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시국미사, 국가 불법행위 진상 규명 요구 종복논란에 휘말려
4대 종단 진보 성직자 연이은 시국선언, 박근혜 대통령 ‘불통 정치’ 돌파구 역할 기대

정치와 종교 성직자 긴급 좌담회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박근혜 대통령 퇴진 시국미사와 박창신 원로신부의 강론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의 종북논란이 종교계로 번지고 있다. 종교와 정치의 분리, 정교분리는 30년전 유신·군사독재시절 정권비판에 앞장 선 종교인들에게 던졌던 화두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이후 국가정보원의 불법 대선개입 의혹이 불거지면서 사회적 논란이 커졌고 천주교 사제단이 대통령 퇴진을 주장한 시점에 다시 발화되기 시작했다. 본보는 지난 2일 도내 진보적 성직자 3명을 초대해 ‘종교와 정치, 종교인과 정치참여’란 제목으로 좌담회를 가졌다. 참석자는 곽동철 천주교청주교구 원로사목장, 김태종 삶터교회 목사, 진화 용천사 주지스님이며 사회는 본보 권혁상 편집국장이 맡았다. <편집자 주>

▲ 곽동철 천주교청주교구 원로사목장 ▲ 김태종 삶터교회 목사 ▲ 진화 용천사 주지스님

사회
:오는 5일 광주지역 5대 종단(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대표들이 공동 시국선언을 하기로 했다. 박창신 원로신부의 시국강론에 대한 당국의 조치를 ‘종교 탄압’ 이자 ‘종북몰이’로 규정하고 이를 규탄하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우선 박 원로신부의 발언내용을 짚어봐야 할 것 같다.

:박 신부는 신학교 동기라서 누구보다 잘알고 있다. 이번 사태 직후 녹화된 강론내용을 시작부터 끝까지 자세히 봤다. 전체 20분 정도 강론을 했는데 문제의 NLL, 연평도 포격 언급은 2분에 불과했다. 강론의 핵심은 앞부분이었다. 군사독재정권에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되찾게 됐는지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 위기를 얘기한 것이다.

대선에서 국가정보기관의 선거개입이 명백하다면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은 이 부분은 아예 거두절미하고 끝에 2분 언급된 내용을 놓고 시비를 거는 셈이다. NLL은 한국전쟁 직후 미군에 의해 일방적으로 설정된 해상 경계선이다. 육상 군사분계선은 휴전협정에서 양측이 합의했지만 해상은 그렇칠 못했다. 천안함 사건은 NLL 일대에서 대규모 한미 군사훈련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잠수함이 그 틈을 뚫고 들어와 폭파시키고 갔다는 것인데…, 외국 전문가들도 의문을 제기하는 곳이 많다. 연평도 포격도 우리나라의 독도 영유권을 예로 들다 나온 얘기다.

일본이 독도를 침범해 들어왔을때 대통령은 사격명령을 내리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북에 입장에서 보면 NLL은 자신들이 인정하지 않는 해상 경계선이기 때문에 군사훈련을 감행할 경우 대응조치를 하겠다고 예고했고 실제로 그렇게 한 것이란 설명이었다. 민간인들이 거주하는 유인도를 폭격한 것은 북한군의 큰 잘못이란 지적을 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은 있다.

:나무를 비유하자면 뿌리와 꽃은 외면하고 잎사귀 하나를 놓고 ‘이게 이 나무다’라고 외치는 꼴이다. 박 신부의 강론을 다 들어보면 많은 분들이 이해할 것이다. 과연 우리 민주주의를 얘기한 것인지, 종북하자는 선동인지. 발언 한 부분을 전체인양 왜곡시켜 국민을 분열시키려 하고 있다. 이런 ‘이간질 정치’야 말로 과거 지역주의를 이용한 선동정치의 뒤를 잇는 편가름 정치다.

