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정 충북경실련 사무국장

▲ 최윤정
날씨 탓을 해보련다. 지난 여름은 정말이지 참기 어려웠다. 추운 겨울보다 무더운 여름이 낫노라고, 땀이 잘 안 나는 체질이라 견딜 만하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야말로 ‘멘붕’의 연속이었다.

그런데다 웬 사건들이 이리 터지는지…. 뙤약볕 기자회견장에 서있노라면 땀이 뚝뚝 떨어지고, 뜨거운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있노라면 뉴스에서 보았던 ‘구워진 베이컨’이 떠올랐다. 언제까지 이렇게 길바닥에서 외쳐야 하는지, 과거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현실에 괜히 울컥하고, 이런 증상이 동생 말대로 ‘갱년기’가 아닌지 의심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게다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중계를 보고 있자니, 여야 의원들의 맥빠진 질의에 울화통이 터졌다. 또 다른 계절이 왔음을 알리는 바람은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불어닥쳤다.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에 이은 국정원의 두 번째 ‘뒤집기’ 전략이려니 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당원 100여 명을 대상으로 하는 공개교육”에서 나눴다는 이야기가 심상치 않았다.

통합진보당은 공식 논평을 통해, 극단적인 상황으로 흘러갈 경우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반전 평화운동, 국면전환을 위한 노력, 나아갈 길” 등을 논의한 것이라 항변했으나, 녹취록 공개에 따른 후폭풍은 컸다.

이번 ‘이석기’ 사태에 대해 혹자는 볼테르(나는 당신이 하는 말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내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놓겠다)를 인용하고, 혹자는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나치가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나는 침묵하고 있었다/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 그들이 내게 왔을 때/아무도 항의해줄 이가/남아 있지 않았다)를 말한다. 지금 침묵하면 바로 당신들에게도 그런 일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하고, “우리도 부모 자식이 있는 사람들인데, 설마 그러겠느냐며 믿어달라”고 호소하기도 한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비쳐진 통합진보당의 모습은 여러모로 아쉽다. ‘총기 탈취’나 ‘시설 파괴’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당 대표가 “농담이었다”고 발언한 부분은 책임있는 공당의 입장을 기대했던 시민들을 적잖이 실망시켰다.

이참에 과연 “노동자·농민을 비롯해 모든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중 정당이며, 지역사회에 뿌리내려 진보적 삶을 일상에서 실현하는 생활정당”으로서 ‘대중’의 눈높이에서 ‘생활’의 정서를 제대로 읽어 왔는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주목할 것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벌어지고 있는 또 다른 편, 극단적인 우익 단체들의 움직임이다. 이들이 이석기라 이름붙인 허수아비를 칼로 베고 불태우는 영상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들뿐인가? 이른바 ‘종북’을 이용하거나, 종북세력과 거리두기로 튀어보려는 정치인이 넘쳐나고 있다.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청문회 보면서 누가 가장 좋아할 것 같나?” “북한 조선노동당 간부들과 종북세력들이 보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국정조사 증인 신문 중)

“저는 미안하지만 이석기 피의자를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으로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그 흔한 악수 한 번도 한 적 없습니다.“(새누리당 모 의원)

“이석기 의원을 옹호할 의도로 체포동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여야 의원들은 빨리 커밍아웃해야 한다.”(민주당 모의원)

1950년, 있지도 않은 공산당원 명부를 발표하며 ‘빨갱이’ 사냥에 나선 미국 상원의원 ‘매카시’의 그림자가 다시 2013년 대한민국에 어른거리고 있다. 술자리에서도 말조심 해야 했던 유신의 망령을 넘어,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반미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학생이 교수를 국정원에 고발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바람이 분다. 무엇을 해야 할까. 광풍을 견디기 위해서라도, 조용히 나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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