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해도 ‘사랑합니다. 고객님’ 외치는 불편한 친절
기업들 ‘고객제일주의’ 전략에 서비스노동자는 피멍

‘감정노동’이란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는 무관하게 정형화된 행위나 감정으로 고객을 대해야 하는 노동을 뜻한다. 은행원과 승무원, 전화상담원,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판매원 등 직접 고객을 응대하면서 자신의 감정은 드러내지 않고 서비스 해야 하는 직업 종사자들이 감정노동자에 해당된다.

‘감정노동’은 팔과 다리 등 근력을 사용하던 전통적인 육체노동과 차원이 다르다. 육체노동에 기반한 1970년대, 장시간 노동에 지친 어린 여공들은 피로를 통제하기 위해 각성제를 복용하며 일을 했다. 반면 감정노동자들을 고용한 기업은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노동자들의 감정을 통제해 이익을 극대화 시킨다.

반복 교육과 기업 규율을 통해 노동자가 웃음이나 미소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만든다. 부당한 상태에서도 화를 낼수 없도록 만들고, 감정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도록 무표정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만든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는 자아를 상실한다. 자아가 무너진 노동자는 감정노동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 시키려는 기업의 전략과 딱 맞아 떨어진다.

30여 년 전 미국의 한 항공사는 ‘언제나 웃어야 한다’는 주문에 반발하는 여승무원을 상대로 이렇게 교육했다.

“여러분은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 지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화가 난 겁니다. 자신에 관한 생각을 버리세요!”

▲ 청주시내 모 백화점 콜센터 옥상 휴게실 전경. 감정노동자들은 고객을 상대로 어떠한 항거도 할 수 없다. 표현되지 못한 응어리는 극도의 스트레스. 그래서 옥상은 유일한 탈출구다. 흡연! 이들에게 회사가 제공하는 최후의 서비스다.

청주 서부권역의 대형마트 내 중저가 브랜드 화장품 입점 업체의 점주인 민은주(42세, 가명)씨는 어제도 새벽 5시 까지 술을 마셨다. 최근 보름 정도를 살펴보니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은 며칠에 불과했다. 전직 학원 강사였던 민 씨는 원래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민 씨는 지금도 그때 그 사람만 떠올리면 가슴이 터 질 것 같은 증상을 느끼고 눈물이 저절로 나온다.  그날 있었던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민 씨가 운영하는 매장에 30대의 여성 고객이 찾아왔다. 이 고객의 하얀 블라우스 위에는 명찰이 달려 있었다. 민 씨가 입점한 대형마트의 또 다른 직원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고객은 진열된 제품 중 세,네가지의 상품을 고른 뒤 사은품을 요구했다. 민 씨는 고객에게 판촉 행사가 끝났기 때문에 사은품을 제공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민 씨의 이런 설명에도 고객은 막무가내였다. 고객은 계속해서 사은품을 요구 했지만 민 씨는 브랜드사의 방침 상 고객의 요구를 수용할 방법이 도무지 없었다.

이 와중에 또 다른 고객이 매장을 방문했다. 민 씨가 새로운 고객을 응대하는 순간 고객은  “손님을 맞는 태도가 왜 이 모양이냐! 도대체 누구 한테서 교육을 받았냐”며 고함을 질렀다. 이어 “당장 매니저를 불러오라”는 호통이 이어졌다.  민 씨가 “내가 매니저(점주)”라고 답변하자, 이번에는 손에 들고 있는 제품을 바닥으로 집어 던지며 “대형마트 소속의 상급 매니저를 불러오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민 씨는 머리 끝 까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아야 했다. 눈물도 참아야 했다.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제품을 간신히 주어 담고 고객의 요구대로 대형마트의 매니저를 호출 했다. 그리고 해당 매니저가 보는 앞에서 고객에게 사과했다. 고객과 매니저가 자리를 뜬 이후에야 복 받친 눈물을 쏟아 냈다.  3회 이상 불친절 민원이 도달하면 자동으로 퇴점 처리되는 것을 아는 같은 직종에 있는 사람에게 당한 것이 더 서러웠다.  

