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충북민예총 부회장

베니스 비엔날레는 평범한 작품을 찾기 어려운 행사로 유명하다. 시각의 예술은 음악과 극적 분위기 문학과 인문학이 뒤엉켜 형식을 거부한 일종의 다원적 형식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를 다 형식주의라는 절충의 견해로 표현하는 비평가도 있다. 그러다보니 작년 광주의 재현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상당 부분 같은 작가의 성향이 보이는 전시이다.

그러는 가운데에도 특이한 작품을 출품하여 인기 몰이는 하는 중국의 작가가 눈에 띈다. 그는 자신의 생활을 공안당국으로부터 통제를 받고 있는 반체제 미술가이자 독립큐레이터인 아이웨이웨이(艾未未·56)이다. 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으며 구금 받던 자신의 상황을 매우 리얼한 상황극으로 만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중국관이 아닌 독일관 참여 작가로 선정돼 작품을 출품했다. 수

갑을 찬 채로 취조를 받는 장면, 공안 두 명이 밀착 감시하는 가운데 밥을 먹거나 용변을 보고, 샤워하는 장면을 실물 사이즈의 절반 크기로 만들어 철제박스에 설치하였다. 철제박스 꼭대기나 위쪽 측면에 작은 창문을 뚫고, 그 작은 창으로 디오라마 작품을 관객이 불편하게 감상하도록 한 것은 당국에 의해 감시를 받았던 순간을 관람객이 마치 훔쳐보듯 계산을 하였다.

관람객이 작가의 통제시절을 불편한 모습으로 감상을 하거나 힘겹게 작은 계단에 올라가 작은 창으로 드려다 보는 것이 오히려 작품처럼 보인다.

지극히 개인적이거나 사회역사적 의미의 참여는 예술가에게 있어서 절실한 부분이며 창작의 자유 영역 안에 있는 것이다. 불어 아가쥬망은 자신에 대한 약속이라는 뜻이다. 사르트르는 앙가쥬망을 시대 모순에 대한 항거와 저항의 현실 참여로 해석하였다.

예술운동은 이를 기반으로 사회의 부정을 외면하지 않는 예술로서의 저항을 통한 자신의 존재인식이며 대중과 함께하는 생명력의 예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27년 문학잡지에 예술운동의 용어가 사용 되었다. 항일을 위한 예술가 운동으로 민족해방운동이 그 뿌리이다. 두세대를 지나 민중미술이 태어났다. 시대적 사명, 시대정신의 미학, 시대적 미의식이라는 표현은 민중미술운동에도 그대로 적용 될 수 있다. 민중미술은 사회적 소통과 정치적 참여를 추구하는 리얼리즘에서 출발하였다.

1980년대 모더니즘 미술의 대유행 속에 있었던 민중미술가들은 구상화로서 출발하여 한국 전통예술과 모더니즘과의 관계를 통해 정체성이 확립되었다. 당시 민중미술은 노동자와 농민들로 대변되는 민중들이 정치적 투쟁의 주체임을 분명히 하였다.

민중미술가들은 정부에 빈부격차를 좁히고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 것을 촉구했지만 산업화, 현대화, 도시화를 거부하였다. 민중미술가들은 경제개발을 위해 외세와 협력하는 것을 거부하고 순혈주의와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 민족생존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민중미술가들은 외세에 굴복하지 않고 민족적 정체성을 지켜내는 미술이었다.

2013년 민중미술은 다시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한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이 반체제에 대한 굴욕적 개인사 이지만 중국의 민중 미술이 서구에서 인정을 받는 것은 중국사회가 예술을 수용하는 방식이 우리와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2008년 광주에서의 아시아는 민중미술의 중심을 기획이 있었다. 새로운 해석이 필요했으나 시스템의 부족이 세계화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현재 중국의 미술은 80년대 한국 민중미술의 답습을 보는 듯 하다. 문화혁명 속 민중의 해방이 세계적 작품으로 경매에 최고가를 달리고 있고 지속적으로 작가를 발굴 성장시키며 경제성장의 앞에 예술가를 포진시켰다. 이는 중국 경제가 문화 예술 속에 있다는 잘 포장된 전술이다.

참여와 저항의 민중미술이 한국사회에서는 실패를 하고 공안정국의 중국에서는 성공을 하는가는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양대 이데올로기의 정치적 배경에 큰 문제가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헤겔의 인정투쟁(認定鬪爭)이 자아 내면의 타자를 살해하는 일이 아니라 자아를 타자 안에 수용하는 자세의 필요성이 더 중요한 것이며 우리 안에 무의식의 잠재가 스스로 파시즘을 양산하고 있지나 않나하는 아쉬움이다. 지나친 내면의 규율(Canon)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푸코의 팬옵티콘이 되어 문화를 권력화하지 않나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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