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산 공동체, 꿈꾸면 이뤄질까요?
상태바
구룡산 공동체, 꿈꾸면 이뤄질까요?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3.06.20 13: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심 속 천혜의 자연환경…먹이사슬을 지켜라
맹꽁이·두꺼비쌀, 숲유치원 등 아이디어 ‘팡팡’
청주에는 우암산, 부모산만 있는 게 아니다. 두꺼비마을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산남동과 성화·개신·죽림동의 경계를 나누는 구룡산(해발 164m)도 있다. 토착민들이 구렁봉이라고도 부르는 구룡산은 포획금지종인 두꺼비의 집단 서식지이면서 환경부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인 맹꽁이의 생태천국이기도 하다.

농촌지역에서는 ‘두꺼비, 맹꽁이가 무어 그리 대수냐’고 얘기할 수도 있다. 10년 전만 해도 구룡산 일대가 말 그대로 농촌이었다. 청주시 행정구역에 포함돼 있을 뿐,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규모 택지개발이 이뤄지면서 구룡산 생태계가 이제는 아파트에 포위되고 말았다. 개발의 삽날은 산자락을 끊임없이 할퀴고 있다.

이대로라면 구룡산이 지도에서 사라지고 지명만 남을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룡산 협동조합’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은 상상의 공동체다. 그러나 꿈꾸지 않으면 이뤄지지도 않는다. 그들의 꿈속으로 들어가 봤다.

▲ 구룡산은 산 전체가 양서류의 생태보고다. 택지개발로 고립된 방죽보다 친환경논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사진은 구룡산에 만든 대체 습지. 두꺼비 올챙이들이 보인다. / 육성준 기자 eyeman@cbinews.co.kr

지금은 도심 속 생태공원으로 변한 산남동 원흥방죽에서 두꺼비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환경단체의 투쟁으로 산란지인 방죽을 지킬 수 있었지만 터널이 뚫리고 도로가 나면서 산란과 회귀의 길목에서 대규모 로드킬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꺼비들에게 보이지 않는 안내자가 있는 것일까? 2006년쯤부터 원흥방죽으로 내려오던 두꺼비들이 반대편 산록의 농촌방죽(성화동)으로 산란처를 옮기기 시작했다.

신경아 (사)두꺼비친구들 사무부처장은 “2008,2009년이 절정이었다. 당시에는 100쌍 이상이 알을 낳으러 농촌방죽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50만 마리가 넘는 새끼두꺼비들이 부화에 성공해 산으로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신 부처장은 그러나 “두꺼비들이 오르내리던 농수로가 자연형에서 콘크리트박스로 바뀌면서 사람들이 일일이 올려주거나 경사로를 설치해야하는 상황이 됐다. 올 들어서는 불과 30쌍 정도만 관찰됐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15만 마리 정도의 두꺼비가 부화에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화에 성공한 두꺼비가 성체가 되어 산란을 위해 고향에 도착할 확률은 0.03% 미만이라고 한다. 200~300마리 정도가 종족보존에 기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처참한 확률이다. 그러나 여기에 먹이사슬의 비밀이 있다. 곤충 등을 잡아먹는 양서류는 먹이사슬의 아래단계에 속한다. 따라서 이들이 생태계를 부양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박완희 (사)두꺼비친구들 사무처장은 “새끼두꺼비는 새들이 먹는다. 두꺼비성체는 유혈목이(꽃뱀)이나 능구렁이, 너구리 등의 먹잇감이다. 이들 위에는 맹금류가 있다. 구룡산 일대에 솔부엉이나 소리부엉이, 소쩍새, 황조롱이 등이 대거 서식하는 것은 양서류 개체가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같은 먹이사슬과 상관없는 로드킬이다. 농촌방죽 위로 축사가 들어서면서 농수로의 수질이 오염되는 것도 문제지만 농로에서도 산으로 올라가는 새끼두꺼비가 차바퀴에 몰살당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친환경 논, 생태계 최고의 습지

구룡산 협동조합은 삶과 환경이 어우러진 마을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상이다. 근본주의적 환경론으로 무조건 개발을 저지하는 게 아니라 친환경농업과 수익창출이라는 버팀목을 통해 지속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구룡산 일대에 논이 남아있는 곳은 이제 성화동 농촌방죽 주변과 미평동 미평중고(소년원) 일대가 전부다.

