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준 주식회사 범한 공장장

▲ 안종준 주식회사 범한 공장장
살아 생전에는 엄마라고 부르던 호칭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어머니가 되었다.

약 15년 전, 아버지와 어머니가 38년 호랑이띠 동갑이시기에 아버지 생신일에 환갑잔치를 같이 해드리기 위해 좋은날 받아 대림동에서 제일 좋다는 뷔페에 예약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평소에 고혈압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늘 편찮으셔서 얼굴은 푸석하고, 몸은 날로 부어 오르시더니 갑자기 찾아온 통증으로 서울집 근처의 강남 성심병원에 입원을 해서 검사를 해보니 췌장암 이라는 판단이 나왔다. 서울 대학병원으로 옮겨 다시 정밀검진을 받아보니 결과는 역시 췌장암 말기. 병원측 담당교수님은 어차피 수술하셔야 그리 오래 사실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수술로 인해 고통을 드리는 것보다는 통증완화와 드시고 싶은 음식 드시게 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 다였다.

그렇게 약 4개월의 입원 중에 아버지를 포함한 온 가족이 번갈아가며 옆을 지키며 간호를 하며 병문안 오시는 친지들을 대접하는 생활이 계속됐다. 입원 치료 중에도 병환은 차도가 없고, 날로 통증호소가 잦아졌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는 1시간, 30분 간격으로 반복되는 통증 호소를 지켜보며 나는 자식으로서 생각할 수 없는 기도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힘드시면 세상 끈을 놓으시고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불치병인 걸 아시면 더 낙담을 하실 것 같아 어머니께는 병명을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이제 생각하면 후회가 된다. 유언 한마디 제대로 남길 여유를 드리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짠하다.

엄마 생전 마지막 날. 30분 간격으로 찾아드는 통증에 수시로 간호사들을 불러 통증완화 주사를 맞게 하고, 밤샘 병간호로 엄마 침대 옆에 엎드려 잠깐 잠을 자고 났더니 어느 날보다 평온한 얼굴로 내 얼굴을 보시면서 “애비야! 몸이 꿉꿉하다. 물수건으로 닦아줄래.” 하시길래 세수대야에 물을 떠다가 물수건을 만들어 온몸을 얼굴에서 발끝까지 깨끗이 닦아드렸다. 비록 입원치료로 얼굴을 푸석해져있었지만 화사한 얼굴과 인자한 모습으로 말씀하셨다. 이젠 살 것 같다고. 그리고 불과 몇 시간 후 엄마는 세상과 작별하셨다. 1998년 6월 17일(음) 밤 11시의 일이다.

어머니를 음성에 모시고 자주 찾아뵌다고 하면서도 일년에 한두번 산소에 찾아가 마음속으로 ‘엄마~’ 불러보고 오는 것으로 효도를 다했네 하면서 15년 세월을 보냈다. 마지막 가시는 날 몸을 닦아 드린 걸 떠올리는 것으로 나를 위로하며 하루하루 엄마를 잊어가고 있다. 일년에 한번 기일에 동생들과 같이 옛 생각에 취해 술 한잔 하는것이 다였다.
하늘을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렇게 불효자는 또 하루를 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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