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식 충북학연구소장

최근 대통령 기록물 폐기 관련 뉴스를 접하면서, 누구 누구의 잘 잘못을 떠나 우울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정부 때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둘러싼 분명한 진실의 하나는 기록물에 대한 중요성, 기록물 접근방식에 문제가 많았음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 임기 5년 동안 생산된 문서는 노무현 정부에 비해 12.5%에 불과하고 청와대와 정부 부처 사이에 오간 문서가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기록물 폐기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기록 강국이었다. 단적인 예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 기록문화유산이 훈민정음 해례본, 조선왕조실록, 직지심체요절 등 모두 11건이나 된다. 최근 5·18민주화운동과 새마을기록물도 등재되어 세계 5위, 아시아 최다 기록문화유산 보유국이 되었다.

적어도 1910년 조선왕조가 일제에 의해 강제 합병되기 이전 국가 차원의 기록물 생산과 보존은 철저하였다. 지금도 서울대학교에 있는 규장각에 가면, 조선 말기에 생산된 공문서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양이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문화와 정신은 공공영역 외에 민간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시대 민간 지식인들은 방대한 양의 문집을 남겼을 뿐 아니라, 몇 년 내지 몇 십년에 걸친 일기를 작성하여 후대에 전하였고 여러 문서를 잘 보존하여 몇 백년씩 후손에게 전하기도 하였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의 멸망과 함께 몇 백년 동안 지켜온 기록문화의 전통도 왜곡되고 해체되어 부끄러운 수준이 되었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지난 1백년 20세기 험난했던 한국 현대사가 낳은 부작용이기도 하지만, 기록문화의 파괴는 곧 역사 기억의 파괴인 동시에 불의와 왜곡된 진실을 은폐하려는 ‘가진 자’들의 음모이기도 하다.

위로부터의 기록문화 파괴는 민간 일상의 기록문화도 부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금도 많은 기록물을 보존한 개인들을 찾아볼 수 있지만, 그들은 대부분 70대 이상 노령층이고 젊은 층의 경우 자신들이 생산한 기록물을 소장하고 있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일상의 기록문화 전통도 그 맥이 끊긴 것으로 볼 수 있다.

기록물은 사라진 시간의 기억이자 공간의 텍스트이기도 하다. 기록물은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는 해석의 창고이자 진실의 수원지 역할을 한다. 기록물은 늘 정의의 편에 서 있으며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 이 때문에 불의와 부정의한 자는 진실을 덮으려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기록을 잘 남기고 보존하는 것은 곧 정의로운 사회, 건강한 국가를 만드는 초석이 된다.

이제 국가 또는 지역 차원에서 잊혀진, 아니 왜곡된 기록문화의 전통을 되살려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기록물 보존 차원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기억 저장소를 만들어가는 것이자 끊임없는 역사 해석의 수원지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기록문화의 전통을 되살려나갈 구심점이 필요하다. 개인부터 기관·단체가 그 주체가 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은 지역단위 공공 기록원이 설립되고 그 기록원을 중심으로 기록물 보존과 관리 외에 기록문화를 복원하고 일상화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충청북도 차원의 기록원 설립은 조속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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