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임대 놓고 특정집단 지원 협조공문 발송했다 취소
공무원개입 확인…이장단 의견 갈리고 주민갈등으로 확산

▲ 2005년 영동군 매곡면으로 귀농한 신인철씨 부부. 영동군의 편파행정으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됐다며 한숨 짓고 있다.

골짜기는 깊고 바위는 넓어 즈믄(千, 일천 천) 사람의 생명을 지켜준 덕(德) 있는 마을.

영동군 매곡면 공수리 등 6개 마을을 호칭하는 ‘천덕’ 마을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 경상도와 충청도 주민 1000 여명이 피난을 와 목숨을 지켰다 해서 ‘천덕’마을이라 불린다.

감잎 단풍은 늦가을 정취를 더해주고 가끔 들리는 개 울음 소리가 마을의 고요함을 깨우는 아름다운 산간마을이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한 폐교 시설의 임대 문제를 놓고 영동군이 납득하기 어려운 행정이 빌미가 돼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현재 천덕초등학교를 임대 운영하고 있는 곳은 서울소재 모 사이버 대학. 이 대학은 10년째 이곳을 임대 받아 ‘마음 수련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11월 14일이면 임대계약이 만료되는 가운데 올해 신설된 ‘천덕’영농법인이 영동군을 등에 업고 수의계약을 추진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이곳 천덕초등학교에  귀농한 지 7년째 된 신인철 씨. 그는 현재 마음수련원의 운영과 관리를 맡으며 아예 이곳으로 두 자녀를 데리고 이주 했다.

10월 31일 기자를 만난 신 씨는 “영동군청이 편파적인 행정을 추진해 마음수련원과 본인 가족이 졸지에 오갈 데가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신 씨의 말에 따르면 영동군이 천덕영농법인의 주장에 동조해  영동교육청에게 협조공문을 보내는 식으로 선정과정에 개입했다.

취재 결과 이 같은 신 씨의 주장은 일부 사실로 밝혀졌다. 실제로 10월 중순 경 영동군은 교육청에 보낸 공문을 통해 천덕영농법인이 임대해 쓸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이 과정에 매곡면 관계자가 깊숙이 개입한 사실도 확인됐다. 천덕영농조합법인 관계자가 10월 11일 군수를 면담할 당시에도 이 공무원은 자리에 배석해 설명을 도왔다. 또 천덕마을의 6개 이장단이 ‘사업에 동의한다’는 내용의 서명을 받을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한 정황도 확인 됐다. 

신 씨는 이 같은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10월 14일 재임대신청서를 가지고 교육청을 방문했을 때 그 사실을 알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영동교육지원청 관계자가 “군수가 협조공문을 보낸 것이라 가벼이 할 수 없다. 수의계약을 심각하게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또 “주민들 사이에 다툼이 있으면 안 되니까 시설 사용을 양보하라고 하라”고 했고 이어 “다른 시설을 빌려줄 테니 거기로 가는 것을 생각해 보라”며 포기를 종용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말을 듣는 순간 “하늘이 노래졌다”고 회상했다. 신씨는 “지금까지 적지 않은 돈을 들여서 시설을 보수했고, 마음수련원을 사용하기 위해  가족이 이주하여 10년 가까이 살고 있었는데 두 아이와 우리 가족은 당장 이사할 대책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신 씨의 두 자녀는 이곳에서 생활하며 영동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일부 마을 이장 “기망 당했다”

신 씨는 영동군이 협조 공문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지난 21일부터 1인 시위를 진행하며 군수 면담을 요청했다.

22일 이뤄진 면담 과정에서 정구복 군수는 신 씨에게 “어느 한쪽의 말만 듣고 사실을 오인했다”며 협조공문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매곡면장은 담당자로부터 기안을 받았을 때는 “경쟁자가 없는 것으로 보고 받았다. 현재 있는 사람이 나간다고 하고 마을 6개 이장이 다 동의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잘못을 시인했다.

이어 “뒤늦게 잘못된 사실을 알고 즉시 시정조치를 했다. 공문을 철회했기 때문에 나머지는 교육청이 잘 알아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동군과 매곡면의 설명에 나오는 동의서와 관련해 일부 이장들은 “천덕법인으로부터 기망을 당해 동의서를 쓰게 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6개 마을 중 한 마을의 A 이장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매곡면에서 추진하는 토사자 사업 등 마을 이익을 위한 사업인 줄 알고 도장을 찍어줬다”며 하지만 “알고 보니 막걸리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이 공장을 확충하기 위해 편법으로 진행한 것을 알게 돼 동의서 철회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A 이장은 30일 이장단과 법인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마을 공동 사업과 법인 참여를 요구했다”며 하지만  법인이 이를 거절했다며 “애초부터 천덕영농법인은 우리를 이용하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천덕영농법인의 실제 운영자로 알려진 B 씨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B 씨는 “농가 수익을 올리기 위해 폐교를 임대해 주말 농산물 판매장을 운영하려 했을 뿐 막걸리 공장으로 운영할 계획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방문객을 끌어 모으려 자신이 운영하는 막걸리를 시음용으로 제공할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일부 이장단들의 동의서 철회와 관련해서는 “처음부터 천덕 영농조합법인 독자 사업으로 진행할 계획이었지 6개 마을과 같이 할 생각은 없었다”며 “사업계획을 안 6개 마을 이장들이 같이 해달라고 해서 해준 것 뿐”이라며 마을 주민을 이용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일부 주민들은 천덕영농조합법인이 농민들과는 일정 거리가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법인 참여자가 막걸리 제조업체 대표와 벌목사업자, 그리고 친·인척 등 5명으로만 구성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영농조합법인을 만들면 정부로부터 이런 저런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며 “지원을 받기 위해 형식상 법인을 만들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법인 측 B씨는 “농사가 본업은 아니지만 농사를 조금 짓고 있다. 농사를 지으면 농민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지원을 받기 위해 위장으로 법인을 만들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한 푼 지원을 받은 것이 없다. 터무니 없는 소리다”며 일축했다.

이렇게 마을 주민들도 입장이 갈려 갈등이 커지지 않을 까 우려하고 있다. 앞뒤 정황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편의적으로 진행된 영동군의 어설픈 행정이 조용한 마을의 갈등을 불러오고 말았다.

한편, 본보 799호에 이 사실이 보도 된 후 영동교육지원청은 천덕영농조합법인의 사용승인 신청서를 반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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