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전쟁의 두려움을 너무나 잘 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전쟁으로 인한 고통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아직도 오열하고 있는 이산가족이 천만 이상 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전쟁이라는 말만 들어도 그 이유를 불문하고 증오와 두려움을 갖게 된다.
나는 이전에 미국이 리비아, 그레나다, 이라크, 파나마를 공격했을 때도 클린턴 집권 당시 아프카니스탄, 세르비아를 폭격해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을 때도, 그 폭격과 총탄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민족처럼 오랜 세월을 슬픔으로 애통 속에서 증오하며 살게 되겠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누가 미국을 가장 세련된 범죄국가라고 했던가? 그들의 약소국에 대한 테러는 언제나 힘의 논리에 의해 자유와 평화라는 이름으로 근사하게 포장되어 왔던 것은 아닌지 한번쯤 어느 것이 진실인지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가 테러에 의해 무너지는 모습으로 보면서 나는 충격에 앞서 얼마나 미국에 대한 증오가 깊기에, 100층이 넘는다는 그 높은 건물을 무너뜨릴 만큼, 선량한 수만 명의 값진 목숨을 살상할 만큼인가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또 하나의 두려움은 미국이 그 큰 테러를 당하고 어떻게 대응할까 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자국민의 애도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하원의 흑인 여성의원(바바라 리) 한 명의 반대를 제외하고는 상· 하원이 한목소리로 피의 보복을 결의하고 나섰다.
이런 엄청난 사건을 왜 미국이 당했는지, 사건의 배후로 지목하는 라덴과 그 민족이 왜 그렇게 미국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는지, 올바른 대처방법이 무엇인지 좀더 진중하게 고민할 시간도 없이 그저 며칠만에 라덴 이라는 용의자를 찾아내고는 보복을 다짐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 대규모의 테러 조짐을 이미 감지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감히 우리를 건드려” 라는 오만함인지, 아니면 그들이 주장 하는데로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서인지 나는 그들의 깊은 속은 잘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거나 그 후 20여일 동안 나는 미국이 좀더 성숙하고, 신중하게 대응하기를 속절없이 바라고 또 바랬다.
그런데 그건 부질없는 바람이었나 보다. 지난 8일 새벽 이후 미국은 온갖 첨단무기를 동원해 아프칸의 수도 카불의 국방부 건물과 공항, 레이더 시설 등 주요시설을 대대적으로 파괴하는 것으로 무서운 피의복수를 시작했다. 또 다시 자유와 평화를 수호한다는 미명아랩.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한다고 했던가? 테러를 자행한 쪽이나, 보복테러를 하는 쪽이나 결과적으로 테러를 자행하는 것은 똑같은 일 일 테고, 그로 인해 소중한 목숨이 죽어 가는 것은 양쪽 다 마찬가지 일일 것이다.
이제 증오로 가득한 양쪽 국민들의 상처를 누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이라도 미국은 강자의 오만함이 아닌 자성하는 너그러움으로 맞서야만 피해자만 남는 이 전쟁이 끝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의 두려움을 그 어느 나라보다 절감하고 있고,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우리 정부도 그 자긍심으로 미국에 대한 무조건 지지가 아닌 평화를 촉구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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