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민은행 총재 무하마드 유누스의 저서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양정열
충북사회적기업협의회 대표

“인간이 달에까지 가는 세상에 어째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그라민은행의 총재인 무하마드 유누스의 자서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라는 책을 열면 가장 앞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이 참 싫다.

가난은 개인의 나태함과 게으름의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임으로 그 어떤 정책과 제도도 개인이 변하지 않으면 어쩔 도리가 없다는 말로 가난의 문제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찾으려 하지 않고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려는 위정자들의 얄팍한 술책으로 들려서 말이다.

사실 가난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사회구조적인 데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람보다는 돈과 상품이 우선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돈(자본)을 많이 벌거나 가진 사람이 성공한 사람으로 대우받는 사회, 돈이 더 큰 돈을 벌게 해주는 사회경제구조는 그 사회가 점차 발전해갈수록 소수의 사람들에게 부가 집중되게 하고 마침내 그들만의 견고한 성을 만들어낸다. 자본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죽어라고 일을 해도 어렵사리 한 달 한 달을 근근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 제목: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지은이: 무하마드 유누스 옮긴이: 정재곤 출판사: 세상사람들의책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예전에는 그래도 시골마을에서 태어나도 공부 열심히 하면 사법고시 패스해 마을 어귀에 ‘장하다! 00아들 사법고시 합격’이라는 현수막을 걸고 온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일인 양 좋아라 하며 동네잔치를 벌이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사법고시 합격률을 보면 서울대, 강남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부가 학벌을 만들고 그 학벌이 우리 사회의 지도층에 자리 잡는다.

무하마드 유누스의 자서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에서 저자인 유누스는 가난은 가난한 사람들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라고 말하면서 관 주도의 모든 가난 구제책이나 정책들이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조건 없이 공짜로 주어지는 모든 자선이나 원조 행위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할 수 없는 까닭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다. 무

하마드 유누스는 오랫동안의 경험과 혜안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희망과 꿈이라는 사실을 무엇보다 역설한다. 따라서 소액융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인권과도 같은 소중한 것이며, 이러한 신념을 우리 모두가 깊이 공감하고 공유할 때 이 세상으로부터 가난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여성들에게 무담보 무보증으로 융자

치타공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던 무하마드유누스는 1974년 방글라데시를 덮친 기아 속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제껏 배우고 가르치던 경제학 이론에 회의를 품는다. 강의실에서는 몇 백만 달러가 왔다갔다 하는데 강의실 밖으로 나가면 단지 한 줌의 양식이 없어 사람이 굶어 죽는 모습을 보면서 ‘땅속의 벌레의 눈’으로 세상을 보리라 마음먹고 직접 거리로 나선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난다.

하루 종일 대나무 의자를 만들어 내다 팔아 5타카 50페이샤를 받아도 재료값을 얻기 위해 빌린 고리대금업자에게 5타카를 갚고 나면 50페이샤, 미화로 2센트밖에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성의 처참한 현실을 목격하면서 그들을 도울 방법을 찾아 은행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은행으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담보가 없어 융자를 해줄 수 없다는 매몰찬 답변을 듣는다. 그는 직접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게 되고 이게 바로 그라민은행의 시작이 되었다.

주로 여성들에게 무담보 무보증으로 소액융자를 해주어 재봉틀을 구입하고, 장사를 할 수 있는 리어커를 살 수 있도록 하였다. 사람들은 서서히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그라민은행은 전국적으로 1175개의 지점과 240만의 회원을 가진 조직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그라민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은 사람들의 42%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어 2006년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와 그라민 은행은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우리 지역에도 그라민은행과 같은 실험을 하고 있는 곳이 있다. 저소득취약계층의 자활근로 참여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미래씨앗 협동조합이 그것이다. 이제 창립 4년을 갓 넘긴 미래씨앗은 현재 출자금 8천만원, 누적 대출금 2억3천 여 만원에 달하고 있다. 원금 상환율은 99%에 이른다. 지역의 그라민은행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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