신경아 부처장은 “친환경적으로 경작되는 논은 양서류 생태계의 보고다. 두꺼비나 맹꽁이가 위험한 산란여행을 하지 않고도 종을 번식할 수 있는 논을 보존하는 것이 최상의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구룡산 협동조합은 이같은 생태농업을 기반으로 한다. 이 일대에서 생산한 친환경 농산물을 산남동, 성화·개신·죽림동이 소비하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박완희 처장은 “농촌방죽 일대의 다랭이논(계단식논)에서 생산하는 친환경쌀을 인근 주민들이 계약재배로 구매하고, 농사체험 등의 프로그램도 진행할 수 있다. 브랜드는 맹꽁이쌀이나 두꺼비쌀이 될 것이다. 산에는 매실 등 유실수를 심어 효소 등 2차 생산품도 만들 수 있다”고 귀띔했다.

예산문제는 친환경농업에 대한 지원금이나 시민들이 땅 한 평 사기 운동을 통해 내셔널트러스트 방식으로 일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구룡산 협동조합은 산남동과 개신·성화·죽림동이 협력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도시에서 마을단위의 공동체운동을 네트워크화 하는 좋은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은 꿈꾸는 단계지만 상상만 해도 즐거운 꿈이다.

“비만 오면 맹꽁이가 합창을 합니다”
성화·개신·죽림동 원농촌 마을 김교성 통장

“오늘(18일) 아침에 장마가 시작되니 맹꽁이들이 합창을 합니다.” 농촌방죽이 있는 원농촌마을의 김교성(57) 통장은 37년 전에 이 마을 주민이 됐다. 태어나서 자란 곳은 현재 같은 행정동으로 묶인 죽림동(청원군 남일면 죽림리)이다.

▲ 성화동 원농촌에는 농촌방죽과 다랭이논들이 남아있다. 이곳은 두꺼비와 함께 맹꽁이들의 집단 서식 및 산란지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은 원농촌 김교성 통장.

김 통장이 설명하는 원농촌의 지명유래가 재미있다. “오래 전부터 성화라는 지명이 있었으나 과거 군수(郡守)이름이 성화여서 농촌동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다시 성화동이라는 지명을 찾았다. 그래서 성화동 중에 아직도 농사를 짓는 이곳을 원농촌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 청주시장이나 청원군수 중에 이름에 ‘성화’가 들어가는 인물은 없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혹은 그 이전의 군수 중에 그런 인물이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1999년 충북대인문학연구소가 펴낸 <청주지명유래>에 따르면 농촌과 성화라는 지명이 혼재되다가 1963년 농촌동이 됐고 1990년 성화동으로 개명됐다. 이 책은 또 “성화(聖化)라는 지명이 순천 박씨 족보에도 나올 만큼 오래됐다”고 밝히고 있다.

김 통장은 “지금도 맹꽁이가 많지만 예전에는 말도 못했다”면서 “옛날 같이 농약을 많이 치지 않는다. 그래서 맹꽁이가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통장은 구룡산 공동체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노인들이 그런 것을 이해할지는 모르겠지만 묶어서 같이 상품화하고 판로와 가격이 보장된다면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통장이 처음 이사왔을 때 원농촌에는 50가구 가까이가 살았다. 택지개발로 10집이 편입돼 헐리고 일부가 떠나 현재는 30호 정도가 살고 있다. 이 마을의 논은 6000평 정도다. 또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모두 이 마을 주민들로 10집 정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