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빈곤, 폐지 줍는 노인 급증했지만 가격폭락에 직격탄
자영업 실패 후 돈 된단 말에 인생역전 도전…현실은 버거워


폐지 줍는 노인 동행취재기
오후 2시, 최선옥(83, 가명) 할머니의 손수레는 가벼웠다. 골판지 박스 몇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하지만 최 할머니가 끄는 손수레는 위태로워 보였다. 손수레가 할머니를 지탱해주는 건지 할머니가 수레를 끄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할머니의 허리는 구부러져 있었고 몸은 야위었다. 차선을 역주행 하는 손수레 때문에 마주 보고 달려오던 차량은 급정거를 반복했고  2차선 도로의 교통 흐름은 엉키기 일쑤였다. 

가경동 우체국 인근 주택에 전세로 거주하는 최 할머니는 한 달에 20일 정도는 손수레를 끌고 거리로 나선다. 비가 오거나 몸만 아프지 않으면 무조건 나온다. 아침 여섯시 정도에 시작해 가경동과 복대동 일대를 누빈다. 오후 시간대에 다시 돌고 밤 8시 이후에도 한 차례 더 돈다.

최 할머니는 이렇게 해야만 손수레를 폐지로 가득 채운다. 모아둔 종이를 가득 채워 고물상에 가서 정산을 한다. 이날 나온 폐지의 무게는 85kg. 1k당 70원이니 정확히 5950원이다. 사실 최 할머니의 폐지는 오늘 하루에 수집한 것이 아니라 어제 것 까지 포함한 것이다.  고물상 주인 심 씨는 최 할머니에게 1000원 지폐 6장을 냉커피와 함께 건넸다.

최 할머니에겐 아들이 셋 있다. 큰 아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둘 째는 연락도 잘 되지 않는다. 51살인 셋째와 다리가 아파 거동이 불편한 87세의 남편과 함께 4500만원 하는 투룸에 전세로 살고 있다. 셋째 아들은 미혼이다. 그 나이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은 것도 야속하지만 일 할 생각이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최 할머니의 남편인 연 할아버지는 다리가 아프다. 2년전 까지는 같이 폐지를 모으러 다녔다. 폐지를 줍자고 한 것도 남편이었다. 심심하니까 폐지를 주워 막걸리나 받아 먹자고 한 지 벌서 10년이 지났다. 최 할머니 부부는 원래 증평 도안에 살았다. 청주로 나온 지 12년 됐다. 이들 부부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아니다. 도안에 있는 종친 땅에 공동 소유 명의로 남편 이름이 등재 돼 있는 것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 할머니는 현재 살고 있는 집주인이 야속하다. 마당 한 켠에 폐지를 쌓아 놓게 해주면 좋으련만 집 주인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담벼락에 포장을 깔아 폐지와 고철을 놓고 덮개로 덮어 놓은 상태에서 끈으로 묶어 보지만 자꾸 없어진다.

할머니에겐 수도세와 전기세도 부담이다. 한 달 열심히 폐지를 모아 현재 벌수 있는 돈은 고작 10만원 내외. 이 돈으로 수도세와 전기세를 충당한다.

봉명동에 거주하는 박입분(79세) 할머니. 손수레에 가득 담긴 폐지를 싣고 봉명동에서 이곳 가경동까지 왔다.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20분이다. 무조건 끌고 오는 것은 아니다. 중간에 폐지를 발견하면 수레에 싣는다. 박 할머니가 이렇게 먼 곳 까지 오는 이유는 단 하나. 이곳 고물상 주인은 다른 고물상보다 kg당 10원에서 20원을 더 쳐준다. 그래봤자 800원에서 1600원을 더 받지만 박 할머니에겐 작은 액수가 아니다. 하루 한나절 돌아다녀야 모을 수 있는 양이다.

박 할머니가 폐지 판매를 위해 찾아 온 ‘○○자원’. 말이 자원이지 주택유휴지 50평에 공간에 울타리를 치고 컨테이너 박스 1개와 계근대가 시설의 전부다.  ‘○○자원’을 운영하는 심△△사장(51세). 심 사장은 요즘 고심중이다. 아무래도 이 일을 부인에게 맡기고 다른 일을 찾아 봐야겠다고 생각중이다.
2009년 심 사장이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았다. 퇴직금으로 야심차게 삼겹살 집에 도전했다. 하지만 채 1년을 버티지 못했다. 권리금과 인테리어비용 등 그동안 모아두었던 재산만 탕진했다. 1톤 트럭 한 대만 있어도 된다는 말에  2011년부터 이 자리에서 고물상을 시작했다.

