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택 개발에 맞서 땅 사기 운동 이어 협동조합 모색
청주시 갈등조정협의회 “절반만 개발하라” 중재안 제시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에서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공존의 역사가 써지고 있다. 벌써 10년째다. 2003년 대규모 아파트 개발에 맞서 두꺼비들의 집단 산란지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 벌어졌고, 결국 아파트단지가 들어섰으나 원흥이방죽 보존, 생태통로 확보, 두꺼비생태공원과 문화관 건립 등의 성과를 얻어냈다.

근본주의 환경론자들에게는 흡족할 수 없는 결과일 수 있으나 적어도 “사람보다 두꺼비가 중요하냐”는 식의 밀어붙이기식 개발에는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산남동은 ‘두꺼비마을’이라는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

▲ 청주 산남동은 주민운동을 통해 개발과 보전이 공전하는 마을이다. 산남동 주민들은 최근, 2009년 땅 1평 사기 운동을 통해 매입한 포도밭을 논으로 만들어 모내기를 했다. 논은 두꺼비의 새로운 산란장이기도 하다.

보전과 개발이라는 명제는 끝없이 충돌한다. 이번에는 구룡산에 전원주택단지를 조성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주민들이 들고 일어섰다. 지주 입장에서는 “내 땅에 내가 집을 짓는다는데 웬 난리냐”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산남동에서는 이미 법과 함께 가치도 존중돼야한다는 선례가 우뚝 서있다.

2012년 9월부터 난개발 논란이 불거진 곳은 청주지방법원 뒤 산22-132번지 일원이다. 지난해 10월 1만4005m²에 대한 문화재 지표조사가 완료됐고, 이 과정에서 벌목작업이 이뤄졌다. 전원주택단지는 전체 부지 가운데 7310m²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었다. 시행사인 L개발은 산림법 상 현재 자연녹지인 이곳을 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근린생활시설로 도시계획심의위원회를 통과한 뒤 다시 주거지역으로 변경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심의가 유보됐다.

산남동은 물론이고 인근 개신·성화동, 분평동 등의 아파트 입주자대표 36명이 대책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시민단체, 마을단체 등이 총집결한 ‘구룡산 살리기 시민대책위원회’가 반대운동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대책위는 개발이 허가된다면 생태통로 3개 가운데 1개가 사라진다는 점과 전원주택단지가 구룡산 난개발을 부추긴다는 점을 들어 공사저지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로 맞섰다.

개발면적, 이주 이해관계 엇갈려

결국 청주시가 갈등조정협의회를 구성했고 각계 전문가, 공무원, 지주, 대책위 등이 참여해 최근까지 3차례 협의를 진행했다. 협의회가 내놓은 중재안은 전체 부지 가운데 절반 정도만 개발하라는 것이다. 청주시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아직 갈등조정이 끝난 게 아니라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전체 부지 가운데 절반 정도를 개발하는 선에서 의견이 좁혀지고 있다. 그러나 개발면적과 관련해 미묘한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에 지주나 사업자가 어떤 방법으로 나올지는 예측할 수 없다. 자칫하면 행정권 남용으로 행정소송으로 갈 수도 있다”고 밝혔다.

시행사인 L개발의 김 모 대표도 “지주 12명 가운데는 실 거주 목적도 있고 땅으로 매각하려는 사람도 있다. 자연녹지를 주거용지로 변경하더라도 현재 평당 100만원 선인 땅값은 1.5배 정도 오를 것이다. 그러나 도로를 내고 단을 쌓는데 드는 비용을 고려하면 그 돈이 그 돈이다. 반만 개발해서는 맞지 않는다. 전체 개발면적이 7500㎡는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의 말대로라면 결국 청주시와 사업자, 지주들이 절반 정도를 개발하는 선에서 절충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해 “사실 법적으로 따지자면 사유재산권에 대한 침해다. 다만 공원녹지와 연접해 개발에서 제척될 가능성이 높은 대규모 필지의 소유자가 서울사람이다. 나머지 11명의 지주는 청주사람이거나 지역에 연고가 있다. 그래서 얘기가 진행되는 것이다. 다만 제척되는 쪽의 서울 지주가 청주에 내려와 난리를 친 적이 있다. 그래서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귀띔했다.

김 대표는 또 “개발구역을 획정하는 과정에서 청주시가 사유지 1640㎡를 받고 공원부지 1500㎡정도를 받는 토지교환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시가 확보하게 되는 완충녹지는 추가 개발이 이뤄질 수 있는 필지의 진입로에 해당되기 때문에 이제 추가 개발은 불가능하다고 봐도 된다. 개발면적만 잘 협의할 수 있다면 구룡산의 생태를 보존하는 것이 지주들에게도 불리할 게 없다”고 덧붙였다.


전원주택 개발지 땅값 40억원

시민대책위는 전체개발면적을 3분의 1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가장 효과적인 것은 청주시가 나서서 개발을 막는 것이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녹지지역이나 계획관리 지역으로서 수목이 집단적으로 자라고 있거나 조수류 등이 집단적으로 서식하고 있는 지역 △우량 농지 등으로 보전할 필요한 있는 지역 △개발행위로 인하여 주변의 환경·경관·미관·문화재 등이 크게 오염되거나 손상될 우려가 있는 지역은 자치단체장이 개발을 제한할 수 있다. 대책위는 그러나 청주시장이 이같은 용단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시민대책위는 개발지역을 매입하는 내셔널트러스트운동(땅 1평 사기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내셔널트러스트는 보존가치가 높은 자연경관이나 문화유산을 기부를 통해 매입하거나 기증받는 운동이다. 산남동 주민들은 한국내셔널트러스트와 협력해 2009년 5월 원흥이방죽 위 포도밭 1009㎡를 매입한 바 있다. 그러나 이 포도밭은 공원지역이라 땅값이 평당 20만원 정도였고 면적도 크지 않은데다 지주가 취지에 공감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박완희 (사)두꺼비친구들 사무국장은 “이번에 개발이 추진되는 지역의 전체 시세는 40억원에 이르기 때문에 해당지역 전체를 매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다만 1억원을 모으는 선언적인 운동을 통해 청주시 등이 토지매입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시민대책위는 현재까지 약 4000만원을 정도를 모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참에 구룡산 전체를 공동체 공간으로 만들자는 주장도 있다. 손현준 시민대책위 공동대표는 “기부방식으로 1만원씩 모아 구룡산을 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출자형태로 목돈을 모아 ‘도시 숲 협동조합’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출자자는 일종의 투자를 하는 것이다. 조합원 탈퇴 시 보상방법만 결정돼 있으면 노인공원 등 공익사업을 운영할 수 있다. 공공영역인 만큼 청주시가 출자한다면 금상첨화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완희 사무국장은 같은 맥락에서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박 사무국장은 “종합적인 구룡산 보존방안이 필요하다. 논이나 연못, 방죽 같은 산란공간이 필요하다. 지난번에 매입한 포도밭도 올해 논으로 만들어 모내기를 했다. 현재 성화동 농촌방죽 등 일부지역에 논이 남아있는 만큼 구룡산협동조합이 계약재배나 농산물 직거래에 나선다면 새로운 공동체운동의 전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