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사항 외면, 변종 SSM 상품공급점 진출하려다 ‘덜미’
SSM 5곳 입점, 상품공급점 14곳 인수…시장점유율 50%

청주는 2000년대 중반 대형마트를 앞세웠던 대형유통사들이 SSM(기업형 슈퍼마켓)을 내세워 골목상권까지 진출하는 과정에서 청주지역 소상인들은 전국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가장 먼저 대형유통사와 맞서 싸웠고, 시민들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청주는 상권을 장악하려는 대형유통사를 상대로 생존권을 지키려는 소상인들이 가장 격렬하게 투쟁한 성지와도 같다. 청주 소상인들을 결집시키고,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낸 원동력은 아이러니하게도 홈플러스였다. 소상인들의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형마트는 24시간 영업과 SSM을 입점시킨 홈플러스는 소상인과 전통시장, 이들을 걱정하는 시민들에게는 공공의 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유통법이 개정됐고, 상생협약을 이끌어내는 등 공존의 가능성도 엿보였다. 하지만 최근 유통업계는 후발주자로 진출한 롯데로 인해 다시 악화되는 분위기다. 소상인들이 롯데를 공공의 적으로 지목하기 시작했다.

▲ 롯데쇼핑이 청주시 봉정동에 상품공급점 입점을 진행하다 소상인들의 반대에 부딪혀 간판을 떼는 촌극을 벌였다. 충북지역경제살리기네트워크는 이날 상품공급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롯데쇼핑의 꼼수를 비판했다.

이름만 다른 또 하나의 SSM

최근 롯데쇼핑이 변종 SSM으로 불리는 상품공급점 개점을 준비하다 소상인들의 반발로 걸었던 간판을 떼는 촌극을 벌였다. 충북지역경제살리기네트워크는 지난 26일 청주시 봉정동 소재 롯데쇼핑 상품공급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상품공급점의 간판 철거와 상품공급점 확대 중단을 요구했다.

상품공급점이란 대형 유통업체로부터 상품을 공급받아 판매하는 마트지만 개인사업자가 운영하기 때문에 의무휴일, 영업시간 제한 등의 규제를 받지 않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날 충북지역경제살리기네트워크는 “이곳 상품공급점은 무엇인가? 영업도 하기 전에 롯데슈퍼마켓 간판을 내다 건 이유가 무엇인가? 이것이 롯데쇼핑의 묵인 없이, 개인 점주의 결정으로 가능한 일인가? 상인단체와 했다는 합의문은 국정감사를 피하기 위한 면피용인가”라며 롯데쇼핑의 꼼수를 비판했다.

이들의 주장은 재벌유통기업과 상인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유통산업연합회가 지난 10월 10일 합의한 합의문에 근거한다. 이 합의문에 따르면 변종SSM으로 지탄받는 상품공급점에 대해 대기업 간판 사용을 전면금지하도록 했다. 또한 유통기업 상호가 포함된 전단지를 배포하거나 유니폼 착용, 상품권·포인트 공유, 포스(POS) 설치도 하지않겠다고 상인대표들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합의 이후 개점준비를 진행한 봉정동 상품공급점에서 롯데쇼핑은 이 같은 합의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충북지역경제살리기네트워크는 또 최근 청주 유통시장에 급속히 빠른 속도로 진출하고 있는 롯데에 대한 경계심도 드러냈다. 이들은 “우리는 청주지역을 중심으로 한 롯데쇼핑의 공격적인 진출을 주시하고 있다. 롯데쇼핑은 청주 지역에 대형마트 3곳과 아울렛, 직영 슈퍼마켓 4곳은 물론, 변종 SSM인 롯데마켓 999와 하모니마트 14곳도 거느리고 있다”고 지적하며 “서청주점을 개점할 당시엔 유통법을 피하기 위해 복합쇼핑몰로 등록하는 꼼수를 부렸고, CS유통(굿모닝마트, 하모니마트)을 사들여 단숨에 SSM 시장 1위로 뛰어올랐다. 청주 지역에서 롯데쇼핑의 SSM 시장 점유율은 50%에 달한다. 전체 40개 SSM 가운데 19곳이 롯데쇼핑 SSM이라는 사실은, 규제법을 피해 몸집 불리기를 해왔음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도매유통마저 점령한 대기업

충북청주경실련 관계자는 “롯데쇼핑의 무차별적인 상품공급점 확대는 기존 골목 슈퍼 붕괴는 물론, 도매 유통마저 재벌 유통기업에 넘어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충북지역경제살리기네트워크는 롯데쇼핑의 공격 경영을 멈출 것을 요구하며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강력 대응을 시사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대형유통사들은 상품공급점이 변종 SSM이라는 지적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달 1일 국감에 증인으로 나온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도 “소비자에게 혜택을 드리고 영세상인들에게 이마트의 경쟁력을 나눠드리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라고 상품공급점을 정의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볼 때는 기존 SSM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보니 논란이 됐고, 협의를 통해 대기업이 운영하는 것으로 느낄 만한 표기 들을 없애는 것으로 합의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미 간판을 달고 영업 중인 상품공급점은 계약기간 만료일까지 간판을 걸도록 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여전히 대형마트라고 느낀다는 점이다.
SSM규제 이후 새롭게 선보인 상품공급점은 지난달까지 전국적으로 700개 이상 문을 연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법의 허점을 공략한 변종 SSM이라는 상인들의 주장이 힘을 얻는다. 상인들은 유통법 개정을 통해 변종 SSM에 대한 영업규제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상품공급점 주변 슈퍼마켓 70% 매출 감소 
중소기업중앙회, 주변 중소슈퍼 경영실태 조사 발표

중소기업중앙회가 상품공급점 확산에 따른 주변 상권의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달 25일까지 상품공급점 반경 1㎞내에 있는 슈퍼마켓 주인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곳 가운데 7곳의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고, 감소한 점포 10곳 중 3곳은 매출이 30%이상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결과 상품공급점의 54%가 인근 슈퍼마켓보다 평균 13.4% 싸게 판매하고 있는 반면, 상품공급점의 판매가격이 비싼 경우는 8.7%에 불과해 가격경쟁력에서 기존 슈퍼마켓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상품공급점의 상당수는 롯데쇼핑이 하모니마트를 인수한 청주 사례처럼 신규입점이 아닌 기존 점포를 인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결과 신규입점이 57%였고, 기존 점포를 간판만 교체한 경우는 37%였다. 또한 응답자들은 상품공급점이 개인사업자지만 대형 유통업체의 골목상권 변형 출점이므로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90.7%가 규제해야 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대형마트와 상품공급점의 규제 방식에 대해서는 67%가 주변 상권 내 대형마트 출점을 제한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다음으로는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일 확대(46.7%)’, ‘카드수수료 인하 및 세부담 완화(25.7%)’, ‘중소상공인전용 도소매물류센터 건립(16.7%)’ 등의 순으로 요구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이운형 소상공인정책실장은 “최근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상품공급점 때문에 골목상권의 경쟁이 심화되고, 소상공인 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어 이에 대한 조속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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