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회 변호사<법무법인 청주로>

“존경하는 전 회장님 및 회원 여러분!”
지난 1년간 회장직을 맡았던 봉사단체에서 필자는 인사말의 서두를 항상 이렇게 시작했다. 일반회원의 입장에서는 동등한 자격을 가진 회원들을 차별한다고 생각하여 반감을 가질 수도 있는 멘트다.

그러나 회원들은 그동안 희생한 전직회장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경륜을 높이 평가하며, 전직회장들은 회원들을 아끼고 존중하는 신·구의 조화를 강조하던 필자는 일부러 이러한 표현을 고집했다. 전직회장들을 존경하는 풍토가 조성이 되면 전직회장들은 회장을 마치고 평회원이 되어서도 모임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봉사를 하게 되며, 이 때문에 더욱 존경받고, 후배들도 그들을 본받게 되는 선순환구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 장관을 지내면 영원히 장관님으로 호칭되고 또한 본인도 ‘전’이 생략된 전직 직위만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대구의 어느 동네를 가면 3집 건너 한 집이 장관집이란다. 최근에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는 대한민국헌정회육성법은 단 하루라도 국회의원신분을 가지면 65세 이후에 월 120만원의 평생 연금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을 정도이니 가히 전직의 천국인 나라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전직은 존경의 대상이기보다는 비난받거나 천덕꾸러기가 아니면 다행일 정도다. 재직 중에 천문학적인 금액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퇴임 후에도 이 돈을 친·인척과 지인을 통하여 은닉·관리하며 호사를 누리면서도 29만원이 전 재산이라고 국민을 조롱한 전직대통령까지 둔 우리다.

전직을 존경하는 사회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선 현직으로서 전직의 잘못은 비판할 수 있지만 잘 한 점은 높이 평가하고 본받으려는 아량이 필요하다. 전직이 나와 노선과 사상이 다른 저쪽 편의 사람이었다고 해서 잘한 일의 칭찬에 눈감고 잘못한 점만 부풀리고 부각시켜 매도하려는 자세는 위험하다. 오늘 나의 날선 전직 평가가 부메랑이 되어 내일 바로 내 목을 겨누어 온다.

민주당 당적의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에 공화당 당적으로서 자신과 치열하게 경쟁했던 아들 부시 전대통령과 함께 아버지 부시 전대통령을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에게 “저는 당신의 열정과 공헌에 감명받은 수백만 국민 가운데 한 명”이라면서 “우리나라는 당신 덕분에 더 친절하고 더 너그러운 나라가 됐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에 화답하여 아들 부시 전대통령도 최근 테러대응정책, 이민개혁정책 등과 관련해 인터뷰에서 오바마 행정부를 두둔하며 “나는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에 위협이 되는 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미국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적절한 조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을 수사하면서 죽음으로 내몰고, 전직 대통령을 향하여 ‘귀태’라는 막말저주를 퍼붓는 우리로서는 미국 전·현직간의 너그러움과 상호존중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사람들은 전직을 거친 경력과 업적만으로 존경하지 않는다. 전직의 경력만으로 대접받으려는 자세에서 우리사회의 병폐인 전관예우의 잘못된 관행이 싹튼다. 재직시 또는 퇴임 후 삶의 방식과 태도에 따라서 존경받는 전직이 될 수도 있고 비난받는 전직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주역에 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말이 있다. 잠룡(潛龍), 현룡(見龍), 비룡(飛龍)의 시기를 거쳐서 최고 위치인 항룡(亢龍)에까지 오른 용은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어 내려올 일만이 남아 허망하고 후회할 일만이 많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권력이나 직위는 찰나임을 깨닫고 욕심부리지 말고 겸허하라는 선현의 따끔한 가르침이다. 존경받는 전직이 많이 생겨 갈등 많은 우리사회의 원로로서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다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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