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정 충북경실련 사무국장

최윤정
“우리가 요청한 게 아니에요. 이마트 간판도 점주들이 해달라고 해서 해준 거라니까요.”
이마트 상품공급점이라는 것이 이곳저곳에 생겼다. 이마트 측으로부터 일부 상품을 공급받는 점포라는 뜻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이마트 에브리데이(이마트 슈퍼마켓)라는 간판을 크게 내걸었다. ‘상품공급점’이나 원래 이름인 ‘○○마트’는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표시돼 있을 뿐이다. 심지어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이마트 유니폼을 입고 있다.

소비자들은 당연히 이마트 슈퍼마켓인 줄 알고 물건을 산다. 이마트 간판을 달았지만, 월 2회 반드시 문을 닫아야 할 ‘의무휴업’도, 자정부터 다음날 아침 10시까지 영업할 수 없도록 한 ‘영업시간 규제’도 받지 않는다. 개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이기 때문이다.

언론에 따르면, 이마트가 상품공급점을 운영하는 취지는 “개인 슈퍼마켓에 더 싸고 좋은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거짓말이다. 대형마트 업계에서 1등을 독주하던 이마트는 SSM(Super Supermarket)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면서 타이밍을 놓쳤다. 재벌 유통기업이 골목상권까지 집어삼킨다는 여론이 비등해지고, 국회에서는 관련법 개정 논의가 뜨거워졌다. 그래서 눈길을 돌린 곳이 ‘도매시장’이다. 코스트코에 도전장을 던진다며 창고형 매장을 짓기 시작했고, 상품공급점을 모집한다며 골목 슈퍼를 돌았다.

“기존 대리점 물건 그대로 받아도 돼요. 우리(이마트) 물건은 월 2000(만원)씩만 받으면 된다니까….”

이들의 영업에 넘어간 동네 슈퍼가 2년 새 300곳이나 된다. 최근엔 2000만원 조건도 크게 낮춰 월 1000만원 어치의 물건만 받아주면 이마트 간판을 달 수 있다고 한다. 이마트로선, 밑지지 않는 장사이다. 자연스레 광고효과를 누리면서, 기존 물류망을 이용해 상품 공급을 늘여가고 있으니 말이다.

이같은 상품공급점 형태는 CS유통의 ‘하모니마트’가 시초이다. 2009년, 청주지역에 진출한 CS유통은 사업조정을 무시하고 기습적으로 직영점을 개설해 논란이 됐다. 이후 CS유통은 직영점 대신 하모니마트라는 ‘임의가맹점’으로 세를 불려 나갔다. 당시 CS유통은 SSM 진출에 반대하는 상인들에게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러 왔다”고 우겼으나, 결국 롯데마트의 품에 안겼다.

롯데는 CS유통을 인수함으로써, 대기업이 골목상권에 진출한다는 비난 없이 SSM 시장 1위 자리를 꿰찼다. 하모니마트가 롯데로 간판을 바꿔달지 않은 건, 공정거래위원회가 롯데와 CS유통의 기업결합을 승인하면서 2016년까지 ‘롯데’라는 상호를 쓰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상품공급점이 법의 사각지대에서 승승장구하자, 최근 GS리테일도 이 사업에 뛰어들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들 유통 재벌의 물품 공급이 확대될수록, 골목 슈퍼에 대한 장악력이 커지고, 기존 도매시장이 급속히 위축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도 중소기업청은 지난 2010년,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의 상생 방안이라며, 이마트와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간의 MOU 체결을 알선해 논란이 된 바 있다. 골목슈퍼를 SSM의 대항마로 키우겠다면서, 대기업이 보유한 물류센터와 물류망을 이용해 상품을 공급하겠다는 건 도대체 무슨 발상일까? 이런 제안을 덥썩 받아 문 슈퍼조합은 또 어떤 셈법일까?

개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은 참 힘들다. 대형마트, SSM과의 경쟁은 말할 것도 없지만, 개인 슈퍼끼리의 경쟁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대기업의 등에 업힐 생각은 접었으면 싶다. 소비자의 눈을 속이면서까지 대기업 매장인 양 흉내내는 영업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대기업의 달콤한 제안에 속아 독배를 드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바야흐로, 수많은 협동조합들이 태동하는 시기이다. 골목상권도 새로운 협동조합의 이름으로 당당히 살아나는 그 날을 꿈꿔 본다. 대기업 간판을 내던질 그 날, 말이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