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봉환 충주 미덕중 교사

창조가 대세다. 창조는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창조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지고 나지 않는 냄새를 맡을 수 있어야 가능하다. 다른 사람들의 눈과 귀가 가지 않는 곳에 눈을 돌리고 귀를 쫑긋거리고 손을 뻗어야 한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 때 창조는 가능하다. 이미 있는 것을 본뜨거나 본받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창조는 많은 능력과 노력이 요구되는 지난한 작업이다. 이러한 능력은 다른 힘을 빌리지 않고 자연적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능력은 교육을 통해 길러지고 다듬어지며 강해진다. 창조적 힘은 교육의 결과다. 교육을 통해 인간의 창조적 능력은 세상에 드러난다.

물론 전제가 있다. 창조적 힘을 위한 교육은 창조적이어야 한다. 창조적 풍토가 조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는 교육에서 창조적 힘을 기르기란 쉽지 않다. 창조적 교육풍토의 토대는 ‘간섭의 배제’다.

배우는 학생이나 가르치는 교사의 교육활동에 그 어떠한 이유로든 비교육적 제한을 가해서는 안 된다. 간섭은 창조적 힘을 기르기 위해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족쇄다. 정해진 틀 속에서 움직여야 하는 조건에서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고 꿈꾸기란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다. 틀은 능력의 성장에 한계를 지운다.

새로운 방식을 생각해 낼 수 있는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새로움을 추구할 수 있는 교육 여건조성이 먼저다. 시시콜콜한 간섭은 교육의 힘을 약화시킨다. 기성인들이 빈틈없이 짜놓은 틀 안에 갇힌 채 주어진 것들만 보고 듣고 만져야 하는 교육적 풍토에서 창조적 인간 양성이란 애당초 기대할 수 없는 희망에 불과하다. 창조적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창조적 환경조성에 관심을 둘 일이다.

간섭은 능력의 파괴가 있을 뿐 창조는 없다. 교육은 없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미 있으나 드러나지 않은 능력을 찾아 북돋우는 일이다. 두려움 없이 다양한 능력을 마음껏 드러내고 뽐낼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간섭은 두려움으로 작용한다. 자신을 감추고 숨기게 한다. 간섭은 능력의 발견과 성장을 저해하는 비인간적이고 비교육적인 힘이다. 그것은 개인이나 사회 모두에게 불행이다.

인간의 역사는 창조의 역사다. 인간의 창조는 역사를 만드는 힘이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삶은 창조력의 결과다. 새로움 없는 삶은 정체요 퇴보다. 새로움에 대한 열망은 삶에 대한 열정이고 애정이다. 새로움을 위한 창조적 노력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교육에서 간섭은 불행을 목적으로 이뤄지는 교육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불행을 목적으로 이뤄지는 교육은 어느 누구에게도 허락될 수 없다. 인간의 창조적 힘은 교육을 통해 형성되고, 사회가 요구하는 창조적 역량은 그 뒤에 가능하다. 창조적 힘은 교육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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