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원 건축가

건축을 삶의 업으로 살아가는 나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대개 사는 게 힘들다는 것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 하고 물으면 대다수 사람들의 대답은 비슷하다.

‘힘들단다. 사는 게.’ 힘들다는 표현 속엔 현실적으로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인데 항상 우리 감정 속에 자리하고 있나보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새로 집을 짓겠다는 사람들인데, 부푼 희망과 기대로 무척 행복해야 할 사람들인데도 그러니, 그런 꿈도 못 꾸는 사람들이야 오죽할까 싶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쯤 행복해질까? 이제 좀 행복하다고, 내 삶에 감사한다고, 이 정도면 살 만하다고 느끼며 살면 안 될까? 불행한 삶이라 느끼는 건 스스로가 만드는 건 아닌지.

행복의 척도가 경제수준으로 인해 정해진다는 사고가 지배적인 것 같다. 과연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고 느껴질까? 조금 더 여유로운 건 인정하지만 그것도 사람마다 다른 듯하다. 해맑은 농부의 웃음 속에서 우린 행복이란 놈을 잠시 엿볼 수 있다. 아 저렇게 생겼구나.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저 그을린 얼굴의 멋진 미소 속에 행복은 숨어 있었다.

내 주변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많이 벌면 행복해지고 남들이 부러워할 것이란 생각으로 살아가는 참 구차한 갑부가 있다. 그 사람은 나의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를 보며 절대 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고 나를 뒤돌아본다.

인생은 전쟁터가 아니라 많은 것을 느끼고 즐기며 사는 거라는 논리는, 우리 전 세대들이 겪은 혹독한 가난 속에서는 절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처자식이 배가 고프고 제대로 배울 수 없을 땐 정말 삶 자체가 전쟁터 같았으리라. 돌아보면 전 세대들의 노고에 마음이 숙연해질 때가 있다. 원조를 받던 나라가 50년 만에 원조를 해주는 나라로 바뀐 ‘신화’에는 그들의 땀으로 이룩한 것이다.

초등학교시절 선생님이 너희들은 어른이 되면 집집마다 자가용이 한 대씩 있을는지도 모른다고 했을 때 천진한 우리들은 다들 꿈 같은 소리라고 크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 우린 그때의 꿈같은 시절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린 지금도 많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TV나 이웃을 보며 남보다 잘살지 못한다고 비교하면서 만족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우린 도대체 언제쯤 행복해질까? GNP가 더 높아지면 행복해질까? 경제활동이 더 좋아지면 행복해질까? 외국을 나가보면 우리가 참 풍족히 먹고 쓰고 사는 것을 느낀다. 풍요로운 것으로 치자면 경제대국이라는 일본보다도 오히려 나은 듯하고, 동남아 나라들하고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린 행복지수가 참으로 낮은 나라에 속한다고 한다.

이제 우리의 삶을 부드러운 눈으로 돌아볼 때가 된듯하다. 때로 작은 기쁨에도 많이 행복해하자. 그래야 내 삶이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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