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반대 현장 ‘욕망을 넘어서는 성찰의 기회’ 얻어

정호선·주부
이제 밀양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송전탑이 뭐가 문제길래 이 야단이 났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니었다면 송전탑이 왜 문제가 되는지, 그리고 이 나라 에너지시스템이 얼마나 불평등을 기초로 하고 있는지 누구도 진지하게 관심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8년째 싸우고 있는 밀양 어르신들이 이곳 충북에도 희망버스의 시동을 걸게 했습니다. 11월2~3일 청주지역 노동사회단체들에 소속된 23명 가량의 사람들이 1박2일로 밀양으로 떠나는 희망버스에 올랐습니다.

“우리가 국가에 요구하는게 뭐 있나. 돈을 달라고 했나, 뭘 해달라고 했나, 그냥 지금처럼 여기에 살게만 해달라는 것이야. 그런데 왜 경찰들까지 동원해서 우리를 못살게 구는 거냐구” “송전탑이 들어온다고 은행에서 대출도 안해줘. 집도 안팔리고, 땅값도 똥값이 되었단 말이지. 송전탑 들어오면 갈 데도 없이 그냥 그 엄청난 전자파에 시달려 죽을 날만 기다리는 거야”

이게 밀양 어르신들의 탄식입니다. 전국에 송전탑 개수는 4만7천여개. 이중 765kv 초고압 송전탑은 약 900여개. 그리고 밀양과 청도 인근에 세워지는 송전탑 개수는 180여개. 대부분 765kv 초고압 송전탑입니다. 이 정도의 초고압이면 주변의 모든 생물체는 절대 살아날 수 없는 전류가 흐릅니다. 그 전류가 밀양의 주민들을 위해서 세워지는 게 아니라 수도권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세워진다는 이 어처구니없는 사실 앞에 어찌 저항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변이 깊숙한 산천으로 둘러쌓인 아름다운 곳 밀양. 희망버스로 그곳에 가보니 일요일인지라 감과 밤농사를 수확하고 거리에서 내다파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산꼭대기 공사현장은 너무 가파르고 길도 꾸불꾸불해서 젊은이들도 30분은 족히 올라야 하는 거리였습니다. 이 길을 80이 넘으신 할머니들이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위태로운 걸음을 매일같이 하고 계시는 곳이었습니다.

우리가 간 곳은 동화전 마을, 96번 현장. 이미 옆의 더 높은 봉우리에는 송전탑 95번을 위한 공사가 진행중에 있고, 매일같이 자재와 식량 등을 실어나르는 헬기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상황이었습니다. 96번 현장에 흙벽돌을 직접 지어 만든 작은 흙집움막이 있습니다. 그리고.. 흙집 옆에 무덤. 할머니들과 동네 주민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파놓은 그 무덤을 조선일보는 통진당이 파놓았다고 1면기사로 뻔뻔한 거짓말을 해댄 그 현장이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신문이 아니야. 새누리당의 찌라시야“ 누군가 이런 말을 던졌고, 그 말에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론이 대놓고 거짓말을 하고 여론을 조작하는데 이걸 어찌 용납해야 합니까? 보수집단, 그리고 핵마피아들을 신봉하고 보호하며 힘없고 약한 자들에 언론폭력을 일삼는 무리들인건 천하가 아는 일이지요.

해군기지에는 2년동안 하루 평균 273명이 상주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공권력 남용입니다.

96번 현장에 희망버스 일행은 커다란 돌탑을 쌓고 왔습니다. 공사 헬기가 앉지 않도록 4시간 동안 꼬박 돌탑을 쌓았습니다. 돌탑을 쌓으면서, 그동안 우리가 쓰는 전기의 실체가 어떤 건지, 왜 송전탑이 문제인지를 되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

에너지불평등을 넘어 에너지민주주의가 왜 중요한지, 그것이 탈핵이라는 간절한 염원과 왜 만나야 하는지 되새기게 하였습니다. 대도시의 전력공급을 위해 왜 힘없고 선량하기만 한 사람들, 그 지역이 왜 희생되어야 하는지 억울함을 통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농성 움막 벽안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욕망을 넘어서는 성찰의 기회, 전기없는 삶에 대한 상상” 그렇습니다. 원전으로 지탱하고 전기에 의지하는 삶에 대한, 사회구조에 대한 성찰을 할 기회를 밀양은 이렇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이제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밀양 희망버스는 또다시 달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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