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재표 · 글씨: 김재천

똑같은 여름이라도 도시는 더 숨이 막힌다. 빌딩의 그늘도 드리우지 않은 아스팔트 위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굳은 줄 알았던 아스팔트는 도로포장 당시 피치(pitch) 상태로 찐득거린다. 그 냄새는 또 얼마나 지독한가. 그런데 그 냄새나고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촛불을 밝히는 사람들이 있다.

선조들이 ‘열로서 열을 다스린다’고 얘기했던 이열치열(以熱治熱)은 이런 광경을 예상했던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훈련 중인 미군 장갑차가 여중생 두 명을 치어 숨지게 했을 때도 촛불을 들었고, 광우병 위험 소의 수입에 반대하면서도 촛불을 들고 나섰다. 최근의 촛불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선거에 불법 개입한 국가정보원을 개혁하자는 촛불이다.

촛불의 빛은 자신의 몸을 태워 어둠을 밀어내는 숭고한 희생을 표현한다. 흐르는 촛농은 눈물에 비유돼 순수성을 나타낸다. 촛불하나로는 환히 밝힐 수 없기에 아스팔트 위의 촛불은 평범한 군중의 궐기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같은 희생과 순수, 평범함으로는 힘이 부칠 때 그들은 횃불을 들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열 받은 울화를 열로 다스리는 현대판 이열치열의 형국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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