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상여금은 통상임금’ 판결 이후 소송 증가
청주지법, 대법판결이후 잇따라 노동자들 손들어 줘

노동자와 고용자 사이에 1년에 한번은 꼭 겪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노동자의 월급을 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쪽에선 한 푼이라도 더 받아야 하고 한쪽에선 한 푼이라도 덜 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른바 뺏고 뺏기는 전쟁이다.

▲ OECD 국가중 우리나라는 두 번째로 긴 시간 일을 하고 있다. 연장근로수당을 산정하는 통상임금에 상여금 까지 포함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옴에 따라 노동자들이 받아야 할 임금이 대폭상승됐다.

이 전쟁 같은  결과에 따라 ‘웃는 자’와 ‘우는 자’가 갈리고 사회학자들은 갖가지 분석을 내놓는다. 요즘 ‘경제민주화’란 용어가 대세다. 이 거창한 담론이 알고 보면 간단하다. 한 사회에서 그 해에 생산된 총 부가가치 중에서 임금노동자들이 차지한 비율, 즉 ‘소득분배율’이라 지칭되는 이 것이 사회학자들 사이엔 경제적 평등지표로 쓰인다.

임금을 둘러 싼 이런 움직임은 사무 관리직 연봉노동자들의 협상처럼 ‘1;1’ 협상으로 진행되기도 하고 노동조합이 있는 곳에선 사업주와 노동조합의 집단적 협상에 의해 결정된다. 사람들은 후자의 협상 형태를 ‘임금 협상’이라 부르고,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협상을 유리하게 진행하기 위한 각종 단체 행동을 ‘임금인상투쟁’이라 호칭한다.

노동조합은 이 협상을 유리하게 끌기 위해 지난해 물가 상승률을 분석하고 회사의 경영실적을 분석한다. 물론 결전을 대비해 노동자들의 단결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 각종 행사를 준비한다.

물론 사업주도 마찬가지다. 협상을 유리하기 끌기 위해 유리한 협상 자료를 마련하고 가족같이 화합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여러 행사를 마련한다. 이점에서 노사는 동병상련의 동일한 처지다.

그러나 노사 양측이 이견을 좁지 못하고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면 ‘파업’이라는 긴장감 있는 형태로 전개된다. 하지만 이것조차 노동조합법에서 보장된 협상의 수단에 불과 할 뿐이다.

우리사회에서는 이런 임금 인상 투쟁이 5월과 6월에 걸쳐 진행되면서 한때 ‘춘투’(春投)라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올 임금협상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임금협상보다 더 큰 카드가 등장한 것인데 이른바 ‘통상임금’변수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6조는 통상임금을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근로 또는 총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한 시간급금액·일급금액·주급금액·월급금액 또는 도급금액”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통상임금은 해고예고수당과 유급휴일임금, 연장·야간·휴일 가산임금, 연차유급휴가수당, 출산전후휴가수당을 산정하는 기초가 되고, 퇴직금 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서구 유럽처럼 임금체계가 단순하지 않고 OECD 국가중 두 번째로 많은 장시간 노동국가인 우리사회에서 과연 어디까지를 통상임금으로 보느냐에 따라 월급봉투의 두께는 확 달라진다.

통상임금 범위를 넓게 본 대법원 판결

2012년 3월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가 대구 시내버스회사인 금아리무진 소속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분기별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매달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에 국한해 통상 임금으로 봤던 기존 대법원 판결보다도 더 넓게 본 것이다.

이처럼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 여부는 법조계에서는 이미 한풀 꺾인 쟁점이다. 대법원은 90년대 중반부터 상여금을 ‘노동의 대가’인 임금으로 판단했다. 법조 용어로  "상여금은 사용자가 복지적·시혜적으로 주는 급여가 아니라, 노동의 대가"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위에 언급한 대법원의 ‘금아리무진’ 관련 판결도 기존 판결의 연장선에 있다. ‘금아리무진’은 노동자의 재직기간에 따라 성과급을 4단계로 나눠 분기별로 지급했는데 법원은 각각의 등급에 맞춰 해당 인원에게 지급된 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봤다. 통상임금의 요건인 ‘일률성’의 범위를 넓게 인정한 것이다.

반면 고용노동부는 법규가 아닌 예규에 불과한  ‘통상임금 산정지침’을 통해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매달 지급되는 급여’만 ‘정기성’이 있다는 입장이다. 법원이 2~3개월마다 또는 6개월에 한 번씩 지급되는 상여금에 대해서도 정기성을 인정하는 반면 노동부는 이를 부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노동부의 지침이 법적 강제성이 없다는 것을 판결로 명확히 했다. 1997년에  “통상임금을 둘러싸고 다툼이 있는 경우 재판절차를 통해 확정해야 한다”며 “행정기관의 유권해석에 따르도록 함으로써 성질상 통상임금에 포함돼야 할 수당이 통상임금에서 제외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이는 근로기준법에 정한 기준에 달하지 못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것으로 무효”라고 판결한 바 있다.

쏟아지는 소송, 희비 갈린 노사

지난해 청주시내 버스회사 두곳에 재직하는 노동자 3명과 50여명이 회사를 상대로 통상임금이 잘 못 산정돼 임금을 받지 못했다며 청주지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이 제기된 지 9개월재인 지난 6월 5일 재판부는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A 회사를 상대로 한 3명에게는 각 2700만원, 1700만원,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B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50여명의 노동자에 대해서는 2억5000여만원의 미지급 임금을 지불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처럼 도내에서는 현재 10여건의 통상임금과 관련된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줬다. 소송을 통하지 않고 노사 협상을 통해 이 문제를 접근하고 있는 곳도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대전충북지부는 도내 소속 회사 5, 6곳을 상대로 대법원 판결에 따라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며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임금 협상에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소송을 준비하는 곳도 여러 곳이다. 청주공단 대기업 사업장인 C 노조도 법률 검토를 마치고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인 만큼 전체 소송가액도 최소 몇 백억원 대 이상 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왜곡된 임금체계를 꼽았다. 서구 사회처럼 단순한 임금체계가 아니라 고정급 이외에 이름도 생소한 명목의 각종 수당들이 생긴 기형적인 임금체계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광복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는 “임금은 단순할수록 좋다. 임금을 적게 주기 위해 수당들이 생긴 것이 원인이다. 이 참에 임금체계가 개편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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