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지법, 시설장교체 보다 “재단의 피해가 우선”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사실상 휴지조각으로 전락

제천영육아원 사태가 겉돌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결과는 당사자에 의해서 부정되고 법원의 판단으로 효력이 정지됐다. 아이들은 방치돼있고 어른들의 입장에 따라 패가 나뉘어 서로 협박하며 싸우고 있다.

정치인들도 개입했다. 인권위의 조사결과에 대해서 지역 국회의원이 외압을 행사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인권위에 이 문제를 제기한 직원은 시설로부터 징계를 맞았다. 1명이 해고되고 2명이 정직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반면 아동학대의 가해자로 인권위로부터 지목된 직원은 징계를 받지 않았다.

인권위의 조사 발표가 3개월이 지났지만 결국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에 제천영육아원의 현재 처한 상황과 문제점, 인권위의 조사내용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 지난 6월 22일 충북도청 브리핑룸에서 도내 시민사회단체가 제천영육아원의 조속한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아동학대 논란으로 장기간 갈등을 빚고 있는 제천영육아원 사태가 해결점을 찾기는커녕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사태의 본질인 아동의 인권은 도외시된 채 재단의 명예와 진실에 관한 싸움으로 확전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같은 상황은 법원의 판결로 더욱 심화되는 모습이다.  22일 청주지법 행정부는 제천영육아원(화이트아동복지회)이 제천시를 상대로 낸 행정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제천시가 지난달 26일 복지회(제천영육아원)에 내린 시설장 교체 처분은 복지회가 청주지법에 낸 ‘시설장교체처분 무효확인 소송’ 판결 선고 시까지 효력을 정지한다”면서 “복지회가 본안사건에서 승소하면 판결 확정 때까지 효력을 정지한다”고 결정했다.

이어 재판부는 “복지회가 제출한 소명자료에는 시설장 교체 처분 때문에 복지회에 생길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필요가 인정된다”며 “효력정지로 인해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시기라고 볼 자료가 없다”고 판시했다.

법원의 판결이 있던 날 제천지역 시민단체로 구성된 ‘제천영육아원 사태 조속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제천시청 브리핑 룸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대책위는 기자회견을 통해서 "상처받은 아동의 치유와 시설 운영 정상화에 나서야 할 제천영육아원이 종사자와 피해 원생들에게 부당한 징계를 내리고 있다"면서 "모든 적대적 보복행위를 즉각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특히 "제천영육아원은 인권위 조사에 적극 협조한 시설 아동 5명에게 징계성 위탁교육을 요구하고 1명에게는 퇴소를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대책위의 기자회견장에는 제천영육아원 관계자도 참석했다. 기자회견을 지켜본 이 관계자는  “이번 기자회견 내용이 옳은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공대위와의 즉각적인 마찰이 우려되는 만큼 조만간 반박할 내용을 정리해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가인권위는 무엇을 조사했나?

제천영육아원에서 2건의 진정을 접수한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 이하 ‘인권위’) 2012년 5월 사건을 조사하다가 해당 시설에 대해 직권조사를 결정했다.

인권위는 2012년 9월부터 8개월간 제천영육아원 시설과 관리감독 기관인 해당 제천시청 등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시설에 현재 거주하고 있거나 과거에 거주했던 아동 52명, 시설 운영 책임자 및 생활교사 22명, 아동인권 관련 전문가 등 참고인 8명에 대한 면접 등을 실시한 결과, 인권위는 조사를 통해 몇 건의 인권침해만이 아니라 광범위하고 구조적인 인권침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2013년 5월 2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 이하 ‘국가인권위’)는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제천영육아원의 아동학대를 조사하고 인권침해를 시정할 것을 결정한 바 있다.

이때 발표된 조사결과는 매우 담담하게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제천영육아원은  말을 듣지 않는 아동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타임아웃방을 운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 타임아웃방은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3층 외진 방에 설치돼 있었으며 내부에는 고장 난 오븐과 시계, 부서진 선반, 세숫대야 등 반성이나 훈육과 무관한 물건들이 방치돼 있었다. 책상 서랍 안에는 아동들의 욕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아동들은 최근까지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수개월까지 이곳에 머물렀는데, 일부 아동은 밖에서 문을 잠가 화장실에 가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있었다. 고립 상태가 두려워 자살까지 생각한 경우도 있었다. 시설은 타임아웃방 운영과 관련한 지침이나 기록을 작성하지 않았고 지자체는 단 한 차례도 이곳을 점검하지 않았다.”

이 뿐만 아니라 종교에 대한 문제도 지적됐다. 인권위는 “다수의 아동이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교회에 가고 의무적으로 십일조를 냈다. 시설 직원도 아닌 외부 주일학교 교사가 교회에 가는 길에 아동들이 떠들었다는 이유로 노상에서 무릎을 꿇게 하는 등의 체벌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이 문제가 “제천영육아원이 비록 기독교 정신의 구현을 목표로 운영해 왔다고 하더라도 시설 아동들에게 특정 종교를 지속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열악한 생활환경 문제도 지적됐다.

인권위는 “시설에서는 온수 공급이 원활치 않아 아동들이 겨울에도 차가운 물로 씻었다, 식사시간에 맞춰 귀가하지 못할 경우 밥을 굶긴 경우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2013년 3월 이전까지는 아동들의 생활태도를 등급으로 평가하여 용돈을 삭감하여 일부 아동들이 생필품 구입 등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남자 초등생활반의 경우 베개를 2년간 지급하지 않다가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가 진행되는 도중 제공했다”고 밝혔다.


송광호 의원의 전화 한통과 국가인권위원회

인권단체,  “정치인이 개입해 인권위 결정조차 흔들었다” 비판

제천지역 국회의원인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은 7월 4일 지역 장애인의 날 행사에 참여해서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을 굳이 따를 필요가 있냐”며 공식적으로 인권위 조사결과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심지어 송 의원은 “지금까지 열 가지 일을 했는데 아홉 가지는 잘 했고 한 가지 일을 잘못했다고 한 가지 잘못한 것이 아홉 가지 잘 한 것을 덮어 두고 잘못한 거만 부각되고... 그 사항을 소상히 나한테 와서 보고하라고” 발언했다.

인권연대에 따르면 송광호 의원은 이 발언이 있기 하루 전날인  7월 3일 직접 현병철 인권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명숙 인권활동가는 “국회의원이 인권위의 업무가 제대로 되는지 파악하기 위한 행위였다고 변명하더라고 그것은 문서로 처리되어야 하며, 국회의원이 인권위원장에서 직접 전화를 거는 압력행사여서는 안 된다”고 이 문제를 지적했다.

송 의원의 이런 행위에 대한 인권위원회의 대응 문제도 심각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은 송 의원의 전화가 걸려오자 인권위 독립성 침해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담당 조사관에게 송광호 의원실에 가서 해명할 것을 지시했다. 해당 사건 담당 조사관이 이는 문제가 있다며 거부하자 조사과장을 바로 다음날 송광호 의원실에 보내 해명을 했다.

이에 대해 명 씨는 “절차에 맞게 조사한 사건에 대해  의원실에서 궁금하다면 의원실에서 인권위로 사람을 보내야 하는 게 맞다. 인권위 직원이 의원실에 가서 보고했다는 사실 자체가 인권위가 실세 정치인의 눈치를 본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경찰 등 행정부 등 국가권력기관에 의한 인권침해만이 아니라 시설에서의 인권침해에 있어서도 실세(권력자)의 눈치를 본다는 현실과 그에 따라 인권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허수아비로 전락할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