다”며 “하지만 페이스 북에서는 공감을 표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답했다.  

하지만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대한 반대의 대자보도 등장했다. 충북대학교 08학번 양건모 학생은 ‘개신학우 여러분들, 저는 안녕합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부착하고 반대 의견을 게재했다.

양 씨는 “요새 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안녕하냐고 묻는다. 날씨가 추운 것 때문에 물어보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저는 안녕하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생각을 바꾸면 안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진정한 애국은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며 “케네디 대통령은 ‘국가가 무엇을 해줄지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에 무엇을 해줄지를 물어라’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결론으로 “우리는 성공해서 국가를 이끄는 축이 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줄 고민을 해야지 늘 국가가 밥을 떠먹여주고 보살펴 주기만을 바래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이런 상반된 의견은 급기야 ‘일베충’ 논란과 인터넷 카페지기의 사퇴사건으로 확산됐다. 문제의 발단은 양 씨에 의해 촉발됐다.

충북대학교 학생들의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인 다음 카페 ‘충북대 최대카페’의 운영자가 다름 아닌 양 씨 였던 것. 양 씨는 카페에 게재된 ‘안녕’ 대자보에 찬성하는 글과 자신의 글 모두를 무단으로 삭제했다. 이에 다수의 학생들이 항의했고 양 씨는 이번 달 19일에 카페지기를 물러난다고 밝혔다.

안녕·일베 현상은 절망적 현실 반영하는 동전의 양면
88만원 세대, 상실감 저항으로 표출…히틀러 정권 하층민 다수가 지지

‘안녕’ 신드롬 현상에 대해 충북대학교 사회학과 허석렬 교수는 “개인의 문제로 가두는 주술에서 학생들이 벗어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허 교수는 “청년 취업 자체가 어려운 현실에서 구조적인 해결보다는 스펙을 쌓는 등 알아서 해결하라는 관념을 주입받았다”며 “기존 틀을 벗어나는 변곡점을 찍은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안녕’신드롬 현상에서 허 교수는 내면을 들여다 볼 것을 강조했다. 그는 “단순히 경제문제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문제도 예리하게 보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학생들이 연대를 강조하는 대목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원대학교 정치학부 김연각 교수는 ‘안녕’ 신드롬 현상에 대해 “꿈을 빼앗긴 세대의 반란”으로 의미를 규정하지만 촛불세대 만큼의 지속성에 대해서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현재의 청년세대는 기성세대에 의해 화초처럼 길러진 세대”라며 “건방져도 안되고 대들면 안되고 시키는 대로 말 잘 듣로록 강요받았다”고 분석했다. 또 “이번 사건은 순응된 세대가 사회의 부조리한 현상에 대해 반응하기 시작한 것을 보여준다”며 “잊혀졌던 젊은 층의 저항감이 표출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지속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했다. “지금의 대학세대는 이전 학생운동과 비교해 조직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며 “촛불은 집회에 참석하는 몸의 실천으로 표현됐지만 이번 현상은 아직 그것까지 이르지 못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한편 ‘일베’ 혹은 ‘안녕’신드롬에 반대하는 현상 또한 두 교수 모두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절망감이 심할수록 이를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개혁적인 방향으로 해법을 찾는 계층도 있지만 반대로 극단적인 인종주의 혹은 민족주의와 같은 우익적인 흐름도 강화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히틀러의 파시즘을 지지하는 최대세력은 하층민이었음을 상기해보면 두가지 현상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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