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상 편집국장

지난 8일 편집국에서 뜻밖의 전화 한통을 받았다. 수화기를 건너온 여성의 목소리는 ‘서울 송파경찰서 권은희 수사과장’이라고 또박또박 밝혔다. 순간, ‘어, 그 사람?’이란 놀라움과 함께 ‘누가, 우리 신문을 서울에서 고소했나?’라는 망측한 생각이 스쳤다. 경찰에 자주 전화를 거는 직업이지만 그쪽에서 먼저 걸려온 전화엔 기자들도 긴장한다.

권 과장의 통화 요지는 2005년, 그러니까 8년전 기사를 정정보도해 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8개월도 아닌 8년전 기사라니 일단은 당혹스러웠다.(현행 언론중재법에 따르면 보도가 있은 날부터 6개월 이내에 중재신청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권은희 과장이 누군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국정원 수사외압 의혹을 폭로했던 주인공 아닌가. 경찰 중간 간부로서 하루아침에 뉴스메이커가 된 소신있는 여성 공무원. 8년 전이면 권 과장이 청주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시점이었다. 무언가 피치못할 상황에 처한 듯해 자세한 경위를 들어봤다.

문제가 된 기사는 2005년 당시 경찰청 경정 특채시험에서 여성 1호로 합격한 권 변호사에 대한 가십기사였다. 개업 1년밖에 안된 변호사가 왜 경찰로 진로를 바꾸게 됐을까, 라는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자는 의도로 작성됐다. 합격발표 수개월 전 권 변호사는 가정폭력 사건의 남편 변론을 맡았고 재판도중 부인이 검찰 진술을 번복했다. 검찰이 부인을 불러 경위를 따지자 “그렇게 얘기해야 남편이 죄를 덜 받게 된다고 해서 권 변호사가 시키는 대로 얘기했다”고 답했다.

검찰은 권 변호사의 위증교사 혐의를 의심했지만 자초지종을 파악한 뒤 유야무야 끝내 버렸다. 고소 당사자인 부인이 남편의 변호사를 선임하고 영장실질심사 전에 합의서를 제출하는 등 모호한 태도로 일관했던 것. 이 사건에 대한 상세한 기사는 충청리뷰에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짧은 가십기사에는 ‘위증교사 혐의로 검찰 내사’를 받고 ‘지방변호사회의 수임사건 조사설’이 나돌면서 피로감에 휩싸인 권 변호사가 진로변경을 택한 것 같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바로 ‘위증교사 혐의로 검찰 내사’ 한 줄이 국정조사장에서 권 과장에게 비수로 꽂혔다. 경찰청 기관보고 자리에서 여당 의원들이 충청리뷰 기사를 들먹이며 “자질이 의심스러운 사람을 경찰간부로 특채한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국정원 국정감사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권 과장에게 보수적인 네티즌들은 이미 ‘전남대학교 운동권 출신’ 등으로 매도한 바 있다. 여기에 이 나라의 국회의원까지 가십기자 ‘한줄’로 중견 공무원의 인격을 난도질한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겪은 당사자, 권 과장은 시종 차분한 목소리로 ‘청주지방검찰청에 정보공개 요청해 내사 사실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으니 그대로 정정보도를 해줄 수 없겠느냐’고 말했다. 두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정정보도를 약속하고 곧바로 인터넷판에 정정보도문과 함께 당시 가정폭력 위증교사 의혹사건 기사 전문도 올렸다.

당연한 정정보도문에 대해 ‘고맙다’는 권 과장의 전화문자가 되돌아왔다. 문자를 읽으며 미안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 복잡미묘한 감정에 빠졌다. 자신의 직을 걸고 진실과 싸우는 '양심적 내부 고발자'  공무원에게 내 기사가 짐이 됐다는 사실, 그런 여성 공무원을 국민의 공복이라는 국회의원이 매도하는 현실이 기가 막혔다.

더구나 정의구현사제단 김인국 신부가 서울 집회 참석을 확인하는 경찰서 정보과 형사의 전화를 받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과연 거꾸로도 가는 것인가? 권 과장이 밀고온 수레바퀴는 이제 어떻게 될 지.......두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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