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돈 문학테라피스트

권희돈 문학테라피스트
숨길 수 없어요
누구에게나 보여요
아무데서나 보여요
─ 졸시 「꽃과 사랑」

내가 여름에 피는 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디서나 다소곳하게 피는 채송화 때문이다. 담장을 따라 올라가 고혹적인 자태를 드러내는 능소화도 아름답기는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도발적이어서 경계심이 든다. 그에 비하면 채송화는 낮은 곳에서 겸손한 자세로 여름을 맞이한다. 구석진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비라도 내리면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아이처럼 새파란 입술을 바르르 떤다. 장독대 가장자리에선 짱짱히 자리 잡고 앉아 신성한 제단을 만든다. 어디에서나 가장자리를 차지하나 위태롭지 않다.

느티나무 두 그루가 마주보며 늙어가는 내 고향 마을. 1960년대 우리 마을에서도 어느 집이나 아들은 소 팔고 전답 팔아 교육을 시켰다. 딸은 조신하게 있다가 시집이나 잘 가라고 그냥 눌러 앉혔다. 그런데 그 어린 누이들이 봇짐을 싸들고 방직 공장으로 가발 공장으로 염색 공장으로 미싱 공장으로 떠났다.

누이들이 떠나자 고향 마을은 까르르 깨꽃 쏟아지는 웃음을 잃었다. 누이들이 살던 집에서 삐죽이 낯선 얼굴이 내비칠 때 내 빈 가슴엔 휑하고 바람만 휘돌다 나갔다. 오동나무에 붙어선 매미는 어찌나 큰 소리로 비명을 질러대던지. 그 후로 고향 마을은 거북이처럼 엎드려 고개를 내밀 줄 몰랐다.

폐결핵에 걸린 사실이 알려져 공장에서 쫓겨나면 어머니 약값 동생 학비를 댈 수 없다고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하던 미싱공 안순덕 양, 공장에서 식모살이로 목욕탕 때밀이로 부유하던 ‘영자의 전성시대’. 구사대에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가던 난장이의 딸 영희, 퉁퉁 부은 눈을 하고 ‘새벽출정’을 채비하던 어린 순이들의 결기.

이때 ‘동백아가씨’ 이미자가 나타나 어린 누이들을 달랬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멍이 들었소. 그녀의 애조 띤 감정과 맑고 깨끗한 목소리는 천지를 진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 선생님을 사랑하는 일도, 그리움이 가슴마다 사무쳐 와도 여자이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고 했다. 이런 노래를 부르며 어린 누이들은 외로움과 아픔과 애환을 달랬다.

이 어린 누이들이 가부장제 하에서 희생양이 되어왔던 마지막 세대일 듯싶다. 이 누이들이 꾸벅꾸벅 졸아가며 온갖 멸시와 질책을 받아가며 남산만 한 섬유뭉치를 만들어 판 것이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1억불 수출의 금자탑을 세운다. 어린 누이들의 땀과 눈물을 자양분으로 삼아 우리는 지금 부족한 게 없는 풍요를 누리고 있다.

채송화가 낮은 담장 아래 얼굴 부비며 소복하게 피어 있는 모습을 보면, 어느 왕자가 공주에게 주려고 준비한 보석상자를 쏟아놓은 것 같다.

이따금씩 소식이 오곤 했지. 어떤 누이는 코피 터지게 일한 돈을 오빠 학비 보태라고 부쳐오고, 어떤 누이는 꼬깃꼬깃 모아온 돈을 부모님 약값 하라고 부쳐 왔다. 어떤 누이는 공장에서 식모살이로 들어갔다가 애엄마가 되어 돌아오기도 하고, 어떤 누이는 영등포라든가 동두천이라든가 눈물로 떠돌다가 흑인 남자 손에 끌려 바다를 건넜다는 소문도 돌았다. 정말 나성으로 가기는 간 것일까? 지금은 모두 할머니가 되어 있겠지. 모두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선연한 꽃 채송화
어디서 핀들 꽃이 아니랴
내 마음 아직 지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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