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재표 · 글씨: 김재천

박근혜 정부가 4대악 근절을 선언했다. 악(惡)은 선(善)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기준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경계가 모호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방이 선이면 그 건너편은 악이 되는 것이다. 나를 기준으로 삼는가, 다수일 수도 있는 남을 기준으로 삼는가에 따라서도 선과 악은 뒤바뀔 수 있다.

예컨대 부당해고에 임금까지 체불당한 노동자가 땟거리가 끊겨 사장 집 담을 넘었다. 그러나 경비원과 격투 끝에 중태에 빠졌다. 여기에서 선은 누구고 악은 누구란 말인가? 등장인물은 두 명이지만 악은 그 밖에 있을 수도 있고, 다수일 수도 있다. 아니 ‘누구에게나 악한 면은 있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다. 나아가 악한 기재는 사회적 환경에 의해 작용되니 사회가 악한 것일 수도 있다. 심지어는 ‘전지전능한 신이 악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문제는 모든 권력은 정의롭게 포장되기를 바라고, 정의롭지 못한 권력일수록 이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12.12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을 총으로 진압한 전두환 정권은 이른바 사회정화운동을 벌인다며 삼청교육대를 설치, 운영했다. 세 가지를 맑게 한다는 ‘삼청(三淸)’의 三은 ‘몸과 마음, 과거’라고 한다. 이어 노태우 전 대통령은 ‘범죄와 전쟁’을 선포하고 조폭을 소탕했다.

군부를 추억케 하는 ‘일소, 소탕, 전쟁’ 등의 단어가 잊힐 만한 시점에서 우리는 또 ‘4대악 근절’이라는 단어를 접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고르고 고른 네 가지 악은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이다. 물론 이 네 가지 중에 우리가 옹호해야할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척결해야할 네 가지 악은 과연 제대로 엄선한 것일까? 학교폭력을 척결하는 방식이 폭력적이어서 또 다른 상처를 남기지는 않을까?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제조허가를 받은 문방구의 쫀득이 따위가 불량식품으로 찍혀 집중 타깃이 되지는 않을까? 무엇보다도 악을 척결한다면서 망나니춤을 추기보다는 막연하더라도 선을 추구하는 품격 있는 권력을 만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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