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의회 기립·거수 회의규칙 거스르고 비밀투표
전자투표 도입에는 “1년에 표결 몇 번이나 한다고”

청주시의회는 5월28일 열린 321회 임시회 3차 본회의에서 집행부에 의해 재상정된 청주테크노폴리스 조성사업 의무부담 변경동의안을 가결 처리했다. 지난 임시회에서 부결된 안을 되살린 것도 그렇지만 이날 임시회에서도 격렬한 논의과정을 거쳐야했다.

박상인(새누리, 가경·강서1) 의원은 지난 4월19일 320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테크노폴리스사업 의무부담 변경동의안이 원안 의결되면 즉시 의원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배수진을 쳐 한범덕 청주시장에게 일격을 날렸다. 결과는 찬성 11표, 반대 12표로 부결. 새누리당 의원들이 모두 반대한 것은 물론이고, 일부 민주당 의원들도 반대에 가세한 것이어서 한 시장을 곤혹스럽게 했다.

▲ 청주시의회 회의규칙은 거수나 기립으로 가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행은 무기명이다. 자신의 속내가 공개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회와 광역시의회, 수도권 지방의회가 다수 도입한 전자투표는 투표의중이 명백히 드러난다는 점에서 도입을 꺼리고 있다.

박 의원은 321회 임시회 본회의에서도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반대논리를 설파했다. 박 의원은 “청주테크노폴리스사업은 반드시 실행돼야 하지만 시민들에게 보증 채무를 떠안기는 이러한 사업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 안이 의회에서 가결되는 순간 청주시의회는 불법한 기관이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반해 윤송현(무소속, 용암1·2·영운)은 “박상인 의원은 산업단지가 아니라며 산업용지는 36%밖에 안 되는데 아파트 단지를 시공사에 편의를 주기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과 다른 억지이며 이는 사업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맞섰다.

반대토론 없으면 표결도 없어

그러나 이날 가결은 표결 없이 이뤄졌다. 정식으로 토론과 반대토론이 이어졌던 지난 320회와 달리 박상인 의원의 주장도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해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토론이 없을 경우에는 표결에 부치지 않는 것이 청주시의회의 회의규칙이다.

논의과정은 격렬했다지만 의사진행발언이었으므로 표결에 부치지 않는다? 왠지 ‘쇼(Show)’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표결까지 간다고 해도 청주시의회는 비공개 무기명 투표로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는 회의규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의회의 표결은 공개가 원칙이기 때문이다. 물론 의장이 의원들에게 의사결정방식에 대해 묻는 절차를 거치기는 한다.

실제로 청주시의회 회의규칙 41조는 ①항에서 ‘표결할 때에는 의장이 의원으로 하여금 기립 또는 거수하게 하여 가부를 결정한다’ ②항에서 ‘의장의 제의 또는 의원의 동의로 본회의의 의결이 있을 때에는 기명 또는 무기명투표로 표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무기명 투표는 각종 선거나 의원의 징계나 제명 등 특수한 경우에만 필요하다고 보는 게 맞다.

윤송현 의원은 “의장이 표결 전에 ‘무기명투표로 하겠습니다. 이의 있습니까?’라고 묻는 게 관행이다. 회의규칙을 존중한다면 원칙이 기립이나 거수 등 공개인데 거꾸로 물어봐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윤 의원은 또 “정책에 관한 것은 무기명이 적절하지 않다. 아무리 시의원이라지만 주민들이 뽑아준 선량이다. 이참에 전자투표 도입을 신중하게 검토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청주시의회는 왜 의회규칙에 반하는 무기명투표를 고집하는 것일까? 임기중 의장은 “의원들이 무기명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임 의장은 “의원들은 정책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이 공개되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한다”고 덧붙였다.

연철흠 전 의장도 “7대 때부터 이 문제를 가지고 의원들과 의견을 나눴지만 개선되지 않는다. ‘무기명투표로 하겠다’며 찬반을 묻는 것은 그때부터 관행이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정당공천으로 지방의원들이 정당에 예속돼 있는 상황에서 “그래도 무기명투표를 해야만 소신 있게 표를 던질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책임정치 실종, 비판론 대두

찬반토론이 없으면 표결에 부치지 않고, 표결로 가도 대부분 무기명투표인 상황에서 전자투표 도입에 대해서는 의원들도, 의회 사무국도 부정적이다. 강길호 청주시의회 사무국 의사담당은 “표결까지 가는 경우가 드물다.

올 들어서 표결에 부친 것은 지난 임시회 때 테크노폴리스 의무부담 변경동의안이 처음이었다. 1년에 한두 번 표결하자고 의석표결기(전자투표)를 도입하는 것은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강 담당은 “주로 수도권 의회들이 전자투표를 도입했다. 적게는 2억원에서 10억원까지 예산이 필요하다. 청주시의회의 경우에는 의원이 38명으로 늘어나는 내년 통합 이후에 다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달리 NGO에서는 3,4년 전부터 책임정치를 구현하기 위해서 전자투표를 도입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청주시의회가 회의록에 표결결과만 기록하고 찬·반 의원들이 이름을 적지 않는 비기록 표결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의원들의 책임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송재봉 충북NGO센터장은 “현행 상임위 속기방식은 부족한 점이 적지 않다. 기록표결제는 의원들의 책임정치 구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전자투표 도입을 서둘러야한다”고 강조했다.

전자투표는 각 의석에 설치된 전자투표장치를 통해 찬성과 반대의사를 표시하면 그 결과가 전광판에 표시되는 표결방법이다. 국회는 2000년 16대부터 표결 원칙이 전자투표로 바뀌었다. 따라서 일반적인 표결원칙이 전자투표다. 다만 투표기 고장, 의장의 제의 또는 의원의 동의로 본회의의 의결이 있거나 재적의원 5분의 1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기명, 호명 또는 무기명투표로 표결한다.

▲ 전주시의회 관계자는 전자투표의 편리성과 투명성에 대해 자랑했다. 사진은 2010년 6월29일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국회 전자투표 결과.

회의진행 신속, 투표과정 투명
전주시의회 “전자투표 도입하길 잘했다”

전주시의회는 2007년에 전자투표를 도입했다. 단말기와 모니터, 시스템 구축에 들어간 비용은 1억 7350만원이다.

전주시의회 관계자는 “회의진행이 신속해졌고 투표과정도 투명해졌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이제는 다수 의회가 전자투표로 가는 추세다. 이왕이면 선진기법을 도입하는 게 맞지 않냐?”고 되물었다.

이 관계자는 “거수로 할 경우 손을 들었는지 정확히 판단키 어려운 경우가 있고 의원이 먼저 퇴장할 경우 논란이 되는 경우도 있다. 또 무기명으로 하면 투표함 설치 등 절차가 번거롭고 불편하다”고 지적했다.

예산대비 효용성 지적에 대해서도 “회기에 표결을 하는 경우는 2,3건에 불과한 게 맞다. 그러나 의안이나 심사보고서 등을 일일이 책자로 만들어야 하는 것도 예산과 행정력 낭비다. 단순히 표결만 처리하는 게 아니라 이 모든 것을 단말기 시스템으로 처리한다”고 귀띔했다.

전주시의회 의원은 34명으로 현재 청주시의회보다 8명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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