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윤규 금융감독원 충주출장소 소장

지난해 9월 아주 특이한 민원이 접수됐다. 민원내용은 보통 것과 다를 바 없었으나, 사연은 지면에 전부 소개하기 어려울 만큼 절절했다. 이미 청와대와 농림수산식품부(현 농림축산식품부), 금융감독원 등 관련 행정기관에서 처리됐음은 물론 대법원에서 패소판결까지 받은 민원이었다.

그 내용인즉 이렇다. 민원인은 친구에게만 보증을 서 주었지만 어느 날 알고 보니 그 친구 아버지의 대출에도 보증인으로 돼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친구 아버지의 대출서류에 자필서명을 하지 않았고, 필적감정결과도 그렇게 나왔으므로 보증채무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비록 아침부터 술 냄새를 풍기면서 찾아왔을지라도 그에게서 느껴지는 진정성과 자초지종을 소상하게 설명하는 그의 태도에서 주장하는 바가 맞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고민이었다. 법원의 판결 이전에 당사자를 조정하는 우리 원의 역할상 이미 끝나 버린 사건을 다시 되돌릴 수 없으며, 해당 금융회사는 이미 판결이 확정됐으므로 수용이 곤란하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대출을 취급했던 금융회사는 다른 금융회사에 합병됐으며, 상당한 시간이 경과해 관련 자료도 없을 뿐만 아니라 벌써 17년 전의 일이라 자필서명을 누가 했는지를 취급담당자가 기억해 낼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애초부터 무리였다. 그래서 우리는 민원인과 금융회사의 마음을 동시에 움직여야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발품을 팔 수 밖에 없었다.

민원인과 같이 몇 차례 관련자를 방문하고 자연스럽게 식사자리까지 마련하면서 그의 아들이 현재 전방에서 군복무중이며, 전역하면 대학 등록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됐다. 그런 점을 감안해 몇 차례 금융회사를 설득한 결과 합의가 이뤄졌다.

결과적으로 그는 친구의 농간으로 수없이 많은 시간을 고통으로 보내야 했지만 해당 금융회사의 결정과 우리 원의 노력으로 17년 전에 발생한 모든 일을 깨끗이 정리했다.

그는 젊은 시절 도시에서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맞아 전 재산을 날린 후 평범한 사람들이 겪어볼 수 없는 수많은 풍상을 보냈다. 또 거친 삶으로 인해 ‘더 이상 인생에 미련도 없고 갈 곳도 없다’며 좌절했지만 일이 정리되면서 조금이나마 웃음을 되찾고, 삶의 용기를 얻게 됐다.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6개월간 노력한 민원담당 직원은 조만간 말년 휴가를 나오는 그의 아들을 위해 밥과 술을 사겠다고 했다. 장마와 무더위로 몸은 지쳐가지만, 그래도 이렇게 뛰어다니며 얻게 된 작지만 의미 있는 일들로 인해 세상사는 재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누가 뭐래도, 아직은 세상이 아름답고,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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