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트리오 청주지점 '명원' 남명원대표
믿음과 철저한 서비스로 월 1억 가까이 매출

성공 스토리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과장법과 픽션적 작법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드라마보다 훨씬 극적인 요소가 있다. 청주시 수동 인력시장 골목길에 자리잡은 (주)트리오 청주판매점인 ‘명원’ 대표 남명원 씨 역시 예외가 아니다. 물론 그녀는 “(내가) 성공했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다른 성공한 사람처럼 밑바닥에서 일어나 맨손으로 ‘유’를 창조한 사람이다. 상투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녀의 성공 요인 역시 성실과 더 이상 추락할 수 없는 절실한 상황, 거기에서 나오는 ‘실패할 여유조차 없다’는 의지가 단골 메뉴처럼 등장한다.
그녀는 독일제 WMF사 제품을 비롯, 수입명품 주방기구를 전문 판매하는 세일즈 우먼이다. 그녀 밑에서 일하는 남녀 직원만 10명이 넘는다. 그리고 그녀 홀로 매달 기록하는 판매고는 1억원에 육박할 정도다. 이쯤 되면 그녀 자체가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절한 절망 딛고 의지와 성실로 성공 일궈

   
▲ 월 평균 1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홀로 올리는 (주)트리오 청주지부장 남명원씨가 판매에 나서기 앞서 제품을 살피고 있다. / 육성준 기자
그러나 그녀의 오늘이 있기까지엔 말못할 개인사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과거의 굴곡을 말씀드리긴 곤란해요. 1989년 어느 날 네살바기 아들을 껴안고 혼자 헤쳐나가야만 하는 상황이 닥쳤습니다. 그 때 삶은 엉망이었고 절망적이었죠. 돈이 없어 한겨울을 냉골로 지내기 일쑤였습니다. 무엇인가 해야 했습니다.” 어느 부잣집 파출부 생활이 시작됐다. 그 참에 사모님 개인 기사 노릇도 했다. 상류층의 삶을 보면서 “이런 세상도 있구나” 놀란 건 물론이다.

차츰 호구지책이 마련되고 심리적 안정을 찾으면서 그녀는 좀더 도전적인 일을 찾았다. ‘사모님’이 쓰던 수입명품 주방기구 판매가 괜찮을 듯 보였다.

“1992년 세일즈 업계에 발을 들여놓았어요. 7년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제가 소속해 일하던 대리점 사장님이 타계하면서 직장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수입명품 국내 독점판매회사인 (주)트리오를 직접 찾아갔습니다. 막무가내 저를 채용해 달라고 졸랐는데 다행히 즉석에서 허락을 받았어요.” 99년 5월부터 그녀는 무려 6개월간 매일 차를 끌고 서울로 출근했다가 청주로 다시 내려와 영업판매에 나서는 강행군을 하루로 거르지 않고 해냈다. 해당회사의 청주지역 판매망이 조직돼 있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회사도 놀란 그녀의 놀라운 의지

“차안에 주방기기들을 가득 싣고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덜컹거리는 차안에서 칼집이 빠진 칼을 보지 못하고 물건을 옮기다 손목에 큰 상처가 났습니다. 부주의로 인한 불상사치곤 엄청난 부상이었죠. 의사 선생님이 ‘최소 두 달간 팔을 쓰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그럴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한 손을 깁스한 채 나머지 한 손으로 차를 몰고 여기저기 다니며 영업에 나서는 지독한 생활이 계속됐다. 남씨의 부상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회사에서 어느 날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연히 매출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남 씨의 실적이 날이 갈수록 눈부시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단 하루라도 쉴 수 없었어요. 하루는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아파트를 찾아가 방문판매에 나섰더랬습니다. 양손을 썼으면 네 번이면 됐을 발걸음을 8번이나 5층까지 왔다갔다하면서 8개나 되는 제품세트를 운반해 놓고 열심히 선전을 했는데 결국 한 제품도 못 팔았죠. 또다시 한 손으로 8번이나 왔다갔다하면서 제품을 싣고 돌아오며 울었습니다. 그러곤 이를 악물었죠. ‘다시는 울지 말자’고요.”

6개월만에 전국 최초 여성 지역책임자로 발탁

그녀의 이런 성실은 그를 (주)트리오 입사 6개월 만인 2000년 10월 청주지부장으로 발령나게 했다. (주)트리오에서 전국 최초의 여성 지역 책임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저는 여태 연고판매는 물론 강매를 한 적이 한번도 없어요. 대신 철저한 서비스 정신으로 고객께 다가갑니다. 15년간 품질보증을 해드리고요. 타지역에서 제품을 구매한 분 중에서 청주로 이사온 고객들께서 밤 12시에 전화해도 달려가 즉석에서 수리해 드립니다. 이젠 눈감고도 제가 취급하는 모든 제품의 수리를 할 수 있을 정도예요. 출장비요? 부품값만 받습니다. 전 제품을 파는 게 아니라 행복을 판다고 생각해요. 비록 고가이지만 질 좋은 제품으로 맛난 음식을 해서 즐기는 고객을 보면 제가 더 행복해 져요.”

지난 5월 청주지역의 판매영업권을 아예 인수, 어엿한 '사장님'이 된남 대표는 “고객의 요청으로 방문수리에 나섰다가 다른 제품이 좀 더럽게 방치돼 있으면 손수 깨끗하게 닦고 조인 뒤 다시 갖다 준다”며 “고객의 친지 등이 그 집을 방문했을 때 내가 판 제품의 이미지가 구겨져 있으면 곤란하기 때문”이라고 웃었다. 그녀는 “이 때문인지 내게 물건을 사신 고객께서 다른 고객을 소개시켜 주는 경우가 많다”고 소개했다. 그녀로선 성실과 신뢰 하나로 자발적인 ‘피라미드’ 판매 조직(?)을 손에 쥐게 된 셈이다.

남 대표는 “지금까지는 기초를 닦은 것뿐 이제부터 본격적인 성공신화를 가꿔가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성공해 있었다. 그녀가 사고무친의 막막한 상태에서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만 했을 때 네살바기 아들이 고교 2년(세광고교)으로 반듯하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들이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때까지 9년 간 내리 실장을 맡았을 정도로 잘 자라 준 게 무엇보다 고맙다”고 어쩔 수 없는 모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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