폭력 앞에서도 “죄송합니다. 고객님”

지난 5월 27일 홈플러스 성안점에 근무하는 김인숙(54·가명)씨는 남성 고객의 폭언에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 김 씨는 사고 당시 시식대를 설치하고 프라이팬에 두부를 부칠 준비를 시작했다. 이때 문제의 남성이 두부 시식코너로 와 두부를 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김 씨는 “지금 막 올려 놓은 거라 드실 수가 없다 ”고 설명했다.

그러자 이 남성은 갑자기 “OO년아! 두부가 뭐 대단한 거라고 안주냐”라며 폭언을 하기 시작했고, “영업부장 나오라고 그래”라고 고성을 지르며 욕을 계속했다. 이 남성은 떠날때가지 김 씨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본지 798호, “나는 왕이다” 도 넘은 고객의 횡포).

지난 6월 청주 서부권역의 또 다른 대형마트 매장. 시식 코너를 지나가던 고객이 갑자기 고기에 침을 뱉고 “고기가 질기다”며 매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 종업원은 “죄송합니다. 고객님”만을 반복하며 사태를 수습했다.

병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주, 청주에 있는 한 종합 병원에서도 환자의 폭언 사건이 발생했다. 60대 후반의 암 환자는 방사선 치료를 받는 도중 간호사에게 “눈깔을 뽑아버리겠다. 이 ×년” 같은 심한 욕설을 했지만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폭언을 당한 김 모(38세)간호사와 동료 간호사 신 모(41세)는 병원에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특별한 답은 받지 못했다. 그리고 이들은

그 다음날 해당 환자에게 “잘 돌봐 드릴 테니 화를 자제하시라고 정중히 부탁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콜센터의 상황은 접근조차 차단됐다. 전화번호 114업무를 수행하는 콜센터는 취재 자체를 거부했다. 다른 두 곳의 콜센터도 마찬가지였다. 건물 옥상에는 여성노동자들이 수시로 담배연기를 뿜어냈다. 진상고객의 전화조차 마음대로 끊지 못하는 이들이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흡연뿐이라고 감정노동자는 전했다.  

감정노동 이해하기
전체 취업자 50% 육박, 내면 통제속 공황장애?우울증 심각

 ‘감정노동’은 앨리 러셀 혹실드 캘리포니아주립대학 교수가 1983년 ‘감정노동 (The Mnamged Heart)’라는 저서를 통해 처음 언급한 개념이다. 화를 내거나 즐거운 일에 기쁨을 표시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이다.

하지만 서비스산업등 많은 직업에서 본성에 의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엄격히 통제한다. 이렇게 감정, 즉 자신의 기분을 억누르면서 일해야 하는 것을 ‘감정노동’이란 용어로 개념화했다. ‘감정노동’이 증대하게 된 것은 굴뚝 산업의 쇠퇴와 서비스 산업의 팽창과 연관돼 있다. 기업은 고객제일주의 경영을 내세우며 고객접점에 있는 직원들에 대한 친절을 강조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2012년 통계청조사에 의하면 전체 취업자 2450만명 중 33%인 538만명이 도·소매업과 숙박및음식업에 종사한다. 이 업종에 속하지 않지만 교사, 간호사, 보험모집인, 목사와 같은 성직자를 포함하면 전체 취업인구의 절반 가량이 감정 노동에 종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충북지역은 따로 분류된 통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전국평균 수치를 적용해보면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인원이 35만 명 내외의 추정된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의하면 감정노동자는 고객으로부터 ▲폭언 및 반말 ▲ 한 손으로 물건·현금·신용카드 등을 던지는 행위를 접할 때 인격적 수모와 굴욕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고객과의 마찰과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리 이석 등과 같은 도피 방법이 제약되는데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심하면 공황장애, 불안, 불면증, 대인기피 등 정신 질환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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