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신문이 있다는 건 통(通)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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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신문이 있다는 건 통(通)한다는 것
  • 박미라 시민기자
  • 승인 2013.08.2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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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신문은 마을사람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

▲ 박미라 두꺼비신문 편집장
작년부터 두꺼비마을신문에 손님이나 탐방객들이 부쩍 많이 온다. 문의 전화도 잦다. 마을신문을 만들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배우고 싶다고 한다. 서울의 여러 지역과 수원, 화성, 시흥, 안산, 마산, 괴산, 전주 등 지역도 다양하다. 마을 만들기 영향 때문일까? 이 시점에서 왜 마을신문을 만드는 붐이 이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 조사에 의하면 TV 다음으로 선호하는 매체가 마을신문 같은 지역신문이라고 한다. 평범하게 알고 지내던 내 이웃의 얼굴을 신문에서 보게 되면 놀라움과 동시에 신기하다. ‘어, 내가 아는 사람이 신문에 나왔네? 뭣 땜에 나왔지?’하며 살피게 된다. TV나 신문에는 유명한 사람들만 나온 줄 알았는데 내가 알고 있는 평범한 이웃들이 나오는 것이다.

마을에 마을신문이 있다는 건 신문을 중심으로 ‘통(通)’한다는 것이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사람들의 마음이 신문을 통해 모아지고 마을에, 사람에 관심을 갖게 된다. 어떤 사람은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관심분야에 참여를 한다. 참여는 흩어져 있던 마을의 에너지를 응집시키고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산남두꺼비마을신문은 때가 되면 당연하게 나오는 거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도움이 있다. 탐방 오는 사람들도 막연하게 기대하고 왔다가 현실적인 운영문제를 얘기하면 기겁을 한다. 겉으로 보이는 마을신문과 실질적으로 만드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신문을 낸다는 건 단지 면을 채우는 것이 아니다. 기사거리를 찾기 위해 평소에 무심하게 지나치던 마을을 돌아다니고 사람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 개인의 나로 있을 때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밥을 먹을 때, 사람들을 만날 때도 항상 신문과 연계해 대화하고 그것을 신문에 어떻게 녹여낼까 고민한다.

신문에 대한 감각이 몸에 체화되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 고민은 나를 떠나 모두의 고민이 되고 고민을 공유한 그들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같이 노력한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우리 동네만이 아닌 전체 속에 우리를 생각하는 큰 그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을신문은 마을사람이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어느 누군가 만들어 주겠지’보다 ‘내가, 우리가 만들어 볼까?’ 해야 한다. 마을신문이 없어도 큰 불편함은 없었다. 그런데 생기니 참으로 반갑고 좋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신문 나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어느 누군가 고생해서 만들었다는 생각보다 그냥 때가 되면 나오는 것이려니 하고. 이러한 분위기가 팽배해지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산남두꺼비마을신문이 발행된 지 5년째다. 5년동안 어김없이 때가 되면 나왔기 때문에 신문발행은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 발행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애쓰는지 모를뿐더러 알아도 그러려니 한다. 마을신문은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만드는가는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끌고 가는 사람이나 미는 사람, 따라 가는 사람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어느 누군가의 것이 아닌 우리 것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나서야 한다.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는 힘들더라도 지켜야 한다. 왜냐하면 나중에 후회해도 다시 돌이키기 힘들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마을신문과 실질적으로 만드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두꺼비마을신문이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다는 만족감으론 안된다. 정체성을 가지고 주민의 목소리를 내고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마을신문의 존재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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