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충북민예총 10주년 기념 한마당 행사벌여

충북민예총이 지난 6월 10일 명암타워에서 1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이날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10년사를 펴내, 지역사 자료로서의 가치를 보여줬다. 총론과, 좌담등 그 간의 활동기록들이 포함된 책이다.

하지만 충북민예총의 10년사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문화운동연합 시절인 87년 12월로 옮겨가야만 한다. 충북민예총 박종관 사무처장은 “84년 지역에서 ‘분단시대’와 ‘우리춤 연구회’의 민중예술활동이 문화운동연합의 모태가 됐고, 94년 법인화를 거쳐 민예총 충북지부로 조직적으로 거듭났다”고 설명했다. 94년 6개 분과와 청주지부만 있었던 것에 비해 현재 11개 분과와 6개 지부로 늘어났고, 회원도 163명이 출발했던 것이 지금은 정회원만 700명에 이른다.

그는 “문화운동연합시절은 공안시국이라서 전국적으로 물리적인 대항이 늘어났고, 따라서 문화운동진영이 활발하게 움직였다. 그 때는 마당극을 하며, 시를 쓰며 잡혀가는 가는 것이 익숙한 일이었다. 충북에서도 89년 지역소재 최초 마당극인 ‘청남대공화국’을, 우리춤 연구회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등을 올렸다. 그러나 92년 대외적으로 동구권이 무너지고, 대선등 점차 사상적 토대가 흔들렸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93년 한국민족예술총연합회를 법인화했다. 이전까지 독자적인 활동을 펼쳤던 문화운동 연합도 94년 충북민예총으로 조직전환을 하고, 강고한 문화운동단체에서 새로운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94년 창립된 충북민예총은 구 문화운동의 세력들의 토대위에 진보적 활동을 고민했던 예술가와 건강한 보수층을 흡수했고, 또한 지역 내 지역조직을 갖추게 됐다는 것. 박처장은 “2000년을 전후로 대중문화 장르가 강세를 보였다. 또한 지역문화의 당위성이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쟁점없는 문화활동과 새롭게 뛰어든 2세대 운동가들의 생활보장의 문제가 여전한 숙제로 남아져 있다”고 말했다.

충북민예총도 이제는 비주류에서 주류로, 또한 기득권으로 편성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주류와 기득권은 우리의 관심분야가 아니다. 세상이 변혁됐다고 하지만, 아직도 불합리와 부조리가 많다. 진보가 득세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까지 민중의 세상은 오지 않았다. 아직까지 민중과 함께 울고 웃고, 풀어야할 숙제가 많기에 우리의 활동을 지속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편 충북민예총의 그간의 성과물로는 보수로 대변되는 지역사회에 진보의 뿌리를 내렸다는 것과, 지역문화정책의 영역 개척, 해방공간의 작고문인을 발굴하고 표면에 올려놓았다는 점을 손꼽았다. 특히 해방공간의 작고문인들 뿐만아니라 동학, 제천의병, 청주성탈환축제 등 충북의 저항운동사를 이슈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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