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포기에 500원… 전년대비 1/3로 폭락

▲ 16일 오송읍 서평리 78세의 강옥순 할머니가 밭을 찾아온 주부에게 배추를 팔고 있다.
▲ 오송읍 쌍청리 임기순 씨 부부의 배추밭. 임 씨 부부는 이곳에서 포기당 500원에 배추를 팔고있다.

청원군 오송읍 서평리 78세의 강옥순 할머니. 강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게 1300여 ㎡(구 400평) 남짓한 밭에 배추를 심었다. 대규모로 농사를 짓는 이곳에선 작은 밭에 불과했다. 하지만 폭락한 배추 값 여파는 강 할머니도 예외는 아니었다.

햇볕이 좋았던 16일 강 할머니는 부지런히 배추를 뽑았다. 때 마침 배추를 구입하러 청주에서 3명의 주부가 밭으로 찾았기 때문이다.

“포기당 300원도 주고 500원도 주고... 달라는 대로 주는 겨”라며 강 할머니는 손에 들은 칼을 이용해 바쁘게 뽑은 배추를 손질하며 말했다. “어떡 혀! 할아버지랑 거름도 한차 해서 뿌리고 작년보다 경비가 더 들어갔는데. 그냥 내 버릴 순 없잖아”

청주에서 배추를 구입하러 왔다는 주부도 말을  보탰다. “배추 값 떨어졌다고 쓰지 말아요. 뉴스에 나오니까 배추 값이 더 떨어진다니까요. 도시 사람들이 배추 값 싸다고 하니까 더 싸게 살려고 그래요”. 이들은 한사코 신원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강 할머니의 밭에서 600m 정도 떨어진 또 다른 배추 밭. 어림짐작으로 7000 여 ㎡(구 2000평) 돼 보이는 이 밭의  배추는  꽉 차 있다. 수확기에 이른 배추 밭이라는 것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어디에도  사람 손길이 미친 최근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이 밭 옆에서 말린 콩가리를 운반하던 주민 강 모 (68) 씨를 만났다. 강 씨는 이 밭의 주인이 배추를 팔지 못해 그냥 두고 있다고 전했다.

“배추 값이 포기에 500원도 안 나와. 큰 일이여. 대파도 700원이 뭐여. 당연히 작업 할 엄두도 못 내지. 그러니 밭 주인이 그냥 두고 보는 겨”라며 농산물 값이 떨어져 큰 걱정이고 말 했다.

배추 값이 어느 정도 보장돼야 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내 땅에다 농사를 지어서 낫지만 여기는 도지를 얻어서 했어. 도지 값만 평당 1200원이야. 여기가 2000평이니까 240만원이야. 거기에다 심을 때 인건비, 농약 값 해봐! 계산해봤자 헛거여”라며 자리를 떳다.     

인근 궁평리 마을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배추 수확 작업이 끝난 곳은 절반도 돼 보이지 않았다. 같은 밭에서도 일부분만 수확이 이뤄졌다. 궁평리 마을 주민 김 모(78) 씨는 비닐하우스 농가를 가리키며 “저 집은 그냥 로터리 해버렸어”라고 말했다.

벌써 수확을 포기한 농가가 발생한 것이다.

오송읍 서평리와 궁평리에 이어 옥산면 쪽으로 향했다. KTX 오송역을 지나 쌍청교를 건너는 순간 작은 현수막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배추판매 500원”이라고 씌어져 있었다. 현수막이 가리키는 곳으로 500여m를 이동했다.

이 밭의 주인은 오송읍 쌍청리 임기순 씨 부부. 예전 같으면 수집상이나 대형 매장에 납품했지만 올해는 이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그래서 임씨 부부가 생각해 낸 것이 밭에서 직접 판매하는 것.

임 씨 부부는 마을 입구에 현수막 까지 부착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1만4000여㎡(구 4000평)에 달하는 임 씨 부부의 밭에는 김장배추를 구매하러 온 20여명의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한창 배추 작업에 열중인 임 씨는 “몰라유. 아저씨가 갈아 엎자고 했는데 아까워서 어떻해요. 종자값이라도 건져야지. 이걸 어떻게 내다버려”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원래는 손님들이 따 가는 조건으로 500원인데 어떻혀. 직접 따 줘야지. 작년엔 밭에서만 하루 200만원 어치는 팔았는데 지금은 40만원도 안돼요. 마지못해 하는겨”라 한숨을 내셨다.


