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신비롭고 재미있는 직지이야기>

황정하
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고인쇄박물관에 근무하다 보면 각계각층으로부터 직지와 관련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직지는 왜 프랑스에 보관되어 있을까? 외규장각 도서는 돌아 왔는데 왜 직지는 반환 받을 수 없는 것일까? 등등…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잘못 알려진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낀다. 따라서 누구나 쉽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수 있는 책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에서 기획하여 박상진이 엮고, 청주고인쇄박물관이 감수하여 태학사에서 출판한 책이 <신비롭고 재미있는 직지 이야기>이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직지에 대해 청소년부터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총 4부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직지를 프랑스로 가져간 주한 프랑스 공사 꼴랭 드 쁠랑시의 조선에서의 활동, 그의 조선 궁녀 이심과의 로맨스와 현재까지 이 책이 전해져 내려온 내력을 소개하였다.

2부에서는 직지의 편저자 백운화상을 비롯하여 직지의 금속활자본과 목판본의 간행 등을 소개하였으며, 3부에서는 직지 상하권의 내용 중에서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지혜를 소개하였다. 마지막 4부에서는 고려와 조선시대 책과 관련된 인쇄문화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어 독자들의 읽는 재미를 더할 것이다.

▲저자 : 박상진 출판사 : 태학사
직지는 백운화상이 부처님과 조사들이 마음의 본체를 바로 가리켜 보인 설법의 중요한 절목만을 가려 뽑아 기록한 책이다. ‘직지인심 견성성불’의 요긴한 지침서로 팔만대장경과 수많은 조사어록의 요점을 집약한 선불교에 있어서 제일의 교과서로 평가를 받고 있다. 백운화상이 입적함에 따라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에 백운의 제자 석찬과 달잠이 비구니 묘덕의 시주를 받아 금속활자로 간행하였다.

직지는 19세기 후반에 주한프랑스 공사였던 꼴랭 드 쁠랑시가 수집하여 1900년에 개최된 파리만국박람회에 최초로 서양에 공개되었다. 그리고 1911년에 두르오 경매장에서 180프랑에 매매되어 앙리 베베르가 소장하게 되었으며, 그의 유언에 따라 1952년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었다.

1972년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도서의 해를 맞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는 책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때 직지가 전시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당시 유럽에서는 금속활자의 발명을 구텐베르크로 알고 있었는데, 이 보다 70여년 앞서 한국에서 금속활자를 발명한 증거물이 전시되었기 때문이다.

직지, 금속활자 창안한 문화민족 입증

이러한 사실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학계에서는 학술회의를 개최하는 등 금속활자 인쇄술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전시회가 끝나고 박병선 박사가 직지의 흑백사진을 한국에 제공해 영인본을 만들게 되었으며, 이 책의 간기에 나오는 인쇄 장소인 흥덕사를 찾는 노력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어떠한 문헌이나, 청주 주변에 절터를 찾아보아도 흥덕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84년에 운천동 일대 택지개발공사가 진행되었는데, 절터가 확인되어 발굴하는 가운데 흥덕사라는 글씨가 음각으로 새겨진 청동 금구가 발견되면서 직지를 간행했던 흥덕사의 터가 확인되었다. 이에 흥덕사 터는 사적 제315호로 지정되고, 이를 정비하면서 고인쇄박물관을 개관하게 되었다.

청주에서는 인류 문화유산 직지를 영구히 보존하고 알리기 위해 2001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였다. 또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유네스코 직지상’을 제정하여 인류 공동의 기록유산 보존과 접근에 세계적으로 크게 공헌한 기관, 단체, 개인에게 2년마다 시상하고 있다.

1200년대를 전후한 고려는 사회적으로 내란과 외란을 겪는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에 최충헌이 정권을 잡으면서 안정기에 들어가게 되었고, 권력은 그의 아들 최이(우)에게 넘어가게 된다. 최이는 문치를 펴기 위해 책이 필요했고, 책을 만드는 기술인 금속활자를 발명하게 되었다. 즉 13세기 초에 금속활자로 인쇄했다는 기록은 남명천화상송증도가와 상정예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이것으로 보아 1239년 이전에 이미 금속활자 인쇄가 진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규보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에 의하면, 1234년에서 1241년 사이에 상정예문 28부를 금속활자로 인쇄하여 각 관서에 나누어 보관토록 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책은 안타깝게도 실물이 전하지 않는다.

그러한 가운데 1377년 7월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한 직지는 실물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전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대한민국이 13세기 초에 금속활자를 창안하여 발전시킨 슬기로운 문화민족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물로 직지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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