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표 마을신문 네트워크 ‘청주마실’ 대표

2012년 3월 17일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말레이시아를 여행할 기회가 생겼고, 짬을 내서 그 나라의 행정수도 푸트라자야를 취재했다. 3월 17일은 귀국하는 날이었다. 지역주간지에 푸트라자야 기사를 싣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기사는 쓰지 못했다.

그날 밤 ‘Crime to guilty’라는 블로그를 통해 폭로된 ‘정우택 후보의 변태적 성매매 의혹’이라는 괴문서가 기사화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용을 검토하면서 “내용 전체를 사실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성상납과 불륜 등과 함께 ‘노상에서 1000만원을 받았다’는 비밀스러운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정보제공자가 2, 3인 이내로 압축될 수밖에 없고, 그 사람이 누군지는 정 후보 스스로가 가장 정확히 알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더라’ 수준의 풍문에 허위사실을 보탠 흑색선전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취재에 매달렸던 이유다.

4·11 총선까지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았고, 진실을 가리지 않으면 유권자들이 ‘믿기 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 후보는 문서의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누군가에 의한 마타도어로 규정할 것이 예상됐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몇 차례 TV토론을 통해 확인됐다.

처음에는 “나를 음해하는 검은 세력이 있다. 이런 흑색선전이 누구에게 유리하겠냐”고 물었다가 나중에는 “이번 선거는 정책·비전선거를 하는 정우택과 흑색·비방선거를 하는 홍재형의 대결”이라고 단정했다. 프레임은 정확히 믿기 게임이 되고 말았다. 유권자들은 결국 정우택을 믿었고 홍재형을 믿지 않았다.

선거 전에 속전속결로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 블로그가 성을 상납했다고 주장한 충북청년경제포럼의 다음 카페에 ‘이 카페에서만 검색하기’라는 기법으로 침입(?)했다. 거기에서 찾아낸 사진과 예결산서 등은 제공받은 것이 아니기에 가공된 것이 아니었다. 이를 바탕으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고자 했다. 그러나 진실공방은 선거가 끝난 뒤에도 이어졌다.

정 후보 측에서 민형사소송을 냈다. 형사는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됐으나 6월 26일 선고된 민사에서는 5인의 피고가 6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언론·출판에 의한 명예훼손과 관련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 적시된 내용이 허위라는 것을 입증할 책임이 원고에게 있고, 반대로 피고는 적시된 사실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므로 위법성을 조각시키는 사유에 대한 증명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례(2008년 1월 24일 선고)를 근거로 명예훼손 성립 여부에 대한 검토에 들어간다.

재판부의 판단은 이렇다. 첫째 “원고 측이 제시한 증거와 증인으로는 이 사건의 기사가 허위라고 단정하기 부족하다.” 둘째 “기사는 공직자에 대한 비판과 감시라는 기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므로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취재하지 아니한 채 단정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으로 기사를 작성, 보도했으므로 피고들의 위법성 조각 주장은 이유 없다”는 것이다. 3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에서 재판부가 6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이유다.

5월로 예정됐던 민사 선고가 한 달 연기됐을 때 극도의 피로감을 느꼈을 만큼 지쳐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소할 생각이다. 배상금의 규모를 놓고 ‘이겼다, 졌다’를 판단하는 거라면 말 그대로 정우택 의원 일부 승소, 우리의 일부 패소를 인정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승패가 아니라 진실에 대한 추구와 양심에 관한 것이니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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