NLL이나 연평도 포격 발언도 남북관계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평화공존과 신뢰회복의 필요성을 설명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거라고 본다. 서로간의 신뢰회복을 위해 상대쪽 입장에서도 살펴보자, 이런 의미 아니겠는가? 분단극복과 통일문제는 정치를 떠나 우리 민족의 숙원이며 종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평화 실현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시국상황은 일반 시민들이 말은 안해도 잘못되가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느끼고 있을 것이다. 통합을 내세워 당선된 정권이 정당해산을 시도하고 교직원·공무원 노조를 불법으로 몰아가고 결국엔 성직자의 양심적 발언까지 수사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이런 과정이 이른바 ‘종북 프레임’이란 틀속에 국민의식을 가둬놓고 벌어지는 일이다.

심지어 ‘반대만 하면 종북’이란 우스개 얘기가 나올 정도다. 정권과 보수언론이 합작한 ‘종북 프레임’ 속에서는 시민들이 감히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성직자들이 대변자로 나선 것이다. 정권이 성직자들의 목소리에 겸허하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과거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사회:대한민국 헌법 20조는 “우리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종교인의 정치참여를 비판하고 있다. 성직자의 정치적 행위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기독교 역사를 보면 로마시대에 순교를 당하자 결국 권력과 야합하면서 세속화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를 빙자해 정치에 직접 참여하고 권력을 누리게 됐다. 마침내 교회의 타락에 대항해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이때 정교분리 원칙이 확립된 것이다. 성직자들이 그 지위를 이용해 권력에 참여하지 말란 얘기다.

과연 성직자가 국민으로서 양심에 비춰 정의를 부르짖고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권력에 참여하는 일인가? 그 잘못된 권력을 비판함으로서 오히려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야 한다는 하느님 말씀대로 실천하며 사는 것이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사제들이 민주화 이후 무슨 권력을 누렸는가? 그게 정치참여라면 그로인해 무슨 이익을 얻었는가? 지금의 정교분리 주장은 정치가 종교를 악용하기 위한 뒤집어 씌우기라고 본다. 감시받고 비판받기 두려우니까, 종교인들의 입을 막고 발을 묶자는 속셈이다.

:정교분리는 성직자의 정치적 이익을 방지하자는 취지로 제시된 원칙이다. 성직자의 정치적 발언을 막는데 사용하는 것은 그 취지에 어긋난 것이다. 성경 아모스 5장 24절에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고 말씀하셨다. 이 땅에 정의를 세우는 일에 우리 기독교인이 앞장서야 한다. 부정한 세력의 입맛대로 정의가 왜곡된다면 성직자들은 하느님의 사제로서 신도들의 사제로서 발언해야 한다.

:우리 불교는 호국불교 정신이 자리잡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청주성 탈환도 승병의 활약이 컸다. 그러한 호국, 애국 정신으로 위정자들의 국가운영을 살펴보고 있다. 잘못가고 있다면 깨어있는 시민들과 함께 그 점을 지적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할말을 할 수 없이 만드는 세상일 수록 성직자들이 앞장서 나서야 한다. 정치에 대해 말은 많지만 보수신문과 방송들의 왜곡된 보도가 사실상 언로를 막고 있다.

국가와 시민간에 소통기회를 제공해야 하는데 오히려 막고 있단 말이다. 그러다보니 산중 사찰에 있는 스님들까지 나서는 상황이 된 것이다. 오죽했으면 ‘대통령 사퇴’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종교인의 양심에 따른 행동을 정치로 포장해 왜곡시키려 하지만 결국 국민들은 진실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 지난 8월 29일 청주 내덕동 주교좌 성당에서 열린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에 대한 특검실시를 요구하는 천주교 청주교구 시국미사.

