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모 학교 비정규직 교무실무사, 탄원서 간직한 채 자살
노동계,민주당 “차별이 불러온 사회적 타살” 처우개선 요구

▲ 숨진 학교비정규직의 동료였던 한 여성은 경찰이 분향소 설치를 저지하자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육성준 기자
▲ 22일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도교육청 정문에 추모 분향소를 설치하려 하자 경찰이 이를 저지하고 있다. /육성준 기자

“원통합니다. 억울합니다. 분합니다. 비정규직은 죽어도 분향소 하나 차리지 못합니까?”.

22일 충북도교육청 정문 앞은 한마디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탈진한 몇몇의 여성노동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외쳤다. 교육청 정문의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너머로 경찰과 교육청 직원들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경찰과 교육청 직원,  학교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들 사이엔 부서진 천막과 차리지 못한 분향소 물품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지난 8월 17일 청주의 모 초등학교 교정에서 한 중년 여성의 싸늘한 주검이 발견됐다. 등나무에 목을 매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그는 한달 전까지 이 학교에서 근무한 교무실무사였다.

주머니에는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접수했던 탄원서 사본과 충북도교육청에서 그에게 전달한 ‘복직이 불가하다’는 내용이 담긴 답변서가 놓여 있었다.

“억울하고 분하고 배신감에 어찌해야 하는지 날마다 눈물만 나옵니다”로 시작한 그의 탄원서에는 “갑을의 세상. 비정규직의 비참한 세상이란 말을 절감하며 처절합니다”라고 쓰여있었다.

이름도 생소한 ‘교무실무사’. 그는 학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노동자였다.

그가 맡은 업무는  ‘과학보조’ 였다. 학교 과학실의 실험용 약품과 기자재를 관리하며 수업 준비를 돕고,  수업시간에는 보조교사의 역할도 수행했다. 계약은 1년 단위로 이뤄지며  학교장이 채용한다. 

지난 몇 년 동안  학교 비정규직의 신분과 처우 문제가 불거지자  ‘과학보조’라는 명칭대신 ‘과학실무원’으로 호칭이 변경됐다.

올 3월부터는  충북도교육청이 교무ㆍ전산ㆍ과학ㆍ발명교실 실무원 등 4부문 학교비정규직종을 '교무실무사'란 이름으로 통합하는 ‘직종통합’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과학실 근무만 해오던 과학실무원이 과학실 근무 후 교무실 일까지 맡게 됐다. 당연히 처우나 근무여건이 나빠지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렇게 업무가 가중된 상황에서 그가 앓고 있던 지병인 당뇨가 악화됐다. 2주일의 병가와 연차휴가를 사용했지만 증세는 더욱 악화됐다. 그는 결국 6월 30일자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대학생인 두 아들을 둔 ‘한부모가정’의 가장인 그는 노동부 고용안정센터에 실업급여를 신청했다.

그리고  상담을 받던 도중에  “비정규직이라 질병휴직은 할 수 없지만 연간 60일 안에서 ‘무급병가’는 낼 수 있었는데 그것을 다 쓰지 않고 퇴직해 실업수당도 받을 수 없다”는 답변을 받게 된다.

당연히 실업급여를 받을 것으로 생각했던 그는 억울한 마음에 학교 측에  ‘퇴직 철회’를 호소했다. 그의 동료들은  학교 관계자가 “그동안 복무규정 등에 대해 줄곧 홍보해 왔고 본인이 확인 사인도 다 해 놓고 무슨 소리냐?”면서 “퇴직처리가 완료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는 응답을 반복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8월 7일 그는 마지막으로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동일했다. 그리고  8월16일 교장 면담을 요청했지만 약속이 어긋나자 그날 밤 학교 교정에서 목을 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어떤 차별을 받길래?

현재 일선 학교에는 학생지도를 위해 다양한 구성원이 존재한다. 학교의 교육활동이 세분화 되고 영역이 확대 될수록  필요인력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치 못하고 기간제나 임시직으로 고용한다.

김병우 충북교육발전소 대표에 따르면 학교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규모는 약 80여 개 직종에 15만여명이 존재한다. 

충북지역에는 약 60개 직종 6,300여명 정도로 학교 구성원의 1/3에 해당한다. 이중  급식종사원·영양사·조리원이 2,300명 정도로 가장 많고 교무실무사가 800여 명, 사서실무원이 150여 명, 돌봄실무원 350여 명, 특수교육실무원 360여명이다.

그렇다면 이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받는 차별은 무엇일까?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근본적 차이는 ‘고용의 안정성’ 부분이다. 정규직은 정년이 명시돼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받지만 비정규직은 1년마다 계약이 갱신된다. 급여수준도 정규직과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비정규직은 정규직 급여의 60% 수준에 머문다. 상여금이나 복지포인트와 같은 복리후생도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이번 죽음의 계기가 된 ‘병가’ 부분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차별이 존재한다. 질병으로 몸이 아파 치료가 필요할 때  정규직은 60일의 유급병가에 급여의 70%를 받는 질병 휴직도 가능하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14일의 유급병가와 46일의 무급병가만 존재한다.

공공서비스노조전회련학교비정규직 본부는 “결국 학교에 만연해 있는 차별이 고인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 무리한 직종 통폐합 중지할 것, 질병 휴직제 등 건강권을 보장 할 것”을 주문했다.

민주당 배재정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우리의 무관심이 그리고 학교 현장에 존재하는 차별의 벽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는 사회적 살인"이라며 "고인은 정부가 그토록 정규직이라고 우기는 무기 계약직 노동자였다. 정부가 지난달 30일 당정 협의를 통해 내놓은 학교비정규직 종합대책이라는 것이 허울뿐인 말잔치에 불과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다"고 지적했다.

노동계와 정치권이 이번 죽음에 대해 여러 목소리를 내지만 아직까지 도교육청은 이렇다할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공공서비스노조 관계자는 “도교육청에 요구안을 전달했지만 지금까지 어떠한 답변도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치료받을 권리조차 차별받는 교육현장 

충북지역 학교비정규직 : 충북지역의 학교비정규직은 질병 또는 부상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경우 연간 60일(이 중 14일은 유급병가 나머지는 무급병가)의 범위내에서 허가를 받으면 병가를 사용할 수 있을 뿐 별도의 질병휴직제도가 없음

충북교육청 소속 지방공무원 : 연간 60일 유급병가 가능하고 봉급 70%를 받으며 1년(2014년 2월부터는 2년)까지 질병휴직 사용가능

자살한 비정규직의 탄원서 “억울하고 분하다”

억울하고 분하고 배신감에 어찌해야 하는지 날마다 눈물만 나옵니다. 갑을의 세상. 비정규직의 비참한 세상이란 말을 절감하며 처절합니다.

13년 동안 과학실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했지만 나름 보람된 삶을 보냈건만 병으로 인하여 퇴직하는 과저에서의 비참함과 황당함. 패닉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렇게 사정했지만 아무 소용없이 물러나야만 하는 나의 삶이 고통의 날을 보냅니다.

학급수가 54학급까지 있을 땐 복수감제도도 실시했지만 우린 그러지도 못한 상태에서 묵묵히 지친 업무에 말 한마디도 못하고 일 했습니다.

행정실은 교무실로, 교무실은 행정실로 나의 억울한 사정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병도 간담하기가 힘든데 수면제 도움 없이 잠도 이룰 수가 없는 비참한 삶. 삶(의) 의욕마저 상실하게...... 날마다 눈물로 지냅니다.

(신청일 8월 7일. 청와대 국민신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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