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집 발간 앞둔 김철순 시인

1995년 동양일보가 주최한 제1회 지용신인문학상의 시 부문 수상자는 주부시인 김철순(59)씨였다. 주부시인이라는 말 외에는 딱히 이력이 없던 그의 수상은 지역사회에서 화제가 됐다. 신춘문예 수상금이 당시엔 100만원이었는데 지용신인문학상은 500만원을 줬다. 지금은 타 문학상 수상금이 천만원 단위까지 올라갔지만 당시만 해도 파격이었다. 지방뉴스에까지 그의 수상소식이 전파를 탔다.


김씨는 전문적으로 시를 배워본 적도 없는 데다, 어릴 적 가난으로 원하는 학교를 진학하지도 못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려 상경했다. “퇴근하고 학교에 가야 하지만 회사일이 늦게 끝나 제대로 다니질 못했어요. 정말 많이 속상해 했고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죠.”

그러던 중 소개팅으로 남편을 만나 ‘방황하듯’ 결혼을 했고 아이 셋을 낳았다. 보은에서 태어나 그는 다시 남편과 아이 셋을 데리고 고향에 왔다. 거리에서 고향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자존심에 난 생채기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그렇게 20대, 30대를 보냈다. 아이를 키우며 밥벌이를 위한 일을 놓치 않으면서 열심히 살았지만 늘 허전했다. 40살 그는 시를 썼다. 한 번도 문학을 배우지 않았지만, 시는 그 안에 살아있었다.

마흔살, 시인이 되다

“어릴 적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늘 영어선생님이 되기를 바랐죠. 영어를 참 좋아했어요. 공부를 더 하고 싶었지만 워낙 대식구인지라 먹고 살기 바빴어요. 아버지가 특히 저를 예뻐하셨는데 공부를 더 못 시키는 것에 많이 미안해하셨죠. 아버지는 시골분이지만 정말 아이들을 사랑했어요. 아버지께 엄청난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 제가 시인으로 살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딸이 시인이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김씨의 초기 시에는 유독 아버지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김씨는 상처와 아픔을 온전히 시로써 드러냈다. “학창시절에 친구들 연애편지를 많이 써줬어요. 그 정도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삶의 상처는 곧 시가 돼 나오더라고요. 시는 지금 제 인생에서 없으면 안돼요. 시가 있기 때문에 제가 사는 거죠. 늘 시가 제 삶에 맴돌고 있으니까요.”

그는 등단하기 전 보은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문학제에 경험한다는 셈 치고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가면 무조건 상을 받았다. 상금 대신에 생활용품들을 주던 시절이라 살림에 요긴하게 썼다. 재미가 났다. 그러다가 청주에서 열리는 충북여성백일장에 나갔는데 또 상을 탔다.

이번에 전국대회를 나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거짓말처럼 전국주부백일장에 나간 그해 또 최고상인 우수 1석을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지용신인문학상에서 상을 탔다. “제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던 것 같아요. 보은에서 해보고 그다음 청주, 전국으로 발걸음을 넓혀갔죠. 수상을 하면 사람들이 누구에게 배웠느냐는 얘기를 가장 많이 했어요. 그 때 기분이 우쭐해지기도 했지만 또 공부하지 못한 것에 대한 갈급함도 밀려왔죠.”

그는 지금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창과에서 그토록 원했던 대학 공부를 하고 있다. 2011년에 그는 한 해 한국일보와 경상일보 두 군데 신춘문예에서 상을 받았다. 그러한 신춘문예 이력 때문에 그는 대학을 다니면서 장학금 지원까지 받는다.

2011년 신춘문예 2군데서 뽑혀

그는 4년 전부터 시가 아닌 동시를 쓰기 시작했다. 신춘문예도 동시로 됐다. “처음에 쓴 시는 아픔을 토해 내다보니 아무래도 무거웠죠. 동시를 쓰다 보니 저랑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론 아동문학가로 살고 싶어요.”

김씨는 올해 9월 문학동네에서 시집 <사과의 길>을 펴낸다. 이미 두 편의 시집을 냈지만 동시집은 처음이다. 그는 올해 아르코 창작지원금 1000만원을 받았다. 전국에서 시 쓰는 사람 가운데 단 80명에게 주는 지원금을 받게 됐다.

“신랑은 주말에 농사를 같이 짓자고 하는 데 전 시간이 없어요. 공부하고 책 읽고 시 쓰는 데도 시간이 빠듯해요.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운 뒤에 시를 썼지만 늘 직장을 다녔어요. 지금은 보은군청 민원과에서 새주소 담당 업무를 계약직으로 맡고 있어요. 오롯이 글만 쓰는 사람이 부럽기도 하지만, 바쁘니까 뭐든지 잡 생각 없이 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그는 지금 보은문학회장을 맡고 있으며 충북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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