애국은 정권사랑이 아닌 국가·국민사랑

사회:우리 정치는 두번의 정권교체를 경험했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착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성숙도도 상당한 수준이 됐고 개개인이 두려움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조건에서 종교계의 정치적 발언이 과도한 개입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우리 언론현실이 메이저 보수신문을 비롯해 공중파와 종편방송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지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좌경용공 - 좌빨 - 종북까지 어느 사전에도 나오지않는 단어를 그 매체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종북이란 결국 사상과 성향을 얘기하는 건데 통일, 복지, 노동문제를 양심껏 거론하면 종북 올가미를 씌운다.

이렇게 조작된 여론을 형성하다보니 여론불신 때문에 더 이상 양심적 발언을 하기가 힘들다. 이게 과연 두려움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인가? 정부는 국가기관을 동원해 헌법 위반을 하고 종북을 방패로 삼으면 국민은 거기 놀아나는 형국이다. 이런 사회는 정의를 생산하지 못하는 구조다. 그래서 정의를 생산해 바로 세우자는 뜻으로 시국기도회가 열리는 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사랑하는 것이 애국이다. 애국은 결코 정권사랑이 아니다. 왜 절반의 국민을 등돌리게 만드는가? 사람답게 더불어 사는 삶이 그리스도적인 삶이다. 우리 언론이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대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갖춘 것은 맞다. 하지만 가난 극복, 경제 개발은 좋은데…강조가 지나치다 보니 이젠 모든 게 돈, 돈 하는 세상이 되버렸다. 이득만 있으면 성공이란 생각이 만연하고 있다. 경제 살리기가 국가 최고의 가치가 되버렸다. 물질에 대한 숭배는 정의가 자리잡을 틈이 없다. 돈이 아닌 인간중심의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 종교인들의 바람이다. 역설적이지만 진실은 손해보는 것이다. 손해를 감수하고 옮음을 주장하는 거다. 거짓은 이익을 쫓는 행위다.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타인의 불행을 외면하는 것은 거짓된 삶이다. 우리 종교도 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복신앙을 통해 신자를 현혹하고 재물을 모으려는 거지 성직자들도 있다. 과연 성숙된 시민사회, 공동체 사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런 문제점에 대해 그때그때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이 종교인 사명이라고 본다. 쌍용자동차 대량 해고사태, 4대강 환경훼손 문제도 그런 선상에서 우리 사제단이 입장을 뚜렷하게 밝힌 사안이다.

:언젠가 반값등록금 도입을 위한 시민서명운동에 참여했다가 그냥 지나치는 젊은이에게 물어봤다. 왜 서명을 안하는냐고‥ 돌아온 대답은 ‘등록금은 엄마가 내요’였다. 물론 귀찮아서 던진 말대답일 수 있지만 자기 일이 아닌듯한 태도에 깜짝 놀랬다. 내 일이 아니면 관여하지 않겠다는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를 타면서 한 약국엘 들렸는데 약사분이 행선지를 듣더니 선뜻 마스크 100여개를 그냥 내주셨다. 이렇게 내 이웃과 주변을 살필 줄 아는 의식이 없어져간다. 이게 바로 바보상자, 진실을 호도하는 TV탓이라고 생각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사상, 평상심에 입각한 중립적 기능을 해야할 방송들이 일방의 주장을 담은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편가르기 하지말고 더불어 함께 살기 절실

사회:정부와 보수언론의 과도한 이념공세에 대해 야당은 신공안정국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야간 정치적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제안을 하신다면.

:정부가 반대편을 제압하기 위한 종북몰이를 중단해야 한다. 그를 통해 상대편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자신도 죽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도 유신헌법으로 종신 대통령이 돼 반대세력의 씨를 말리려다가 불행한 종말을 맞은 것 아닌가?

