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체험살이’ 마을기업 조성, ‘문화숙박’ 공동마케팅
장인들이 강사로 나선 체험프로그램 일주일 내내 열려

도시의 얼굴
북촌이야기

▲ 북촌에는 한옥체험뿐만아니라 장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체험공방이 열려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도시의 얼굴은 어쩌면 건물이 아닌 사람일지 모른다. 그 도시에 살았던 과거와 현재의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브랜드를 갖게 된다. 통영시는 이순신이 있기에 한산대첩 축제를 하고, 600억원을 들여서 통제영을 복원해 12장인을 다시 모셔오는 퍼포먼스를 연출한다. 도시를 성장과 발전의 패러다임이 아닌 정체성과 문화의 가치를 통해 브랜딩하기 때문이다. ‘동양의 나폴리’라는 통영에 사람들이 오는 것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이순신을 비롯한 유명 문화예술인들의 흔적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서울 북촌도 마찬가지다. 2~3년 전부터 개발바람이 불어 지금은 한옥값이 천정부지로 올랐지만 사람들이 이곳을 찾게 된 데는 한옥에 자리잡은 장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옥과 장인의 살아있는 콘텐츠는 전 세계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사로잡고 있다. 내년 7월 1일자로 통합 청주시가 출범한다. 도시의 스케일뿐만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과 상징적인 인물을 고민해볼 때다. 기자는 6월 11일부터 14일까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지역의 장인과 도시브랜딩’연수에 참여해 북촌과 통영의 장인들을 취재했다. 지역과 장인들의 연결고리를 찾아본다.

북촌에서 관광지도를 든 외국인을 만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한옥과 오래된 골목을 누비면서 이들은 한국의 문화를 읽고, 감성을 산다. 한옥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이른바 ‘문화숙박’을 경험한다. 19세기 말부터 21세기 초 북촌은 경북궁과 창덕궁 사이에서 100여년의 시간을 켜켜이 담고 있는 곳이었다. 이 마을에서 꼭 봐야할 풍경들을 ‘북촌8경’이라고 정하고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북촌에는 마을기업인 한옥체험살이안내센터가 있다. 조경훈 사무국장은 “북촌 열풍이 분 것은 2~3년밖에 되지 않았다. 인사동, 삼청동에 이어 북촌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지금은 한옥 임대 가격만 억대이고 한 달 월세도 200~300만원선이다. 관광지가 돼버리면서 북촌의 풍경도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옥체험살이안내센터는 북촌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들이 공동마케팅을 펼치고 있으며, 숙박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북촌한옥게스트하우스에 숙박하면서 김치만들기, 막걸리체험을 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북촌에 장인들이 모인 이유

북촌이 이처럼 뜨자 한옥에 살고 있는 장인들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매주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장인들은 북촌전통공예체험관에서 직접 체험프로그램을 개최한다. 장인들이 전통에 대해 강의하고, 관광객이 스스로 만든 ‘전통예술품’을 가져가도록 한다. 북촌에서는 천연염색손수건, 닥종이인형, 한지보석함, 창호액자, 민화부채, 단청액세서리, 금석서표 책갈피, 전통매듭팔찌, 나전칠기 열쇠고리 등을 5000원에서 1만 5000원을 내면 직접 만들고 가져갈 수 있다.

전통의 재해석, 대중과 소통하다

▲ 소목장 심용식 씨
북촌에서 청원산방을 운영하고 있는 심용식(60)씨는 서울시무형문화재 소목장이다. 그는 “아내의 도움으로 2008년 이곳에 자리잡았다. 장인들이 방안에서 틀어박히기 쉬운데 북촌에 오니 관광객들도 많이 오고 수강생들도 많다. 전통짜맞춤기법을 활용한 소목체험을 하고, 소목학교를 운영하다보니 공방이 예전보다 활력이 넘친다”고 말했다.

작업실에는 40년 넘게 쓴 도구와 낡은 가방들이 걸려있어 그의 장인 인생을 한 눈에 말해주는 듯 했다. 심씨는 석굴암 복원 작업에서도 사용했던 장비들이라고 했다.

▲ 닥종이 종예가 조경화 씨
조경화씨는 닥종이 인형공방을 운영한다. 유치원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닥종이 인형을 만들어가는 체험프로그램은 인기가 좋다. 조씨는 “한지를 겹겹이 찢어서 만들고 겹쳐가는 과정이 반복된다. 닥종이 인형은 표정이 80%를 차지한다. 한지에 자연풀칠까지 하니 관광객들은 2000년은 족히 남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가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규방공예를 하고 있는 최정인(52)씨는 외국계 항공사에서 일하다가 40살부터 전통에 입문했다. 조선후기 사랑방 문화에서 유행했던 책가도(冊架圖)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자신만의 책가도를 만들고 그 안에 이야기를 담는 것이다. 아들이 어버이날 선물한 손수건이나 어렵게 구한 공예품 등이 놓여 21세기 오늘날의 책가도를 구성한다.

▲ 규방공예 최정인 씨
최씨는 “과거 항공사에 일할 때 외국친구들이 한국의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많이 속상했다. 한국의 문화는 알면 알수록 매력적이고 재해석할 가치와 기법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관광객이 오면 전통문양 책갈피에 부채장식에 쓰였던 매듭을 달아보는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중요무형문화재 금박장인 김덕환 옹의 집안은 5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그의 아들 김기호씨는 삼성전자에서 로봇을 설계하고 조립하는 연구자였지만 97년 대를 잇기 위해 사표를 던졌다. 김덕환 옹은 “조선시대 풀을 재현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김기호 씨는 “금박은 오감을 다 써야 한다.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랐고, 몸으로 익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몸에 뱄다. 생활이고 일상이었기 때문에 이 일을 택했다”고 말했다.

▲ 중요무형문화재 금박장 김덕환
그러면서 그는 “금박풀은 나노미터 두께로까지 가야한다. 조선시대 수준이 그 정도로 높았다. 사실 로봇 만드는 것과 금박을 하는 것 어찌 보면 비슷한 일이다”고 덧붙였다. 금박은 예로부터 영원불변, 아름다움, 권위의 상징이었다. 고대로부터 금박 기술을 의복에 적용했고, 현대의 금박옷은 조선왕실의 예복으로부터 시작됐다. 왕실이 사라진 오늘날에는 결혼, 회갑 등의 경사에 금박옷을 입는다.

김도래(40)씨는 단청물감을 최근 개발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 단청물감이 국내에 없어 일본에서 고가로 수입하기 일쑤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숭례문을 복원할 때 우리나라 물감이 없어서 일본 물감을 수입해서 썼다. 김씨는 “불교미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재료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다. 물감회사와 ‘알파’와 오랜 작업 끝에 개발했다. 14가지 색을 만들었고, 이 물감은 단청뿐만 아니라 벽화 등 외부작업에 모두 쓰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불교미술화가 김도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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