이 와중에  "전기세 끊겠다", 냉정한 한전

가을 김장배추 값이 폭락하면서 농민의 시름은 깊어가지만 이 와중에도 농민을 두 번 울리는 얌체 같은 일도 발생했다.

옥산면 환희리에서 50마지기(33만여 ㎡, 1만평)의 벼농사와 배추 농사를 짓는 최 모(57)씨. 기자를 만난 최 씨는 벼 건조기 2대가 들어가 있는 장소를 보여주며 한국전력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최 씨에 따르면 지난 10월 중순경 수확한 벼를 한창 건조하고 있을 무렵 한전이 3개월 전기세 9만여원이 미납됐다며 농업용 전기를 끊으려 했다는 것이다.

최 씨는 “벼를 말려야 수매에 응할 수 있다. 수매가 되면 전기료를 내겠다”며 “지금 전기를 끊으면 벼가 썩는다”고 사정을 호소했지만 한전 직원이 실제로 전기 공급 중단 작업을 하러 나왔다고 주장했다.

최 씨는 이웃에게 급하게 돈을 빌려 밀린 전기료를 납부했지만 한전의 이런 행위는 아직도 상처로 남아있다.

7000여 ㎡(약 2000평)의 밭에 배추를 심었다는 최 씨는 “포기당 500원을 받고 배추 속에 들어갈 야채를 덤으로 준다. 그러면 손님들이 미안해하며 돈을 더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장용 배추와 무 값이 폭락해 울상인 가운데 농민의 밭에서 김장용 무를 훔친 황당한 절도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 15일  청주흥덕경찰서는 다른 사람의 밭에 몰래 들어가 김장용 무를 훔친 혐의 특수절도로 송모(54세)씨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송 씨 등은 지난 11일 오후 3시 30분경 청원군 옥산면 A(59세)씨의 밭에서 김장용 무 250개를 뽑아 화물차에 싣고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순간 욕심이 생겨 동치미와 김장을 담그려 훔쳤다"고 진술했다.

오송·옥산 배추 좀 사가세요
밭에선 500원, 대형매장보다 3배나 저렴

정부는 현재 농산물수급조절위원회를 통해 배추, 양파 등 주요 품목의 5개년 평균 가격 분포를 분석해 '가격 안정대'를 설정하고, 농산물 가격이 이 범위를 벗어나면 주의-경계-심각 단계의 경보를 발령한다. 단계별로 산지동향 점검, 비축물량 공급, 관세인하 등 수급안정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정부가 정책개입을 생각하는 배추 값 하한선은 어느 정도 일까?  이천일 농림축산식품부 유통정책관은 8일 '농·소·상·정 유통협약 체결' 브리핑을 통해 대략적인 정부가 가을배추 산지가격이 320~350원 정도가 되면  경계경보를 발령하겠다고 밝혔다.

이 정책관은 브리핑에서 "억지로 계산을 해보니 경계기준 가격은 도매가격으로 895원이다. 여기에 유통비용 560원을 빼면 산지가격은 320~350원 정도가 된다. 이 수준에 오면 무조건 경계발령을 내릴 생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농민이 생각하는 가격과는 차이가 많다. 옥산면에서 배추 농사를 지은 최 모씨는 “배추 한 포기당 산지가격이 700원은 나와야 생산비가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값이 오를 때 대체 농산물을 수입해 내리는 역할 만 하지 떨어졌을 때는 아무것도 않한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오송읍 서평리의 강옥순 할머니는 “수집상들도 나타나지 않는다. 팔 데가 없다. 정부 정책을 언제 기다리나? 청주 시민이 가까운 이 쪽으로 직접 왔으면 좋겠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강 할머니의 말처럼 판로를 잃은 다수의 농민들이 궁여책으로 밭에서 한 포기당 500원에 배추를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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