국가경영은 모든 국민이 더불어 함께 가는 것이다. 편가르기 하지말고 서로 용서하며 더불어 함께 살자는 것이 시국미사의 본 뜻이다. 지금 상가집에 가보면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얼마나 심한 지 알 수 있다. 똑같은 죽음인데 문상객 하나없이 장례식장비가 없어 도망치는 집이 있고 조화가 꽉차고 부조함이 꽉차서 오히려 돈을 챙기는 상가집이 있다. 이런 불행한 세태를 막아야 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고 그것을 돕는 것이 종교인의 역할이다. 더불어 함께 살기 위한 시국미사를 더 이상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된다.

:정권이 스스로 정당하다면 ‘부당하다’ 이의제기해도 그려러니하고 갈텐데, 손가락질만 해도 종북으로 가리기에 급급하는 모양새다. 결국 스스로 정당성을 의심하다보니 과도한 반응과 역공을 펴고 있다고 본다. 나약한 백성들은 힘있는 나쁜 놈 편에 설 수 있다. 하지만 정권이 힘없는 착한 백성을 등지게 되면 엄청난 불행을 초래하게 된다. 힘있는 나쁜 놈 편 들지 말라고 말해주는 게 종교다.

목회자정의평화위원회, 예수살리기 모임등이 그런 발언을 해왔다. 하지만 일부 성직자들은 정권친화적이고 비호하고 추켜세우기에 앞장 선 경우도 있다. 정직하지 못한 정권을 찬양해 교회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정권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과연 영원할 수 있는 것인가, 자문해 봐야한다.

:오늘 아침 스님 몇 분과 신부님들의 시국미사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한분이 ‘아직 불난리가 난 것 아니고 연기가 나는 건데 너무 성급한 것 같다’고 하니 몇분이 거기 동의하셨다. ‘상황이 급박해지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르다. 연기가 나고 있다면 불이 커기지 전에 ‘불이야’라고 소리쳐야 한다고 본다.

지금 국가정보기관 대선개입을 수사하던 검찰총장과 수사팀장이 쫓겨났다. 청와대 직원이 검찰총장 사생활 정보를 빼낸 것으로 밝혀졌다. 연일 계속해서 드러나는 국가기관의 불법행위를 제대로 조사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본다. 그래서 특검을 하라는 주장인데 성직자들까지 호도하면 국론분열을 통한 국가적 낭비가 될 것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을 안보고 손가락만 붙잡고 시비하는 꼴을 정부여당이 벗어나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

지난 3월 남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제 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정치적(?) 발언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과 불평등이 만연한 현실을 개탄하며 규제 없는 자본주의를 ‘새로운 독재’라고 비판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아무런 개혁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금융시장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3월 즉위 이래 연설한 내용을 토대로 직접 저술한 224쪽 분량의 저서 ‘복음의 기쁨’을 발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이 보도한 내용을 간추려 본다.

교황청의 공식 강령이라고 할 수 있는 첫 교황권고 문서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불평등 해소가 시대적 과제라고 천명하고 전 세계 지도자들의 해결 노력을 촉구했다.

그는 “불평등은 사회악의 근원”이며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을 차단하고 투기행위를 근절하는 등의 노력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세계의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살인하지 마라’는 십계명을 현시대에 맞게 다시 고쳐 말하면 경제는 사람들을 불평등하게 하거나 소외시켜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고 설명하며 “집 없는 노인이 길에서 죽는 것은 기사가 안 되고, 주식시장에서 지수가 2포인트 떨어지는 것은 기사가 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자본주의와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완전한 자유방임 시장과 투기로 인해 불평등이 발생한다”며 “(자본주의가) 공공선을 위해 시장을 감시하고 통제해야 하는 국가의 권리를 묵살하는 ‘새로운 독재’로 탄생했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자유시장 실패로 인한 불평등, 부패, 탈세 등의 부작용을 없애는 책임을 져야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금융시장에 대해서는 “돈은 (사람에게)봉사해야지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전제하며 “현재 금융위기는 인간이 돈에 우선한다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금융 개혁을 위해서는 “투자자들의 지나친 탐욕을 억제하고 투기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규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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