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 사회문화부 차장

순수학문이 대학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다. 어문관련학과들이 폐과의 광풍을 피해가지 못했을 때만해도 불구경하듯이 쳐다봤다. 국문학과마저 한국어문학과로 바뀌자 사람들은 경각심을 가졌다. 하지만 이제 사회학과 같은 전통적인 학과들도 위기에 놓여있다. 세상은 인문학 열풍이 불었다지만 지금 대학에서는 취업률 데이터가 나오지 않으면 ‘꼴찌’신세다. 일등부터 꼴찌까지 그렇게 대학은 줄 세우기를 하고 있었다.

최근 청주대는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회화학과를 폐지한다고 발표했다가 동문과 재학생들의 반발로 일단 한발 물러섰다. 살아남기 위해 학생들은 대자보를 붙이고, 전시장에 있던 작품을 캔버스로 들고 나와 밤샘 시위를 벌였다.

만나주지 않는 총장을 만나기 위해 핸드폰 위치추적을 통해 입구를 봉쇄하고, 한 여학생은 총장의 차 본네트에 올라가는 등 드라마틱한 사건이 연일 벌어졌다. 시위기간동안 학교와 학생들은 수많은 줄다리기와 숨바꼭질을 벌였고 결국 학생들이 상당공원까지 나와 시위를 벌이자 대학은 과 이름을 바꾸는 것으로 타협했다. 그렇게 눈물겨운 싸움의 결과로 탄생한 것이 ‘비주얼아트’학과다.

서원대 미술학과가 지난해 ‘융합아트학과’로 이름을 바꾸고 미술학과와 뷰티학과를 통합해 살아남기에 성공한 것을 벤치마킹한 것일까. 융합아트와 비주얼아트, 그 의미가 참 심오하다. 순수학문은 끊임없이 ‘응용’이란 말을 붙이고 조금이라도 취업에 가까운 모양새를 취한다. ‘융합’도 대학사회에서 한창 뜨고 있는 단어 중에 하나다.

전국의 회화학과가 다 사라지고 조만간 응용미술학과들만이 넘쳐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순수미술 대신에 디자인을 비롯한 응용미술을 한다면 이 또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맞지 않을 것이다. 순수학문을 다 없애다 보면 이제 순수학문을 배우기 위해서는 더 치열하게 공부해야 할지도 모른다. 역으로 보면 대학은 그렇게 구조조정을 해나가고 있다고 봐야 하나.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대학의 속사정도 참 안타깝다. 취업률만을 최고의 가치로 따지는 교육부는 대학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선포를 한지는 오래지만, 구체적인 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 그것도 정권 바뀔 때마다 수장이 바뀔 때마다 변화의 폭이 크다.

교육부 눈치를 봐야 하는 대학, 대학의 눈치를 봐야 하는 교수, 교수의 눈치를 봐야 하는 학생들. 한 교수는 취업이 안 되는 것은 결국 사회구조 탓인데, 왜 모든 걸 대학에서 해결해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1년 안에 4대보험이 되는 일자리를 많이 확보하는 것, 그것이 지금 대학의 최고경쟁력이다. 1년 후, 아니 10년 후 학생들의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순수학문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응용하고, 융합만 하면 순수학문은 누가 하나. 응용과 융합은 좀 천천히 나중에 하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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