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균 취재1팀 기자

지난 일요일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가운데 감물면 소재 박달산 자락에 위치한 백양 마을을 찾았다. 유기농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을 취재할 요량이었다. 귀농 12년차인 언론인 출신 이우성 씨의 자택에 들렀을 때 간단한 막걸리 자리가 마련됐다.

제일 연장자인 신영철(62세) 씨가 말했다. “논에 물이 찬 곳엔 우렁이가 안 들어”. 그러자 이우성 씨가 받았다. “맞아요. 물이 데워진 곳에만 우렁이가 몰려있어요.” 이번엔 김국태(60세) 씨가 거든다. “형님 논은 우렁이가 안 맞아요. 오리로 한번 바꿔보지요.” 다시 신 씨가 말한다. “안 되여. 너구리가 다 잡아먹어. 우리 동네는 너구리 땜에 오리는 안 돼.”

그러자 막내인 이우성 씨가 “참게 농법도 있다는데요. 참게유” 라고 말했다. 그동안 잠자코 있던 이도훈(57세) 씨가 소리를 지른다. “참게 농법? 그거 사기 농법이여.”

이 소리에 모두들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이도훈 씨가 넉살 좋게 말한다. “참게 농법. 그거 논 농사 할려고 하는 게 아니라 참게 팔아먹으려고 하는 참게 양식이지. 그게 무슨 농법이야.”

몇 순배 막걸리 잔이 돌고 장독대를 열어 본다. 장과 효소가 제대로 발효되고 있는지 품평을 해준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어느새 그치고 박달산 자락에서 연무가 피어 내려온다. 힐링이 따로 필요 없다. 고즈넉한 시골동네에서 비에 젖은 수목은 그 연두색이 더욱 진했다. 생명과 자연의 순환, 공동체의 가치와 협동을 이야기하는 하는 이들 농부들은 모두가 철학자였다. 한 마디 한 마디 서두르는 법 없고 타자에 대한 배려가 묻어 있었다.

박달산을 뒤로 한채 달천변을 끼고 청주로 돌아오는 길.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지난 한 주 취재하면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는가.

오창읍 공무원이 민원을 제기했던 주민을 상대로 공무방해와 건조물 침입으로 고소했지만 무혐의로 종결됐다.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 공무원은 “무슨 문제가 있나요. 그쪽에서 우리를 고소했으니까 맞고소 했을 뿐인데요. 그쪽이 고소를 하지 않았으면 우리도 안 했어요.”

분명 국민을 주인으로 섬긴다는 공무원이 할 말은 아니었다.

오송 의료행정타운 관리업무를 맡고 있는 한 공무원은 청원경찰을 ‘하자품’이라고 지칭했다. 인격이 있는 사람을 무인격의 공장생산품으로 전락시키는 말이었다. 기자를 앞에 두고 이럴 정도이니 교육시간에 청원경찰을 개에 비유한 것은 약과일 것이다.

가슴이 답답했다.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지켜 줄 국가기관에 속한 사람들이 너무나 무심하게 말을 내던진다. 이럴 때면 심약한 나는 상처를 받는다.

이런 상처를 받으면서도 한번쯤은 나라로부터 힐링 받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 번 주도 역시다. 나랏님은 상처를 줬고 농부는 힐링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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