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재표 · 글씨: 김재천

안보논리를 많이 활용할수록 정권은 보수적이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안보를 통치에 활용하는 빈도가 정권의 이념을 재는 척도다. 안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편안히 보전함’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안보를 자주 입에 올리는 보수정권이 안보의 성과도 높을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특히 안보의 개념을 국가의 안전을 지키는 것에서 좀 더 확장하면 확실하게 그렇지 않다.

광의(廣義)의 안보는 국민을 불안에 떨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북이 도발하면 몇 배로 응징하겠다”는 대통령이나 군 수뇌부의 발언은 국민을 안심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남북관계가 평온을 유지할 때 국민이 안심한다. 스포츠에서 남북이 단일팀을 꾸리고 개성공단을 통해 경협이 이뤄질 때 전쟁의 위험은 낮았고 국민도 평안했다.

2008년까지 진행했던 금강산 관광은 남북관계의 안전판이었다. 이는 바람과 햇볕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내기를 한 이솝우화가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초등학생인 막내아들이 겁에 질려 전화할 때가 있다. “아빠 전 아직 어리잖아요. 아직 죽으면 안돼요”라며 울먹일 때도 있다. 인터넷 포털에 ‘北, 미사일공격 위협’이라는 기사가 올라온 날이다. 분노를 억누르며 “포털 뉴스를 보지 마라”고 윽박지르면서도 가슴이 아프다.

진보정당 국회의원을 내란예비음모로 구속하면서 수사 초기부터 국가가 전복이라도 될 것처럼 피의사실을 떠들어대는 것도 광의의 안보에 역행하는 것이다. 안보, 안보하는데 안보가 안 보인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