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옥균 경제부 차장

치매노인을 성폭행했다는 이야기를 처음 전해 들었을 때 기분은 참담함 자체였다. 범죄에도 경중이 있다. 같은 범죄라도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죄의 질과 형량도 달라진다. 취재 중에 만난 고 모씨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약자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고 씨의 과거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혼을 해서 사내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는 사고로 죽었고, 그의 남편은 폭력을 일삼았다. 그와 헤어지고 홀로서기에 성공한 그는 제법 큰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미국에 건너간 여동생의 말이다. 아마도 10여년쯤 된 이야기인 듯싶다. 어딘가를 떠돌다 3년 전 청주에 내려왔다. 들리는 말로는 제천 한 식당에서 일손을 도왔는데 예전에 남편에게 맞은 후유증으로 인해 치매증상이 시작됐다고 한다. 그를 데리고 청주에 온 사람은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더 이상 식당에서도 지낼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어떤 연유에서인지 청주로 데려왔다.

그에게는 땅이 있다. 이 또한 들은 이야기지만 알고 지낸 사람들에게 속아 땅을 담보로 돈을 해줬고, 그 이자를 내지 못해 경매절차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 그는 1원의 수입도 없다. 일은커녕 혼자 밥을 해먹을 수도 없다. 1분 전에 물어본 일을 대답하지 못한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도 없다. 재산세를 내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얻을 수 없다.

어쩌다 이웃에 살고, 같은 성당을 다닌다는 이유로 성당의 수녀는 77세의 독거노인인 박 모씨에게 그를 맡겼다. 박 노인은 수급자다. 박 노인은 정부로부터 나오는 몇 푼의 돈으로 근근이 생활해나가고 있었다.

처음 고 씨를 돌본다는 박 노인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도 어려운데 아무 조건 없이 남의 병수발까지 하는 것에 대해 진정성에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박 씨는 취재진을 보자마자 하소연을 했다. “나 혼자도 먹고 살기 힘든데, 쟤 때문에 죽을 것 같다”고 원망을 늘어놨다. “어디든 요양시설로 빨리 보냈으면 좋겠다”며 도와달라고 했다. 속으로 ‘맞다. 이게 사람이지’하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박 노인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정신을 놓은 채 고데기를 손에 쥐고 놓지 않는 고 씨를 향해 욕을 퍼붓지만-그렇게 몇 천원 더 나온 전기세가 아까워 박 노인은 잠을 설친다-밥상을 챙겨오는 박 노인이 존경스럽다.

박 노인은 한계에 다다랐다. 고 씨로 인해 발생하는 지출로 몇 푼씩 아껴 모아왔던 통장도 바닥을 드러냈다. 본인 몸도 추스르기 어려운 고령의 나이로 몇 개월째 병수발을 하려니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박 노인의 바람대로 고 씨가 의탁할 수 있는 시설을 살펴봤다. 정부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요양시설도 고 씨가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기초생활수급자라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답답한 일이다. 누가 보더라도 고 씨는 혼자의 힘으로 살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는 그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까지 박 노인에게 박수만 보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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