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떼기 10억원, 배달사고 단 한 푼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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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떼기 10억원, 배달사고 단 한 푼도 없어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3.12.1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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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사에는 오점…당내에서는 오히려 원로대접
지난 대선에서는 충북선대위 상임고문으로 백의종군

인생史…세상史-신경식 편
①정치준령의 ‘7부 능선’에 살다
②정일권의 남자 중용을 배우다
③개가 ‘돈’을 물고 다니던 시절
④차떼기 수렁에서 원로로 남다

“권력의 7부 능선에 살았다”는 고백처럼 신경식 전 의원은 정일권 국회의장의 비서실장을 시작으로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 비서실장, 김영삼 신한국당 총재(대통령 재임 시) 비서실장,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 이회창 한나라당 명예총재 비서실장 등 최고위 권력의 주변에서 머물렀다. 신 전 의원은 “항상 중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정상을 향해 무리하게 몸부림치지 않은 결과”라고 자평한다. 그는 또 “관운도 따랐다”고 인정한다.

김영삼 대통령의 총애를 받던 신 전 의원이 대통령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비서실장을 맡게 되기까지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김 전 대통령과 이 후보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은 이 후보가 대통령과 상의도 없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추석 전 사면을 공표했기 때문이다. 이 후보가 아들의 병역의혹과 당내 경쟁자였던 이인제 후보의 탈당, 독자 출마로 지지율이 급락하자 보수층을 결집시키기 위한 카드로 사면을 꺼내들었던 것이다. 결국 김영삼 대통령은 “이회창이 무슨 대통령감이냐”며 후보교체론을 내세우기에 이르렀다.


신 전 의원은 “대통령 선거를 두어 달 앞두고 이 후보가 찾아와 ‘비서실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배려로 장관까지 한 마당에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사양했다. 그런데 다음 날 조간신문에 ‘이회창, 비서실장 신경식 의원 임명’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그 상황에서 수락하지 않으면 ‘이 후보가 힘이 빠져 비서실장도 임명하지 못한다’는 말이 번질 것 같아서 비서실장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신 전 의원은 또 “이회창 후보에게 가고 보니 민주당에서는 사쿠라(벚꽃의 일본말, 야합하는 정치인이라는 의미)라고 비웃었고, 민정계는 배신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나중에 YS도 오해를 풀었다. 지금은 양쪽 다 세배를 다닌다. 그런 게 충청도 의리가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7부 능선에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만드는 일화다.

“재선 상임위원장, 박희태와 나뿐”

“재선 때 상임위원장을 한 사람은 나랑 박희태(6선·18대 국회의장 지냄)뿐이다. 문공위원장을 맡았는데 직전에는 5선이 하던 자리였다. 3선 때는 당 사무총장을 맡았다.” 그 일만 없었으면 국회의장도 할 기세였다. 그 일이란 이른바 ‘차떼기’ 사건이다. 신 전 의원은 차떼기 사건이 불거질 것을 예감했던 것일까? 신 전 의원은 2003년 말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나 2004년 초 정국은 한나라당 대선자금 수사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신 전 의원은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2002년 12월18일 오후 10시 투표를 하루 앞두고 파기)가 이뤄지자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가 급락했다. 노 후보가 신행정수도 유치공약을 내걸면서 내 지역구인 충북이 흔들렸다. 투표 일주일 전 종친회에서 인연을 맺은 롯데그룹 신씨 일가에게 어려움을 알렸다. 신동인 롯데쇼핑 사장이 ‘문중사람이 중책을 맡고 있는데 성공해야한다’며 현금으로 10억원을 건네주었다”고 말했다. 주차장에서 현금 10억을 트럭으로 날랐다는 차떼기 사건의 발단이다.

1000만원씩 담은 비닐봉투 100개를 차에 싣고 소위 실탄을 나눠주기 위해 지역으로 내려왔다. 떠나기 전날 밤 지구당 위원장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충북은 도지부로, 충남은 예산으로, 대전은 유성온천으로, 강원은 원주로 집결시켰다.

중부권이 어려워져 마지막 특별 활동비를 주는 것이라며 비닐봉투를 나눠줬다. 위원장들은 중앙당에서 주는 지원금인줄 알고 부담 없이 받아갔다. 수도권지역은 여론조사에서 밀리는 지구당을 지원했다. 차떼기 사건의 전모다.

차떼기 구속, 추징금 내지 않아

▲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비서실장을 맡아 득표 전략을 논의하는 신경식 전 의원.
신 전 의원은 일주일 동안 조사를 받고 구속됐다. 재판이 끝날 때까지 두 달 동안 수감생활을 했고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풀려났다. 신 전 의원은 “담당 검사가 조사 후에 놀랐다고 하더라. 10억원이 당에 정식 접수되지 않아 유용됐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시작했는데 사용처가 정확히 드러났다. 다만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았고 개인이 집행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당시 구치소 안에는 선거에 관련돼 현역 국회의원과 전직 장관 등 18명이 수감됐는데 추징금을 단 한 푼도 내지 않은 사람은 나뿐이었다”고 강조했다.

신 전 의원이 수감되기 직전 동갑내기로 가깝게 지내던 안상영 부산시장이 검찰조사를 받던 중 자살했다. 신 전 의원은 “구치소에서 ‘안 시장의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이제 와서 범법자로 몰려 남은 생을 수치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심정을 일기에 적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수감생활도 경험으로 여기며 이겨냈다고 한다. 60일 동안 364명이 면회를 왔고, 특히 이회창 총재가 두 번이나 다녀갔다. 신 전 의원은 그때 다녀간 이들과 책을 차입해준 사람들을 기억하고 기념한다. 신 전 의원은 저서 <7부 능선엔 적이 없다·2008년·동아일보>에서 책을 차입해준 고마운 사람들로 오선교 선엔지니어링 회장을 거론하기도 했다.

신 전 의원은 현재 새누리당 상임고문이다. 차떼기 수렁에서 단 한 푼도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것이 확인되면서 당내에서는 오히려 원로의 입지를 굳히게 된 것이다. 지난 대선 때는 충북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을 맡았다. 중앙당에서 상징적인 자리를 맡기보다는 선거운동 일선에서 백의종군한 셈이다.

신 전 의원은 당시 충청리뷰와 인터뷰에서 “선거 때는 청주에 내려와 있겠다. 당에 앉아서 지역상황도 체크하고, 청주·청원이 통합되는 만큼 지역을 두루 다니면서 선거운동에도 참여해 ‘전직도 애쓴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신경식 전 의원은 구시대 정치인이다. 자서전에서도 자신이 정치하던 시절을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차떼기를 미화하고 구시대 정치를 칭송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옛날 정치인들은 사람을 소중히 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선거 때만 허리를 숙이고 당선되면 고개가 뻣뻣해지는 요즘 정치인들을 보면서 그들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신경식 전 의원편 연재를 마칩니다. 2주 후 이용희 전 의원편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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