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 교육문화부 차장

▲ 박소영 교육문화부 차장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1999년 이후 올해로 8회째, 14년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비엔날레를 앞두고 몇 번이나 행사를 계속해서 열어야 하는지 논란이 됐다. 잘 알지도 못하는 비엔날레를 위해 수십억원 예산을 써야 한다는 반감도 있었고, 여전히 행사가 끝난 후 지역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는 자괴감이 컸다.

물론 이 문제는 지금도 유효하다. 국비 지원을 받는 이상 행사를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이들도 많았다.

2000년 전후 청주에서는 국제공예비엔날레, 항공엑스포, 국제인쇄출판박람회가 잇따라 개최됐다. 문화시장을 표방했던 나기정 시장이 만든 이 국제행사들은 논란꺼리가 됐고, 이후 한대수 시장은 축제를 더 이상 벌이지 않고 정리하겠다는 공약을 내걸면서 당선됐다. 한대수 시장 당선이후 결국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만 살아남았다.

그 즈음 이었던 것 같다. 지역축제들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를 놓고 청주문화산업단지에서 토론회가 열렸다. 누군가 비엔날레를 2년마다 유치하는 것이 무리니까 폭을 두고 하자고 했다. 그러자 누군가가 발끈했다. 비엔날레가 2년마다 열린다는 것은 국제적인 약속인데 그것을 안 지킨다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었다.

이태리어로 ‘2년마다’의 뜻을 갖고 있는 비엔날레였지만, 전문가로 초청된 이들조차를 이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해프닝이지만, 그 만큼 지역사회는 비엔날레를 잘 알지 못했다.

우선 행사를 여는 이유가 마뜩치 않았다. 공예와 청주를 연결 짓는 맥락은 처음부터 미약했다.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직지의 고장이기 때문에, 금속공예인 직지를 엮어 공예도시의 정체성을 말하지만 이야기가 빈약하다. 비엔날레 조직위조차 직지와 공예비엔날레를 엮는 것에 대해 주저한다.

왜 청주에 비엔날레가 열리는 지, 그 정체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속 시원한 얘기를 들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직지 세계화 사업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다만 14년간 발전해왔다는 게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의 미덕이다. 특히 옛 연초제조창에서 전시회가 열린 2011년부터 드라마틱한 변화를 맞았다.

옛 연초제조창을 매개로 문화도시로서 거대한 꿈을 꿀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 비엔날레 기간에 디자인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리는 루이지 꼴라니가 옛 연초제조창에 전 생애에 걸쳐 작업한 디자인 작품을 전시하고,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를 양성하는 디자인센터를 건립할 의사를 밝혔다. 지금은 청주시와 구체적인 협상단계다.

옛 연초제초장의 공간은 방대하다. 전시장이 열리는 곳 외에도 빈 공간이 많다. 동부창고도 9개동이나 있다. 과거의 기억을 가진 공간으로 전국에서도 이러한 규모는 청주가 유일하다. 이제 공간을 가졌으니, 그 다음 내용도 채워야 하고, 무엇보다 이야기도 만들어가야 한다. 70억 프로젝트가 40일간의 축제이후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촘촘한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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