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적고 소모품 취급… 버림받은 비정규직 노동권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 국회의원부터 학부모까지 무시

헌법 제33조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 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노동자들이 이 권리를 누리기엔 상황이 녹록치 않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행사하면 ‘귀족노조 파업’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규모가 있는 노동자들이 여름에 파업이라도 하면 ‘가뭄에 웬 파업’이라며 날씨까지 동원된다.

그러나 비정규직에겐 이런 정도의 비판은 꿈에 불과했다. 실상 비정규직은 헌법 밖의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은 이런 비정규직의 실태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했다.

지난 24일 새누리당 김 의원은 국회청소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며 “이 사람들 이제 노동3권 보장돼요. 툭하면 파업 들어가고 뭐하고 하면 어떻게 관리를 하겠어요”라고 말했다. 김 의원의 말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법 안의 권리’는 꿈에 불과했다. 그들은 여전히 법 밖의 재외국민이었다.

▲ 비정규직은 풀만 뜯어 먹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비정규직노동자 주봉희씨가 비정규직 처지를 빗대 풀 먹는 퍼모먼스를 벌이고 있다.

지난 11월 15일 공공운수노조학교비정규직본부충북지부(이하 학비노조) 소속 200여명의 노동자들은 파업을 진행하며 상당공원에서 도교육청까지 도보행진을 진행했다.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요구는 단순했다.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단체 협상에 이기용 교육감에 “노동법에 정해진 대로 성실히 교섭하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 교육청 철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이기용 교육감의 응답을 기대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대신 충북학교학부모연합회(회장 김용희, 이하 학부모연합회)가 "파업에 동참한 급식원 및 영양사 등을 즉시 해고하라"고 무지막지하게 응답했다.

김용희 학부모연합회장은 교육청 기자실에서 진행된 회견에서 "아이들을 볼모로 어른들의 목적에 이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뒤 “파업노동자들에 대한 퇴출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학교급식노동자들의 직업 자체를 모독하는 발언도 나왔다.  학비노조에 따르면 14일 청주시 모 중학교 자모회원들은 학교로 찾아와 “수고비 받지 않냐! 더럽고 치사하다. 그 돈 받고 일할 사람 많다. 영양사 조리사들 갈아 치우겠다”고 말했다.

학비노조의 파업으로 충북 28개교에서 급식 차질이 생긴데 대해 인격비하적인 말까지 나온 것이다.

그러나 급식이 파행을 빚은 것에 대한 책임은 학비노조와 파업 노동자에 있지 않다. 학교급식법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해당 교육감에 있다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이법 제3조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양질의 학교급식이 안전하게 제공될 수 있도록 행정적·재정적으로 지원하여야 하며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또 “교육감은 매년 학교급식에 관한 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고 돼있다.

따라서 학비노조의 파업으로 급식이 차질이 생겼다면 당연히 교육감과 해당 학교장의 책임이 우선했다.

반면 헌법 제33조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 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단체와 학부모들은  헌법에 명시된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불이익 조치를 요구했다.


피부색 같아도 대접은 재외국민

충북대학교 병원에서 간병사로 일하는 송정애 씨는 오늘도 냉장고에서 꽁꽁 얼려진 얼음밥을 꺼낸다. 전자레인지로 냉동밥을 녹이고 일주일전에 해온 간단한 밑반찬을 꺼내 병원 한 귀퉁이에서 식사를 한다.

간병 일을 하다 환자로부터 감염돼 병이 걸려도 산재보험도 되지 않는다. 정해진 퇴근 시간도 없다.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15일만에 퇴근한다. 정해진 고정급여도 없다. 그가 하는 일은 환자를 돌보는 간병일이지만 병원에서 그들은 투명인간이다.

노동계에선 그와 같은 사람들을 ‘특수고용노동자’라 부르고 근로기준법에선 ‘개인사업자’로 분류한다. 현재 이들에게는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노조를 만들 수도 없고 병원과 교섭도 할 수 없다.

중증 장애인들의 이동과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을 돕는 활동보조인들도 마찬가지다. 매달 급여를 받지만 이들도 노동법상 노동자가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활동보조인의 업무 영역이 국가가 수행하는 ‘바우처’사업이기 때문이다.

활동보조인들의 임금수준은 충격적이다. 남윤인순(민주당, 비례대표)의원실이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활동보조인들이 받는 급여는 근로기준법의 최저임금에 한참 못미쳤다.

2013년 6월 현재 충북지역내 1121명의 활동보조인 평균임금은68만681원에 불과했다. 반면 2011년에는 69만1791원을 받았다.

근로기준법의 보호 밖에 있기 때문에 임금이 떨어져도 최저임금에 미달해도 이들은 하소연 할 방법도 없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싶어도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아 만들 수도 없다. 노동자로 인정받아도 비정규직이 무슨 노동권이 있냐며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공공운수노조 충북돌봄지회 김태윤 사무국장은 대한민국 법률은 “정규직 1등 국민, 노동자로 인정받는 비정규직 2등 국민,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재외국민으로 차별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현 실태를 꼬집었다.

 

노조가입도 차별, 비정규직가입률 1.7% 불과
정규직 평균임금 3392만원, 비정규직 평균임금 1686만원

2012년 말 기준 정부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전체 1773만 명의 임금근로자 중 33% 정도인 591만명이 비정규직이다.

반면 은수미(민주당‧환경노동위원회)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 통계에 건설 일용직들이 배제돼 있어 이들을 포함시키면 임금 근로자의 절반에 가까운 859만 명가량이 비정규직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2013년 3월 현재 정규직노동자의 평균임금은 연3392만4000원이다.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1686만원에 불과해 정규직의 50%에도 못미친다.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 1만5236원, 비정규직은 7925원으로 나타났다.

노동자들의 유일한 방어수단인 노조 가입률에선 그 차이가 더 벌어졌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가입률은 1.7%에 불과해 전체평균 10.3%에 훨씬 못미쳤다.

이에 대해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남신 소장은 “열악한 지위에 있으면 힘을 들여 노조를 만들더라도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없고, 또 고용 안정도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노조 결성이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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