심 사장의 고물상에 고정적으로 폐지를 납품하는 할머니는 현재 15명. 한 달에 서 너 차례 정도 가져오는 노인 분들은 약 20명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심 사장에게 가져오는 폐지는 한 달에 약 80톤. 심 사장은 폐지를 70원에 구입해  폐지수집상에 1kg당 90원에 넘긴다. 이 가격에는 심 사장의 운송 경비도 포함돼 있다. 박 사장은 폐지 뿐만 아니라 비철 고철, 플라스틱 등 재활용이 가능한 모든 품목은 다 취급한다. 몇 군데 고물이 나오는 곳을 낙찰 받아 보충하지만 박 사장 부부가 한 달 벌어들이는 수익은 채 3백 만원이 되지 않는다.   

고물 시장 살펴보니 ‘양극화 뚜렷’
대형아파트 세대당 월3000원, 임대아파트 300원
폐지 줍는 노인 1천명 추산, 고물상은 114 곳

고물 시장은 수집인 부터 소상, 중상, 대상으로 연결된 작은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고물상 생태계는 자연생태계와는 달랐다. 먹이사슬 중심으로 구성된 자연생태계와는 달리 고물상 생태계는 협업과 분업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유통구조를 매개로 협업과 분업이 이뤄지지만 ‘갑을 관계’라기 보다는 공생에 가까운 구조다.  고물상 생태계의 첫 출발은 폐지를 수거하는 노인과 같은 1차 수집인부터 시작된다. 리어카와 같은 수레를 이용하거나 유모차, 자전거 경운기를 운반수단으로 하는데 1톤 소형 트럭을 이용해 전업으로 나선이도 있다.

이들은 재활용이 되는 것이면 품목을 가르지 않는다. 이렇게 수집인이 모은 고물은 소상이라 불리는 동네 고물상으로 모인다. 동네 고물상에는 계근대와 운반차량을 보유하고 품목별로 기초적인 분류가 이뤄진다. 소상은 부부끼리 하는 경우가 많고 가끔 사람을 고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1-2명 정도다. 중상부터는 규모가 커지고 품목별로 전문화된다. 2000㎡(600평) 이상의 부지를 갖추고 대형 집게차를 보유한다. 의류, 플라스틱, 고철, 비철 등 품목별로 전문화하고 세부적인 분류작업을 수행해 고물의 부가가치를 높인다.

유통 과정을 거치며 차액이 발생하는데 유통이익이라기 보다는 선별작업을 통해 고물의 상품성을 높여 수익을 만든다. 보통 한 단계를 거치면서 발생하는 차액은 kg 당 10원에서 20원이다. 고물상 생태계의 정점에 있는 대상부터는 본격적인 기업 수준의 규모를 갖춘다.

재활용 시장은 경기에 민감하다. 경기 상황에 따라 수요와 공급 모두 출렁인다. 가격변동폭도 심하다.
1년 6개월 전 250원 까지 치솟은 파지 값이 지금은 채 100원도 되지 않는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의 수입도 반 토막이 됐고 트럭을 이용한 수집상과 소규모 고물상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1톤 트럭 차량 한 대로 1억을 벌었다는 시기도 있었지만 고물 값이 하락한 현재 그 같은 이야기는 전설에 불과하다고 이상환 충북자원재활용협회총무는 전했다.

사회양극화가 심화 되면서 고물 시장에도 양극화가 반영 됐다. 이 총무는 중소평형 아파트에서는 의류가 거의 나오지 않고 33평형 이상인 아파트에서야 일정량 이상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아파트별 재활용품 입찰가격도 차이가 크다. 세대 가구가 많고 대형아파트인 경우 세대별 월 3000원정도 하지만 규모가 작은 임대아파트의 경우 300원 정도에 불과 하다고 전했다.

2011년 청주시는 관내에 있는 고물상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미등록 고물상까지 포함해 114개의 고물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중 2000㎡(600평)이 넘는 중상규모의 고물상은 12곳에 불과했다. 폐지를 줍는 노인은 338명으로 파악됐다. 조사 결과 이들 노인들은 하루  40kg에서 80kgdml 폐지를 수거하고 4000원에서 1만원 사이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주시 청소행정과 김홍석 주무관은 통계에 잡힌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일선 고물상들은 노인들로부터 폐지 등을 수집하는 영세 고물상이 유지되기 위해서 최소로 필요한 인원으로 약 30명을 꼽는다. 동별로 두 세곳 이상인 것을 감안해 보면 청주시에만 최소 60개가 넘는다. 이중 폐지를 줍는 절반 정도만 노인으로 계산해도 폐지 줍는 노인만 1000명에 육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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