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정치인 영향력 쇠퇴…당 대표 선거에는 후보도 못 내
김종률 위원장, 대선 국면에서 윤여준-문재인 연결 ‘주목’

▲ 김종률 민주당 충북도당위원장은 2004년 친노 정치인들의 추천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0년이 세월이 흐른 지금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지난해에는 친노 문재인 후보가 대선에서 패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자신의 정체성은 아직도 친노”라고 주장했다. / 충청리뷰DB
김종률, 친노를 돌아보다

친노 최대의 위기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를 맞는 2013년 5월, 민주통합당 내 친노는 잔뜩 웅크리고 있다. 친노는 2009년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에도 당의 주도권을 장악하며 지난 대선에 문재인(부산 사상) 의원을 대선주자로 옹립했다. 그러나 결과는 석패였고, 지금까지도 그 책임론에 발목이 잡혀있다

친노는 5.4 전당대회에 당 대표 주자를 내지도 못했을 뿐더러 좌장인 이해찬(세종) 의원은 ‘이용섭 후보를 배후에서 지원했다’는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정작 이용섭 후보는 김한길 후보에게 패했다. 친노는 그 누구도 회생을 장담할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진 것이 분명하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지난 4월22일 도당대회에서 현역 변재일 의원을 꺾어 파란을 일으킨 김종률 민주당 충북도당위원장의 ‘노무현 추모’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20일 지역의 한 일간지에 실린 기고문 <마음속의 대통령, 노무현>을 통해 “신록이 짙어지고 물빛이 깊어지는 요즘 그가 한 없이 그립다”고 토로했다.

김 위원장이 친노 계보를 통해 정계에 입문했고 2007년 대선과정에서도 열린우리당 사수대열에 섰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지금 ‘천형(天刑)’과도 같은 친노의 이름으로 정치를 재기하려는 것은 뜻밖이다. 노무현이라는 구심력 때문에 아직도 친노 궤도를 돌고 있는 김종률 위원장의 입을 통해 친노의 역학관계를 인물 중심으로 조명해 봤다.

정치로 이끈 이해찬
폐쇄적 친노…신의로 관계는 유지

▲ 이해찬 의원
김종률 위원장의 정계입문에는 참여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의원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서울대 동문인 이 의원과는 10년이나 터울이 지지만 이 의원이 민청학련 사건으로 제적됐다가 복학하면서 1년 동안 함께 학창시절을 보냈다. 당시 4학년이던 김 위원장이 이 의원의 학내선거를 도우면서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가족모임을 갖고, 소줏잔을 기울이는 사이를 유지해 왔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증평·진천·괴산·음성 선거구에 출마할 후보를 찾지 못하던 민주당은 선거를 불과 보름 앞두고 이 의원의 천거로 김 위원장(변호사)을 후보로 세웠으며, 재선의 정우택(자민련) 의원을 누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둘 사이의 정치적 동행은 정계입문까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충청리뷰와 인터뷰 도중 친노 앞에 ‘폐쇄적’ ‘배타적’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또 그 과녁은 이 의원 등 근본주의 친노세력인 것으로 추정됐다.

김 위원장은 이 의원에 대해 “정작 정치에 들어와서는 가치와 노선의 차이를 발견했다. 그는 선명하고 나는 중도였다. 그러나 의리와 신의가 바탕이 된 관계이기 때문에 관계는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또 “친노라고 다 같은 친노가 아니다. 정계입문 전부터 친노라는 정파의 독선과 폐쇄성에 대해 걱정했었기 때문에 거리를 유지했다”고 덧붙였다.

떠나간 친노 김혁규
한때 이회창과 연대… 이념적 공감

▲ 김혁규 전 경남지사
김종률 위원장의 정치적 코드를 읽는데 난독(難讀)이 발생하는 것은 김혁규 전 경남지사와 각별한 관계 때문이다. 김 위원장 스스로도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중도, 온건이라고 표현하지만 보수색이 강한 김 전 지사와 교분은 각별하다.

물론 김 전 지사 역시 한나라당 소속으로 3선 지사를 지내다가 노무현 대통령의 러브콜로 열린우리당을 택했으니 범 친노에 속한다. 그러나 김 전 지사는 전형적인 보수다. 2007년 대선에서 ‘영남후보론’을 기대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자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고, 결국 무소속 이회창 후보 편에 섰다.

김 전 지사가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선거에 나섰을 때 김 위원장이 비서실장을 맡았기 때문에 대선 후에는 김 위원장의 자유선진당 행이 점쳐지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김 전 지사로부터 동행을 제안받았으나 (이회창)이 ‘너무 보수적이라 부담스럽다’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김 위원장은 김 전 지사에 대해 “재미사업가인 김 전 지사와는 미국에서 변호사를 할 때부터 막역한 사이였다. 중도, 온건적 성향 때문에 도와드렸던 것이다. 지금 다시 사업가로 돌아갔지만 이번 대선까지도 긴밀하게 만났다. 김 전 지사가 문재인 후보를 뒤에서 도왔다”고 말했다.

재기의 발판 문재인
개방적 친노… “윤여준과 다리 놓았다”

▲ 문재인 전 민주당 대선후보
김 위원장은 2009년 9월 대법원이 배임수재 혐의에 대해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함으로써 의원직을 상실했다가 지난 1월29일 대통령 특사로 복권됐다. 또 3월1일 복당이 승인됐고, 4월22일 도당위원장으로 재기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정치재개는 2012년 양대 선거과정에서 이미 시작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 위원장은 총선 때부터 부산 사상구에 출사표를 던진 문재인 후보를 도왔다. 끈은 일본에서 연결됐다. 사면복권을 기다리며 일본 리츠메이칸대학에 초빙교수로 있을 때 서승 특임교수를 통해 이런저런 사람들을 소개받게 된 것. 재일동포인 서 교수는 서울대 유학시절 간첩단 주모자로 몰리자 기름난로를 뒤집어썼던 사건으로 유명하다.

김 위원장은 서 교수를 통해 나중에 문재인 캠프에서 국민통합위원장을 맡게 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만난다.

김 위원장은 “문 후보가 호텔에서 윤 전 장관과 처음 만날 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 윤 전 장관이 국민통합위원장을 맡기로 했고 내가 위원장과 후보를 연결하는 역할을 주도하기 위해 국민통합부위원장으로 합류했다”고 설명했다.

종합해 볼 때 김 위원장은 오랫 동안 당에서 주도권을 행사해 온 친노와는 다소 거리를 두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에 반해 친노에서 친노 정치인으로 변신한 문재인 의원에 대한 지지는 거두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문 의원은 온건하고 개방적이며 수평적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친노 정치인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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