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식 건축으로 마을전체가 한 눈에, 당초 원형 거의 보존 놀라워
주민·예술가·관계 전문가·공무원의 공동작품, 지난해 10만명 다녀가

여러 사람이 단체사진을 찍을 때 얼굴이 가리지 않게 서는 방법이 있다. 바로 앞 사람과 그 옆 사람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한 사람도 겹치지 않게 서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런 마을이 있다. 마치 단체사진을 찍듯 마을 전체가 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 곳. 질서정연한 계단식 건축기법에 한 번 놀라고, 몇 십년전의 모습을 대부분 간직해 또 한 번 놀라게 하는 곳. 부산 감천마을이다. 지난 8~10일 부산에서 있었던 한국언론진흥재단 연수에 참가했다. 이 연수의 일환으로 부산시 사하구 감천2동 감천문화마을을 방문했다.

▲ 부산 감천문화마을의 현재모습.

감천문화마을은 주민·예술가·관계 전문가·공무원들의 공동작품이다. 과거에는 감천마을이라 불렀으나 이 곳에 문화를 입히고부터는 감천문화마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감천문화마을의 탄생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떠나는 마을에서 돌아오는 마을이 됐고, 빈 집에 문화예술을 담아 공동화지역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업화를 경계하고 원형을 거의 보존했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에 경종을 울렸다.

▲ 감천문화마을의 설경(사진=감천문화마을 홈페이지)

감천문화마을에는 4500가구 9600명이 산다. 1950년대 태극도 신앙촌 신도와 한국전쟁 때 피난민의 집단 거주지로 형성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을안에는 지금도 태극도본부가 있다. 이귀향 부산시 사하구 창조도시기획단 창조전략계장은 “한국전쟁 때 충청도지역 사람들이 집단 이주했다. 마을은 해발 150m 산비탈 도로라 경사가 급하나 계단식으로 집을 지었다. 대문도 없고 사방이 막히지 않았다. 부산시에서는 역사적 현장을 간직한 이 곳을 문화적 보존가치가 있는 지역으로 지정했다”고 말했다.

감천문화마을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9년 지역예술인들과 주민들이 모여 시작한 마을미술 프로젝트를 하면서부터. 골목은 좁고, 수세식 화장실도 없으며 이것저것 불편하자 이 마을을 떠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빈집이 늘었다. 빈집을 그대로 방치했으면 얼마안가 허물어지고 나중에는 대규모 재개발이 이뤄졌을텐데 예술인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감천마을이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을’이 된 것이다. 부산시 사하구 창조도시기획단 관계자는 “예술단체가 문광부 공모사업에 신청해 선정된 뒤 감천마을에 미술작품을 설치한 게 첫 시작이다. 곳곳에 미술작품이 있고 올해부터는 작가들이 빈집에 입주하고 작품활동을 한다. 사하구청에서는 창조도시기획단을 조직해 행정지원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목욕탕을 그대로 살린 감내어울터 입구
이들은 그동안 창조적 커뮤니티 디자인전략을 세워 디자인을 새롭게 했고 생활환경개선사업을 펼쳐 화장실 개선과 전등 교체, 집수리 등을 했다. 또 ‘마추픽추’ 골목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문화가 숨쉬는 동네를 만들었다.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센터 ‘감내어울터’도 개관했다.

목욕탕을 리모델링한 이 곳은 내부를 그대로 살려 아주 재미있다. 이귀향 계장은 “마을경관 보존을 위해 주차장도 만들지 않았는데 올해 관광버스 몇 대를 주차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주민들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커피숍과 아트숍, 맛집, 문화상품 판매소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감천마을을 방문한 사람은 10만명이나 올해 4월말까지는 11만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국내는 물론 일본·중국·탄자니아 등지에서도 벤치마킹을 하러 온다. 예비사회적기업과 일자리창출사업 지정을 받았고 2011년에 도시대상, 2012년에 아시아도시 경관상과 문체부 지역전통문화 프로젝트 우수상을 받았다. 한 주민은 “전에는 재미없는 동네였는데 여러 사람들의 힘으로 활력을 찾았다. 좀 시끄러워지긴 했으나 좋아진 게 더 많다”고 말했다. 이 마을은 주민이 우선이다. 예술가·관계 전문가·공무원들이 모든 것을 주민협의체와 상의했다는 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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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민촌으로 출발한 두 곳···같으나 다른 모습
원형 살린 부산 감천마을, 빠르게 상업화된 청주 수암골

▲ 청주 수암골의 옛모습
부산 감천문화마을과 청주 수암골. 두 군데 모두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정착한 동네다. 이 곳은 경사진 도로, 좁은 골목, 소박한 집의 모습 등 가난했던 시절 옛 정취가 살아있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은 확연히 다르다. 감천문화마을은 옛 모습이 많이 있는데 반해 수암골은 거의 파괴돼 원형을 잃었다. 감천마을에도 어울리지 않게 아파트가 불쑥 솟아 있긴 하나 그나마 주변지역에 있고, 수암골처럼 어마어마하게 큰 커피숍과 식당들이 들어서지는 않았다.

수암골은 청주시 수동과 우암동에 걸쳐있는 동네다. 첫 글자를 따서 수암골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소박하고 조용했던 동네는 충북민예총 작가들이 벽과 골목 등에 벽화를 그리면서 소문이 났다. 이후 드라마 ‘카인과 아벨’ ‘제빵왕 김탁구’ ‘영광의 재인’ 촬영지가 되면서부터 갑자기 관광지가 됐다. 하지만 관광지로써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외국인들이 몰려들다보니 금세 상업시설이 들어서 얼마안가 불야성을 이루는 마을이 됐다. 때문에 현재의 모습을 보며 가슴아파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주민은 “빵집, 국수집, 카페 등 원주민촌과 확연히 구분되는 상권이 형성돼 밤이 되면 명암은 더욱 짙어진다. 컴컴한 원주민촌과는 달리 새벽까지 외제차들이 즐비한 음식점들은 어둘수록 화려해진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 청주 수암골의 현재 모습
이후 빈 집을 활용해 예술촌을 만든다며 몇 몇 작가들이 입주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를 추진한 사람은 어떤 협의체도 아니고, 지역주민도 아닌 개인이었다. 어떤 작가가 어떤 연유로 들어오는지도 모르게 입주하다보니 부작용도 많았다. 특히 청주시는 수암골을 보존하려는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 감천마을은 부산시 사하구 공무원과 마을주민, 예술인들이 일일이 협의하며 마을을 가꿨으나 청주시는 수암골을 ‘가볼만한 곳’으로 소개하면서 난개발에는 눈을 감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청주시는 한 때 이곳에 한옥마을을 추진했으나 지금은 중단됐다. 현재는 원주민들의 집보다도 몇 배 웅장한 한옥 화장실만 덩그러니 남았다.

마을주민 최 모 씨는 “난개발을 못본척하는 행정기관과 장사해서 돈만 벌면 된다는 일부 업주들, 드라마 유치해 관광객을 불러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수암골을 망쳤다. 옛날 모습이 사라진 수암골은 더 이상 수암골이 아니다“며 속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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