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이색시구’보다 못한 2만명 시민 촛불집회

미디어오늘 발췌 기사/ “요즘 프로야구 인기만큼이나 큰 화제가 되는 것이 바로 시구입니다. 전 리듬체조 선수인 신수지는 이색 시구 한번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13일 KBS <뉴스9>에서 방송된 ‘이색시구 인기폭발’ 리포트 가운데 일부다. ‘이색시구’ 리포트는 같은 날 MBC <뉴스데스크>에서도 ‘시구 인기폭발’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됐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신수지의 시구. 리듬 체조의 장기를 살린 일루전 동작으로 포수의 미트에 공을 꽂았다. 중심을 잡기조차 힘들 듯한데, 완벽하게 마무리했다”는 게 리포트 내용이다.

프로야구 이색시구를 별도 리포트로 처리한 KBS MBC지만 이날 서울 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는 KBS MBC 메인뉴스에서 단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다. 이날 촛불집회는 세 번째로 열린 집회였고, 참가자도 2만3000여 명(주최측 추산)으로 최대규모였지만 KBS MBC SBS 모두 전파를 타지 못했다. 물론 이날 집회가 저녁 8시부터 진행됐기 때문에 ‘시간적 부족함’이 원인이 됐을 수도 있다.

▲ 7월 13일 2만3000여 명의 시민들이 서울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 7월 13일 KBS <뉴스9> 화면캡처.

하지만 ‘단신’으로라도 언급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를 지닌다. 특히 KBS의 경우 MBC SBS와 달리 9시부터 메인뉴스를 방송한다는 걸 감안하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시간적 부족함’보다는 사안을 판단하는 ‘가치의 문제’가 더 컸다는 얘기다.

지난 6일 서울광장에서 개최된 촛불집회만 하더라도 방송3사는 거의 침묵을 지켰다. KBS가 <뉴스9>에서 ‘단신’으로 보도한 게 전부다. 국정원 대선개입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는 이날 오후 6시부터 열렸고, 주최측 추산 1만 여명이 참석했지만 MBC와 SBS는 이 내용을 아예 보도하지 않았다.

단신으로 다룬 KBS도 이날 집회를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과 진상규명’이 아닌 진보·보수단체의 갈등 식으로 보도했다. 이날 KBS는 ‘괴물 쥐, 뉴트리아 생태계 초토화’ ‘드라마에 빠진 50대 남성, 문화취향 변했나’ 등을 메인뉴스에서 별도 리포트로 방송했다.

MBC와 SBS도 예외는 아니다. 촛불집회를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은 두 방송사는 “귀뚜라미와 메뚜기 같은 곤충들이 인류의 미래 식량으로 주목받고 있다. 뉴욕 맨해튼에선 이미 곤충식당이 인기를 끌고 있다”(SBS 7월6일 보도)는 내용을 보도하는가 하면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둘째아들이 감전사 했다”(MBC 7월6일)는 소식을 메인뉴스에서 5번째로 리포트로 전하기도 했다.

사실 이 같은 상황은 이미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다. 13일 촛불집회에는 이용마 MBC 해직기자가 무대에 올랐는데 그는 MBC뉴스의 불공정성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용마 기자는 “(편파보도에) 책임이 있는 당시 정치부장은 승진해서 MBC뉴스를 총 책임지는 보도국장 자리에 올라있다”며 “그 사람 밑에서 왜곡과 축소를 일삼았던 사람들이 지금 정치부장과 경제부장이 되어 MBC의 중요한 보직을 차지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제대로 된 보도가 나올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대선과 왜곡보도의 책임을 지고 있는 당사자들이 여전히 보도국에서 주요 보직을 맡고 있으니 제대로 된 보도가 나올 수 있겠냐는 것. ‘대선과 왜곡보도의 책임을 지고 있는 당사자들이 여전히 보도국에서 주요 보직을 맡고 있는 상황’은 유감스럽게도 MBC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정원 촛불집회가 방송3사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가 있기 전까지 KBS뉴스는 발생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소극적인 보도로 일관했다. ‘의제 죽이기’의 노력이 엿보였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소환, 국정원 압수수색, 정치권 동향 등 ‘어쩔 수 없는 발생’만을 보도했을 뿐 심층취재나 특종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가 있던 날도 보도는 2꼭지뿐이었고 그마나 내용도 ‘물타기’의 성격이 짙었다.

6월 20일 새누리당과 국정원이 ‘NLL 대화록’ 이슈를 다시 제기하자 KBS뉴스의 태도는 180도 돌변했다. KBS뉴스는 정권의 전략에 적극 호응했다. 새누리당과 국정원이 NLL 카드를 다시 꺼낸 다음날인 6월 21일 KBS뉴스는 NLL과 관련해 무려 5꼭지를 보도할 정도였다. 이 보다 더 정권의 논리를 잘 대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7월1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김현석·KBS본부)가 발표한 성명서 가운데 일부다. KBS가 그동안 국정원 관련 보도를 어떻게 해왔는지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와 관련 KBS 한 기자는 “국정원 관련 의혹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KBS가 과연 ‘국정원 선거개입을 규탄하는 집회’를 제대로 보도할 수 있겠느냐”면서 “국정원 촛불집회는 KBS뉴스에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KBS뿐만 아니라 MBC와 SBS 또한 국정원 보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하지만 KBS가 이런 식의 보도를 하면서 수신료 인상을 요구하는 건 문제가 심각하다”고 비판했다.

‘국정원 관련 보도 불방’YTN보도국장 불신임 78.4%

국정원 불방보도와 관련, YTN기자들의 78.4%가 이홍렬 보도국장을 불신임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지난 9일부터 4일동안 진행된 한국기자협회 YTN지부의 이홍렬 보도국장에 대한 신임투표 결과, 불신임 비율이 78.4%로 집계됐다. 신임한다는 응답은 18%에 불과했다. 투표율은 62.9%였다. 유투권 YTN지회장은 “몇 년 전부터 사측에서 (신임투표를 한 기자에게) 징계를 내리겠다는 공문을 내리는 등 탄압이 지속돼 왔다.

이번에도 사측이 사규위반이라고 말한 바 있다”며 “하지만 (신임투표는) 정당한 의사표현의 절차”라고 말했다.

유 지회장은 투표를 할 당시 분위기와 관련해 “사안이 사안인 만큼 투표를 한 기자나 하지 않은 기자 모두가 무거운 분위기 속에 있었다”고 밝혔다. YTN지회는 이번 투표 결과에 대한 성명을 15일에 낸 후 이홍렬 보도국장의 사퇴를 촉구할 예정이다.

유 지회장은 “많은 회원들이 불신임한다는 결과가 나왔으므로 이 뜻에 따라 거취를 결정하는 게 보도국장으로서 현명한 판단일 것”이라고 밝혔다.
미디어오늘은 이홍렬 보도국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이홍렬 국장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지난달 20일 YTN은 단독보도한 ‘국정원 SNS 박원순 비하 글 등 2만건 포착’ 리포트가 중단된 이후 국정원 개입 의혹이 제기됐다. 또한 보도국 회의 내용이 사전에 유출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홍렬 보도국장은 “취재원과 추출방식의 신뢰도 등 완성도가 다소 미흡한 측면에 있어 더 이상 방송되지 않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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