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불신, 진보정당 위기 속 “지방선거 준비하자”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누가 뛰어들 것인가’ 숙제

시민·노동의 연대, 5인에게 묻는다

지방자치에서라도 지역 사정에 정통하고 서민의 정서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들이 진출할 수 있는 영역을 확보해야한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기초선거(시·군의회, 기초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 폐지가 아직 갈무리되지 않았고, 이에 대한 찬반양론도 수그러들지 않은 상황이지만 공천여부에 상관없이 이제는 지역의 시민사회와 노동계도 지방자치 진출을 시도할 때라는 것이다.

총선 등 중앙정치에서는 이미 거대 정당들이 인재영입이나 수혈 등의 명분으로 시민운동가나 노동계 인사들을 당으로 끌어들인 지 오래다. 일부인사들은 ‘트로이의 목마’를 자처하며 보수여당에 들어갔으나 이들 중 일부는 당의 중진자리에 오르면서 당내에서도 개혁의 대상으로 치부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 영입된 인사들도 참신한 의정활동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시시포스처럼 산정을 향해 돌을 영원히 굴릴 것만 같던 진보정당도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이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역사적인 10석을 확보하면서 도약의 디딤돌을 밟는듯했다. 그러나 분당과 통합진보당 창당, 통합진보당의 분열과 이념공세 등으로 진보정당은 다시 위기에 빠졌다.

지역의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지방자치 진출을 준비하자는 주장은 이러한 위기 속에서 출발하고 있다. 위기가 곧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양당구도는 갈수록 공고화되고 있지만 정치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정당은 지역구도와 대안세력 부재 속에서 버티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중앙정치의 변화와 개혁이 지역에 미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지역을 먼저 바꾸는 ‘선례(先例이자 善例)’를 만들어보자는 얘기다.

그동안 자천타천 출마설이 있었거나 시민사회와 노동계를 대표할 수 있는 5인(김성민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장, 김재수 우진교통 대표, 남기헌 충청대학 교수, 송재봉 충북NGO센터장, 이두영 충북경실련 사무처장)을 각각 대면하거나 전화로 만나봤다.

어찌 됐든 시도할 때가 왔다

내년 6·4지방선거가 불과 8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이미 때가 늦었다는 회의론도 있다. 이에 반해 지금이라도 논의를 시작해야한다는 주장도 팽팽하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이같은 생각이 개인이나 일부 단체에서 논의됐지만 공론화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성사여부를 떠나 논의를 수면 위로 부상시켜야한다는 데는 모두 뜻을 같이했다.

남기헌 교수는 “풀뿌리 자치는 민주주의의 근본이고 시민과 밀착된 시민조직이 참여하는 것은 가장 이상적이며 필요하다”며 적극적인 견해를 밝혔다. 김성민 본부장도 “노동운동, 시민사회운동이 지방선거에 힘을 모아 공동 대응할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 찬성한다”고 동조의 뜻을 나타냈다. 김재수 대표도 “진보정당이 중앙에서조차 뿌리를 내리는 상황이 아니고 지역에서도 잠잠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밑에서부터 힘을 모으려는 흐름이 필요하다”며 동조했다.

이두영 사무처장은 “경실련은 정파와 이념을 초월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다. 어찌 됐든 두 가지 문제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첫째는 국회의원에, 단체장까지 중앙관료 출신이 독점하는 구조다. 둘째 충북은 정치판에 40대가 없고 50대도 드물다. 인재를 키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송재봉 센터장은 “공감하는 얘기지만 적극적인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다. 거기에서 발목이 잡힌다. 선거에 직접 나설 사람들이 그룹을 형성해야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며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감을 나타냈다. 이야기를 모아보면 취지에 공감하지만 각개전투로는 기대했던 결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력풀, 구심점 확보가 관건

지난 대선의 공약이었던 기초선거 공천폐지는 빌 공자 공약(空約)이 될 수도 있고, 무(無)공천으로 시늉만할 수도 있다. 어찌 됐든 후보가 난립하는 상황은 표를 분산시켜 현역이나 기성정치인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시민사회나 노동계가 무소속으로 나설 경우 이를 세력화해야하는 절대적인 이유다.

정당공천이 유지될 경우 기존 정당을 등에 업고 출마하는 것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렸다. 시민사회는 민주당이 문호를 연다면 참여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노동계는 진보정당의 영향력이 축소된 것이 문제일 뿐 민주당을 중도 또는 보수정당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성민 민주노총 본부장은 “현재 민주노총은 선거방침은 있지만 정치방침은 없는 상태다. 노동자정치세력화 운동과 진보정당 운동이 위기에 빠져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에 반해 시민사회진영의 송재봉 센터장은 “민주당이 인재영입에 나서겠는가? 또 영입을 한다고 하더라도 단독공천을 주지 않고 경선을 붙일 경우 들러리를 서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남기헌 교수는 보다 적극적이다. 남 교수는 “지역의 정당들도 과거와는 달라진 것 같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개인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나설 용의가 있다”며 기존 정당을 통해서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출사표를 던질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결국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기존정당의 입김에서 벗어나 지방자치에서 세를 형성하는 길은 당선가능성에 근접한 후보를 확보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인터뷰 대상 중 자신의 출마에 적극성을 보인 인물은 남 교수뿐이었다.

김재수 대표는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후보연대에 힘을 보탤 용의는 있다. 그러나 우진교통에 있는 이상 후보군으로 거론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송재봉 센터장도 “참여연대에서 NGO센터로 옮긴 뒤 다른 길을 생각할 수 없다. 당분간은 시민운동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두영 처장은 “내년 4월이 충북경실련 20주년이다. 거기에 몰입해야한다. 또 선거에 나서려면 1년 전에 사직해야한다는 것이 경실련 내부결의다. 지금은 이미 늦었다”고 털어놓았다.

익명을 요구한 노동계 인사는 “기존정당에 대한 불신이 커진 상황이다. 시민사회나 노동계의 명망가들이 일정한 세를 형성한다면 단체장 선거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우진교통이라는 회사를 노동자 자주기업으로 성장시킨 것도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시민사회 후보군과 단일화 절차를 거친다면 정당의 경선 이상 흥행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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