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정권의 기세가 등등하던 1980년대 초 ‘공주갑부 김갑순’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크게 바람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왜정시대 지독한 구두쇠로 내 노라 하는 거부가 됐으면서도 인색하기 짝이 없던 그의 일거수 일투족, 말 한마디는 시청자들에게 ‘사람이 저럴 수도 있구나’하는 탄성을 드라마는 자아내게 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대목마다 그가 내 뱉는 ‘민나도로보데스!’라는 말은 드라마의 백미(白眉)로 이내 시중의 유행어가 됐습니다.
‘모두 다 도둑놈’이라는 이 일본말은 남의 것을 갉아먹을 줄만 알았던 그가 남에게 번번이 당하고 나서 화풀이로 한 말 이지만 당시의 시대상황에도 꼭 들어맞아 이심전심 술자리의 화두 가됐고 국민들의 자조 어린 쓴웃음을 자아냈던 것입니다.
그때도 온갖 부조리와 부정이 사회에 만연돼 있었던 데다 광주사태의 피가 미처 마르지 않았던 터라서 김갑순의 비아냥에 찬‘민나도로보데스’는 시청자들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정권을 찬탈한 군부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것이 돼 방송은 결국 오래 가지 못하고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당시의 시대상을 그처럼 절묘하게 꼬집은 작가의 기지가 놀랍기만 합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세상은 그제나 이제나 변함이 없는 것일까. 어제오늘 돌아가는 세태를 보고있노라면 20년 전의 그‘민나도로보데스’는 오늘 이 시대에도 여전히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제 범죄자들을 심문하던 최고사정기관의 고위간부들이 오늘은 피의자가 되어 검찰청사 포토라인에서 집중 플래시를 받는 그 일그러진 모습은 지금 우리사회의 비리가 어느 지경에 이르렀나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아무리 세상이 썩었기로 범죄를 척결해야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이럴 수가 있는가, 탄식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그것은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이솝우화와 너무나 똑 같습니다.
학교에서는 황금을 돌로 보라고 가르치건만 어찌하여 이 사회는 모두 황금에 눈이 멀어 있는지. 지난날 뱃속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도 의연하기만 하던 그 선비정신, 오 백년 사직을 지탱해온 조선의 선비정신은 어디로 갔는지, 유교의 엄격한 그 도덕율은 또 어디에 있는지?
전 국민의 3분의2가 신앙을 갖고 있다면서 올바르게 사는 그 정신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그 많은 예배당, 그 많은 사찰에서 날마다 목이 쉬는 목사님, 신부님, 스님들의 말씀은 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국민들은 지쳐 있습니다. 연주창처럼 터져 나오는 가진 자 들의 온갖 스캔들에 국민들은 기가 막혀 말을 잊고있습니다. 단돈 몇 십 만원을 수중에 갖고 있지 못하는 서민들, 그날그날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가난한 서민들은 지금 분노마저 포기한 채 절망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그것은 현실입니다.
전쟁이 드디어 터졌습니다. 테러를 응징한다는 싸움이지만 또 얼마나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될지 걱정스럽습니다.
먼 나라의 일인 것 같지만 우리나라에도 전군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고 보면 강 건너 불처럼 볼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뒤숭숭한 세상, 가을은 깊어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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