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돈 문학테라피스트

▲ 권희돈 문학테라피스트
시를 배우는 국어시간에/다른 애들이 화사한 목소리로/노오란 튤립을 애기할 때/대준이는 듣고만 있었다 …(중략)… 처음부터 표정 없던 대준이가/“담배꽃이요!”/와-무너질 듯 흔들리는/아이들의 꽃밭 한 녘 …(중략)… 책가방도 되고 청바지도 되고 가끔은/달콤한 아이스크림도 되는/아버지의 억센 손아귀에서 피어나는/대준이의 담배꽃
─ 김시천 <담배꽃>

담배 농사는 민중의 삶 그 자체였다. 뙤약볕 아래 숨을 헐떡이며 담뱃잎을 따는 일도, 온가족이 모여 새끼줄에 담뱃잎을 꿰는 일도, 밤잠 설치며 건조실에 담배를 말리는 일도,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말린 담배의 등급을 받는 일도, 모두 한 순간 한 순간 아버지의 억센 손끝이 중심이었으며, 그 순간 순간에 가족의 눈물겨운 희망이 배여 있었다. 그래서 우리들의 대준이는 그 시절 담배꽃을 희망꽃이라 부르지 아니하였던가!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예술이 어디 있는가?

요즘 청주 연초제조창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두고 뜻있는 이들이 고민 중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단언컨대 이는 고민할 일이 아니다. 쓸데없는 욕심 버리고 단순하게 판단하면 해답은 간단하다. 카이사르 것은 카이사르에게 주어라, 라는 말이 있듯이 연초제조창은 연초제창에서 일하던 분들에게 그리고 담배농사를 짓던 민초들에게 돌려주면 된다.

그분들의 삶을 고스란히 재현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기억해낼 수 있는 글과 사진과 기계와 부속품들을 진열하여야 한다. 이는 단지 연초제초장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청주의 역사를 민중의 역사를 재현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아마도 지금처럼 일 년에 한 번 꽃단장을 하고는 내내 흉물스럽게 서 있지는 않으리라 확신한다. 사철을 두고 구름떼처럼 이곳에 발길이 머무를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공간을 직지와 융합하면 아주 멋진 연초제조창의 테마파크 스토리텔링이 될 것이다. 제3의 정보혁명인 금속활자의 발명과 제3의 정보혁명인 컴퓨터가 만나서 문화의 꽃을 피우는 드림 스토리텔링이 될 것을 확신한다. 컴퓨터로 만들어내는 출판, 인쇄, 디자인, 그래픽으로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건물로 변할 수 있다면, 이는 또한 연초제조창의 새로운 문화컨텐츠 제조창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청주 사람들이 내는 책을 청주에서 내도록 하고, 청주에서 책을 내는 일이 자랑스러운 일이 될 수 있도록 집중해 보라. 다리 하나 만드는 재원이나 길바닥 하나 만드는 재원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힘이 붙으면 타지역 사람들도 이곳으로 눈길을 갖게 되어 있다. 그러면 청주는 그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과거를 현재화 한 도시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것이다. 명실 공히 문화도시로서의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이길은 탄탄하고 화사한 길이요, 시셋말로 성공이 보장된 길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찍어낸 도시라고 자랑만 하는 일은 과거의 물속으로 다이빙하는 호랑이와 다름없다. 그것은 내 조상이 과거에 무슨무슨 벼슬을 했다고 자랑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역사는 현재에 살아 움직이는 역사여야 하지, 화석화된 역사가 되면 아무리 훌륭한 역사라도 그것은 죽어 있는 눈 먼 동상이 되고 만다.

나는 이 글을 여러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불특정다수의 독자들이 읽고 역사와 문화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특히 충북을 이끌어가고자 하는 분들이 이 글을 읽고 문화도시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를 재인식하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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